타고난 배우라고 생각했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단아하고 강렬한 인상으로 단번에 시선을 모으고 <비기너스>에서 환한 미소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배우 멜라니 로랑. 하지만 <마린> 이후 그녀는 차기작이 기다려지는 감독으로 기억되어야 할 듯하다. 여신 같은 미모를 뽐내지도 않고 배우, 작곡, 시나리오는 물론 감독까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 중인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에 귀기울여보자.
-오프닝에서 장래희망에 대한 리사의 독백이 인상적이다.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나. =사실 어릴 적부터 배우보다는 감독을 꿈꿨다. 고등학생 때 영화를 공부하면서 기술적 기초들을 배우기 위한 많은 것들을 작업해왔고 이후에도 조금씩 진지하게 장편에 대한 꿈을 꿔왔다. 단편 작업을 통해 연출에 대한 다양한 면들을 수련해왔고 TV시리즈 <X-femmes>를 연출하며 감독으로서 한발 더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물론 배우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감독들을 만나면서 보고 배운 점도 큰 도움이 됐다.
-2008년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단편 <점점 더 적게>(De Moins En Moins)가 칸영화제 단편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기쁘긴 했지만 예상 밖이었다. <점점 더 적게>는 원래는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만든 작품이었다.
-영화 초반 아들에게 다양하게 교육시키는 모습이 우리나라 엄마들과 비슷해서 웃음이 났다. 프랑스도 대체로 그런 분위기인가. =리사의 모습이 요즘 프랑스 엄마들의 모습이다. 아이들을 다양한 코스에 등록한 뒤 교육한다. 또한 내가 받았던 교육이 레오의 모습에 담겨 있기도 하다. 리사와 마린(마리 디나노드)은 매우 일반적이면서도 예술적인 교육을 시키지 않는가? 나 또한 매우 조용하고 평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고, 부모님은 한번도 나에게 소리를 지르신 적이 없다. 우리는 TV를 거의 보지 않았고, 아빠는 늘 나에게 음악을 들려주셨다. 미셸 폴라레프, 자크 브렐 같은.
-전반적으로 음악과 사운드의 사용을 절제하는 느낌인데, 그에 비해 독백 사용은 상당히 많다. =요즘 시대에는 경험하지 못하는 감각들을 보여주길 원했다. 요즘에 전화 메시지 녹음은 거의 안 하지 않나? 난 녹음기를 매우 사랑한다! 나는 이러한 생각들에서 발전하여 세 캐릭터가 소설 속 독백과도 같이 그들의 목소리를 사용해 사운드를 채우길 원했다. 영화 속 마린이 그리워하는 것이 죽은 아빠의 목소리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음악은 대부분 오리지널 작곡이었고 기존의 곡들을 사용한 경우는 쇼팽의 <녹턴>인데, 개인적으로 <녹턴>을 정말 좋아한다.
-마린과 알렉스(데니스 메노쳇)가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이 굉장히 담백하게 처리된다. =소중한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은 늘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난다. 마린과 알렉스의 만남과 헤어짐처럼 지나고 보면 급작스러운 사고와도 같은 상황은 언제나 벌어진다. 삶의 소중하고 사소한 일부분이기에 미화하지 않고 최대한 담백하게 연출하려 했다. 물론 나도 많은 컷을 촬영했지만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분을 위해 과감히 생략했다.
-주목받는 배우이면서 감독 데뷔도 했고, 2011년에는 데미안 라이스가 작곡한 <널 기다리며>(En t’attendant)도 발표했다. 엔딩에서 직접 연주도 하고. 다재다능한 예술가로 활동 중인데, 특별히 목표로 하는 것이 있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별개라고 생각하고 싶다. 나는 항상 연출을 꿈꿔왔던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해왔지만, 그때부터 예술적 결핍을 느꼈었고 연출가로 있을 때 가장 큰 예술적 충족감을 느낀다. 배우로서 연기를 할 때도 감독의 말을 충분히 들으면서 의견을 제시하는 편이다. 내가 배우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캐릭터를 연결시키고 독려할 수 있다는 것과 실질적인 연기지도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배우이자 감독으로서 언제가 행복한가. 또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 =글쎄… 배우로서 어려웠던 점보다는 행복할 때가 더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배우는 선택을 받은 사람이고, 카메라 안 하나의 캐릭터이다. 카메라 안에서 역할을 해낸다는 도전 자체가 즐거움이랄까? 연출을 하며 배우라는 위치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감독으로서는 내가 상상했던 게 하나의 영화로 탄생했다는 것이 행복하다. 스탭들과 일하는 과정도 물론 즐거웠고, 촬영현장은 늘 편안했다. 벌써 현장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