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부러졌다. 스스로 부러뜨렸다. 석달 전 일이다. 마의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두달 넘게 병원신세를 졌다. “이렇게 다치기도 어려운데.” 의사의 진단을 거짓말이라 생각했다. 수술하고 몇주 지나면 훌훌 털고 일어나겠지. 한데 의사의 말은 참말이었고, 내 바람이 망상이었다. 일주일 만에 휠체어 신동 소리 듣고 으쓱댄 것도 잠깐뿐. 얼마 지나지 않아 시련이 일상이 됐다. 혼자서 머리 감겠다고 낑낑대다 물이 흥건한 바닥에 철퍼덕 소리내고 주저앉기도 했고, 화장실에 가다가 외발이 문턱에 걸려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찧기도 했다. 제 한몸 간수하지 못한 결과는 볼썽사납기 그지없었다. 몸뚱이야 그렇다 치고 문제는 정신이었다. 환자복 입은 지 한달이 넘어가자 “여기서 나가면 뭣부터 할까” 했던 기대감은 사라졌다. 대신 “과연 내가 전처럼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이 마음에 들어찼다. 잡생각 말고 책이라도 좀 읽어보자 하는 날이면 약속이라도 한 듯 옆방 아줌마들은 결투를 벌였다. 화장실 물을 안 내렸다고, 침상에서 방귀를 뀌어댄다고, 아줌마들의 삿대질 전쟁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계속됐다.
한동안 자제했던 청양고추를 복용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단박에 열락(悅樂)을 보장하는, 이 녹색 마약을 상용한 지는 실은 30년이 더 된다. 몸이 축축 늘어지고, 정신이 흐물흐물할 때, 한입 베어물면 온몸의 세포가 아가리를 벌리고 꿈틀거리는 놀라운 각성의 순간이 찾아온다. 어렸을 적엔 먹기 싫은 음식을 강권에 못 이겨 받아들었을 때 주로 복용했는데, 성인이 된 뒤로 청양고추는 스트레스 해소제가 됐다. 세상의 모든 뼈는 다 붙인다는 홍화씨도 아니요 기력 회복에는 그만이라는 마늘액도 아니요, 따지고 보면 길고 지루했던 70일 동안의 휠체어 생활을 견딜 수 있게 해줬던 것은 바로 금단의 채소, 청양고추였다. 주는 대로 먹어야 하는 병원 식단에 청양고추를 추가한 판단은 돌이켜보면 어떤 치료보다도 효능있는 적절한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갑작스레 찾아든 정신질환도 청양고추의 캡사이신 성분 때문에 조금씩 치유가 됐으니 말이다. 출근하기 시작한 지 2주가 됐다. 여전히 식당에 가면 (맡겨둔 것도 아니면서) 청양고추부터 찾는다. 다 나았다면서 왜 또 먹느냐고. 위가 아프면서도 기어코 먹는 건 한동안 내 일 아니라고 여겼던 마감 압박 스트레스가 다시 도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