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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철] 도태된 20대 생태계 탐구생활

<나쁜 놈이 더 잘 잔다>의 권영철 감독

<나쁜 놈이 더 잘 잔다>(28페이지 프리뷰 참조)를 만든 권영철(33) 감독은 영화광이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의 조감독 출신이다. “처음에는 연출부로 들어갔는데 조감독이 필요해지자 사람의 제일은 ‘인성’이다, 가르치면 된다, 하고 생각하는 김태식 감독에 의해 얼떨결에 조감독으로 뽑혔다.” 김 감독의 권유로 <나쁜 놈이 더 잘 잔다>의 시나리오를 썼고 2007년 예술영화지원작에 덜컥 당선됐으나 만들고 나서 더디게 개봉하기까지 마음이 까맣게 타며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시절”을 보냈다. 그는 지금도 자칭 “강남에서 제일 가난하게 사는 사람”인데, 감독 자신이 20대에 받았던 어떤 인상과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20대의 청춘 군상을 엮어 영화로 만들었다.

- <나쁜 놈이 더 잘 잔다>를 자평한다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저예산영화에 더 많이 바라는 경향이 있다. 나는 저예산영화를 볼 때 좋은 것 한 가지만 발견하면 된다고 본다. 그런 기분으로 만들었다. 비극으로 치닫는 파국이 거칠고 어둡다고 그러는데, 그럼 난 땡큐다. 만듦새가 거칠다? B급영화라고 생각하고 만들었으니 당연하다.

-한 가지만 본다고? 이 영화에서 그건 어떤 점이었나.

=캐릭터다. 캐릭터가 에피소드보다 우위에 있는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썼다. 대화도 생동감있게 만들고자 했다. 그 부분은 만족한다. 물론 불친절한 부분이 많긴 하다. 왜냐하면 촬영을 못했으니까. (웃음) 모든 게 선택의 순간이다. A 아니면 B,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때가 있다.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만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관계자들보다는 관객이 더 좋게 보는 것 같다. 안 좋게 본 사람들은 폭력이 과도하고 엉성하다고 많이 말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다. 어떤 때는 하루에 100컷씩 찍고 했으니까. 미장센이고 앵글이고 발휘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예술영화 지원받아놓고 예술을 하지 못한 내가 나쁜 놈이지만(원래 초고는 예술영화였다) 말한 것처럼 B급영화라고 생각하고 만들어봤다. B급이라는 큰 지붕 아래 있는 쾌감이 느껴지길 바랐다. 첫 장면에서도 사람들이 “차 좀 뒤집어졌다고 사람이 뭐 저렇게 좀비가 되어서 나오냐” 하는데 나는 인물의 절박함을 그렇게 시각적으로 첫 장면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이야기는 어떻게 완성되어갔나.

=조금씩 쓰면서 묶은 거다. 포르노물 배우, 여고생 이야기, 은행 강도질하는 백수들. 이런 캐릭터를 먼저 풀었다. 이들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의외로 잘 풀렸고 한줄로 죽 나가더라. 캐릭터를 세게 잡고 그 다음에 이야기를 만들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낙제점을 받을 수 있는 시나리오지만 활기찬 캐릭터를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개인적인 계기가 있다고 들었다.

=1996년에 대학 들어가서 97년에 IMF를 맞았다. 집도 원래 사정이 좋진 않았다. 비디오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바로 나를 자르더라. 덩치도 큰 편이라 어디 찻집 알바도 못하고. (웃음) 장학금 준다기에 영화와는 상관없는 과에 진학했는데, 여지없이 거기서는 꼴찌가 되고 말았다. 정말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98년 초에 휴학을 했다. IMF라는 괴물, 그 충격이 컸고 아직도 내게 영향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의 20대는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그나마도 일반적인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들의 생태계란 어떤 걸까. 누가 누구에게 먹히는 걸까. 그들의 먹이사슬은 어떻게 되는가. 그 생태계를 짜보고 싶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범죄영화와 제목이 같다.

=구로사와 감독 영화와의 공통점이라면 제목과 영화 내용이 전혀 관계가 없다는 거다. (웃음) 제목이 뭔가 캐치프레이즈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본 속담처럼 들리기도 하고. 어렸을 때 책으로만 접했는데 잊히지가 않더라. 내가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상관없는 고전영화 제목을 갖다붙이는 거였는데 이상하게 이 영화는 그렇게 됐다. 제목을 말해주면 사람들이 반문을 많이 한다. “뭐? 나쁜 놈이 더 잘 산다?”(웃음)

-장르적인 관심이 많아 보인다. 참조도 있는 것 같고.

=<사냥꾼의 밤>처럼 손등에 문신 새긴 인물이 나온다. 그리고 검은 양복. 범죄영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은 그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난 <저수지의 개들>처럼 욕이 많이 나오는 영화가 좋다. 그 영화는 욕이 정말 예술이다. 개인적으로 욕과 욕이 결합되는 그런 쪽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 타란티노 영화를 오독한 결과일 수도 있지만, 전적으로 그건 타란티노에게 빚진 거다. 빚진? 아, 이 표현은 너무 건방진가?

-지금 준비 중인 작품은.

=로맨틱코미디를 쓰고 있다. ‘실패한 배우의 그 10년 뒤’에 관한 것인데, 몇명한테 얘기해주었더니 반응이 좋다. 트리트먼트까지 완성했다. 사회적 문제의식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제 정리됐다고 본다. 앞으로 정말 하고 싶은 건 <리쎌 웨폰> 같은 영화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망상이 심했다. 음모론에 빠지기 쉬운 사람인 거다. (웃음) 그래서인지 언젠가는 SF물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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