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영화감독 라브 디아즈가 자신이 목격한 할리우드 영화제작 현장을 묘사한 적이 있다. “뉴욕에서 산 적이 있었어요. 할리우드영화인데 언젠가 웨슬리 스나입스가 출연하는 장면을 찍더군요. 그들은 커다란 트럭과 수천명의 스탭들을 데리고 와서 새벽부터 시작했어요. 대형 조명과 케이블, 많은 경찰들, 시끄럽고 화려하고 바쁜 조감독들과 프로덕션 매니저들로 두 블록을 모두 차지했어요. 하루 종일 카오스였고 단지 준비하는 것만으로 거기 사는 우리 전부를 어지럽게 했어요. 나는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그들이 준비를 하는 동안 산책을 하러 갔고, 두 시간 뒤에 돌아와 목욕을 하고, 아침을 해먹고, <뉴욕타임스>와 약간의 잡지를 읽은 다음, 새로운 책이 나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바니앤노블 서점에 갔다가, 친구와 함께 커피를 한잔 마시고, 아픈 화가 친구를 방문하고, 오후 2시쯤 집에 왔어요. 그들은 여전히 엄청나게 시끄러운 준비를 하더군요. 내가 두 시간 정도 잠을 자고, 일어나 점심과 커피를 먹고, 저지 시티에 일을 하러 갔다가, 워싱턴 스퀘어 파크의 길거리에서 1달러짜리 책을 사서 오후 7시쯤 다시 뉴욕에 돌아와 친구와 커피를 마실 때쯤에야 드디어 그들은 늦은 밤 온 동네에 조명을 켜고 카메라 크레인을 올렸어요. 미스터 스나입스가 술집에서 걸어나왔어요. 그러자 컷! 약간의 재촬영이 있었고 그들은 짐을 싸서 가버렸지요. 정말 짧은 촬영이었고 준비는 길었어요.”
단지 술집에서 나오는 미스터 스나입스를 찍기 위해 벌인 그 하루간의 복마전! 영화현장에서는 조급해선 안된다는 말끝에 나온 일화였지만, 이상하게도 올여름 대형 한국영화를 마주하면서 나는 라브 디아즈의 저 말이 거듭 떠오른다. 그의 말에 과연 야유와 상심이 없었을까. 영화는 어떤 매체보다 지난한 단체의 노동을 요하고, 어느 현장에서나 노동의 가치란 값진 것이고 중요할 텐데, 그렇다면 그 노동의 가치는 영화에서도 값지게 드러나는가. 허망할지라도 어쩔 수 없는 대답. 노동의 가치와 결과물로 나온 영화의 가치는 별개의 것이다.‘우리는 어떤 영화를 위해 노동해야 하는가?’ 나는 라브 디아즈의 말이 자꾸 그런 반문으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