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도 은퇴를 한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은퇴한 건축의 삶 또한 예측불허다. 미리 준비를 잘해놓았거나 자기를 돌봐줄 사람이라도 있으면 행복한 노후를 맞이하지만 아닌 경우 외로움에 시달리다가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죽은 사람처럼 사라진 건물도 세상에 큰 구멍을 남긴다. 언젠가는 메워질 구멍이지만….
그나마 이것은 나은 경우다. 우리나라의 경우 거의 대부분의 건물은 조기에 은퇴할 운명을 갖고 이 땅에 태어난다. 손을 보면 얼마든지 잘 쓸 수 있는 건물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제 수명을 못 채우고 사라지는 것이다. ‘멸실신고서’라고 불리는, 사람으로 치면 사망신고서가 그 죽음을 공식화한다. 이렇게 대부분의 건축은 사람보다 짧은 삶을 산다.
바람직한 은퇴란 어떤 것일까. 이 역시 사람이나 건축이나 다를 바 없다. 은퇴하지 않는 것이다. 한창때만큼의 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자기의 쓸모를 확인하며 오래 일할 수 있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다. 많은 사람들이 은퇴한 이후에 뭔가 다른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건축도 비슷하다. 용도가 바뀌는 것이다. 폐교를 활용하여 작가 스튜디오를 만드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박물관이 되는 것은 또 다른 경우다. 자기의 존재 자체가 기억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명예로운(?) 은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역시 은퇴하지 않는 것이 최고다. 오래된 건물이 여전히 자기 용도로 잘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 바로 여기에서 온다. 그 즐거움을 잘 만끽할 수 있는 도시가 군산이다.
사람들은 보통 군산 하면 <타짜>와 <장군의 아들>을 찍은 히로스 가옥이나 박물관이 된 옛 군산세관을 떠올린다. 하지만 더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주택, 혹은 박물관으로 ‘박제’되어 생명의 박동이 박탈된 건축이 내뱉는 외로움의 절규를 들어보았는가. 역시 최선은 건물을 계속 사용하면서 그 쓸모를 누리는 것이다. 6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지역의 명물인 중국집 빈해원, 그리고 단팥빵이 나오는 시간이면 수십명이 기꺼이 줄을 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제과점 이성당에서 나는 그 가능성을 보았다. 군산의 건축에 은퇴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