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 차이밍량 감독에게 한 관객이 이렇게 물었다. “당신의 영화는 동시대성을 추구하는 영화다. 당신에게 동시대성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게 도대체 무슨 질문인가. 앞 뒤 문장이 연결이라도 되나. 뭘 묻자는 건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은근히 짜증이 나는데, 차이밍량은 의외로 아주 성심껏 꼼꼼하게 답했다.(차이밍량은 관객과의 대화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며 마음이 넓은 사람이다)
공동 인터뷰 자리에서 한 기자가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감독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동석한 기자가 세명 밖에 없는터라 갑자기 등에서 식은 땀이 솟는데(성질 급한 감독들은 질문이 마음이 안들면 인터뷰 자리를 파해버린다), 타베르니에는 “영화는 나의 모든 것”이라고 명쾌하게 답했다.(타베르니에도 마음이 넓은 사람이다.)
늘 상대방에게 질문을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탓에, 나는 이런 질문을 이해한다. 아니, 나도 불쑥 한 적이 있다. 너무 포괄적이며 누구에게나 던질 수 있는, 그래서 사실은 텅빈 질문. 물론 텅빈 질문이 때론 명답을 낳는다.(<미치광이 피에로>에서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새뮤얼 풀러는 “그것은 감정”이라고 대답한다. 이건 영화 글장이들이 널리 애용하는 명답 중의 하나다.) 그러나 이런 질문은 좋지 않은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자신이 받았다고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김영하씨는 “예술이란 무엇인가” 류의 무책임한 질문이 남발되는 이유가 “우리나라 문화에서 질문자가 가진 권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쓴 적이 있다. 김지운 감독도 “왜…” 같은 질문자들의 강압적인 어휘가 주는 괴로움을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러나 권력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먼 일반 관객들도 이런 질문을 자주 던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견으로는, 이건 주로 대상에 대한 구체적 관심의 부재에서 오는 것 같다. 대신 명분이나 메시지에 대한 강박증 같은 게 느껴진다. 영화제의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은 “당신은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이다. 감독들은 이런 질문을 대체로 고통스러워한다. 대부분의 감독들은 요약가능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진 않는다. 설사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해도 영화 자체가 그 메시지를 말하기를 기대하며 만든다. 그러니 영화를 보고 난 관객이 그걸 묻고 있으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화는 모든 예술분야 가운데 가장 잡스러운 예술이다. 너무 잡스러워서 매혹적인 예술이다. 메시지나 주제의식에 집착하는 경향과, 조금이라도 무거운 영화를 회피하는 요즘의 흥행 경향은 혹시 동전의 양면 아닐까? 영화가 가진 온갖 잡스러움의 매력을 우린 너무 일찍 외면해버리려 하는 건 아닐까?
(2001년을 보내면서 내년엔 우리 영화가 좀더 잡스러워지고, 관객도 좀 더 잡스러워지기를 바라는, 잡지쟁이의 마음으로 썼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