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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 밤섬을 아시나요?
황두진(건축가) 2012-06-15

<김씨표류기>의 무인도

<김씨표류기>

밤섬을 아시나요? 서강대교가 한발 걸치고 지나가는 한강의 작은 섬이랍니다. 지금은 평평한 두개의 섬이지만 한때 60여 가구가 살던 밤 모양의 볼록한 섬이었어요. 그러다가 여의도 개발 당시인 1968년 잡석 채취를 위해 폭파되며 두개로 나뉘고 그중 상류에 있는 윗밤섬에는 둥근 만이 만들어졌답니다. 지금은 철새가 날아오는 자연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사람의 상륙이 금지되었지요….

이런 기구한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성이 김씨일 <김씨표류기>의 주인공조차 섬의 이름을 모른다. 그저 ‘한강의 무인도’라 알고 있을 뿐. 부채에 시달려 투신 자살하려 했던 남자의 삶이 개발을 위해 희생된 섬에서 좌충우돌 이어져 나가며 기묘한 도심 표류기가 전개된다.

<김씨표류기>

얼마 전 그 밤섬을 아주 가까이서 볼 기회가 있었다. 잠실 수중보에서 김포 수중보까지의 한강 약 30km를 2인승 카약으로 종단해 보자는 친구의 제안에 넘어간 날이었다. 어깨가 탈구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던 그날의 고행에서 가장 인상 깊게 남았던 것은 역시 밤섬. 강의 수위가 높을 때는 두 섬 사이의 물길로 들어가 윗밤섬의 만에도 들어가볼 수 있다고 했다. 한강 한복판에 섬이 있고, 그 안에 또 만이 있고, 그 안에 들어가면 오직 물과 주변을 둥글게 감싸고 있는 나무, 그리고 날아다니는 새들…. 참으로 도시 속에 만들어진 역설의 오아시스가 아닐 수 없다. 마치 냉전 시대의 소산인 비무장지대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자연생태계의 보고가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김씨표류기>를 보신 분들께 한마디. 영화사가 어떻게 섭외를 했는지 모르지만, 영화의 주인공처럼 밤섬에 상륙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주인공 또한 결국 한강정화작업반에게 잡혀서 밤섬을 ‘탈출’한다). 배로 접근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섬의 주인인 새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같은 이유로 밤섬으로는 짜장면 배달이 안되지만 이를 제외한 한강공원 전 구역에서는 가능하다. 배달의 겨레,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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