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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한국의 로베르토 베니니
주성철 2009-01-02

예전 영화지 <키노>에서 박광정을 처음 인터뷰했던 때가 기억난다. <아이언 팜>(2002)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쓰며 좌충우돌하는 LA의 한국인 택시기사 ‘동석’으로 나왔을 때였다. 영화나 TV에서 보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 좋은 실눈으로 웃으며 인사하던 그의 첫마디는 “저 <키노> 애독자예요. 빠지지 않고 모았는데 이사 갈 때마다 와이프가 버리자고 난리예요”였다. 그리고는 자기를 닮아 영화를 좋아한다는 초등학교 3학년생인 아들과 오늘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함께 보고 나왔다고 했다. 나 역시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사람들이 흔히 코믹한 감초 연기로만 기억하지만 사실 그는 연기자 활동과 별개로 엄청난 영화광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하이퍼텍나다로 진입하기 직전 대학로 삼거리의 커다란 SKC 매장에서 그는 해마다 ‘한해 가장 많이 구매한 고객’ 3위 안에 늘 들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사랑은 비를 타고> <헤어> 같은 뮤지컬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면 그가 연출했던 <가스펠> <모스키토> 역시 뮤지컬이었다. <지하철 1호선>에는 조연출로 참여한 적도 있다.

게다가 그는 대학생 시절 월간 영화지 <스크린>의 2기 모니터 기자이기도 했다. 1981년 성균관대 공대에 입학했다가 제대 뒤 다시 한양대 연극영화과로 입학한 이유도 영화에 대한 꿈 때문이었다. 그의 꿈은 처음부터 배우가 아니라 연출가였다고 했다. 오래전 <스크린>을 무심코 뒤적이다 막 제대한 것처럼 보이는 까까머리의 그가 증명사진과 함께 기사를 실은 걸 보고 “오오!” 하며 다시 보게 됐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기사도 미클로시 얀초에 대한 것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하는 문화행사의 하나로 한국에 와서 KBS 드라마를 찍었던 얀초는 그때 영화를 전공하는 한국 대학생들과 만남을 가졌는데 그 자리에 박광정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그와의 인터뷰를 끝내면서 다들 당신을 ‘한국의 스티브 부세미’라고 부르는 게 싫다고 다른 걸 직접 골라달라고 했더니(역시 영화감독이기도 한 부세미에게 아무런 인간적 감정은 없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꽤 진지하게 ‘한국의 로베르토 베니니’라고 해달라고 했다. 듬성듬성한 머리에 비쩍 마른 몸매, 인간미 가득하고 개성 넘치는 코믹한 연기 스타일은 물론 감독과 배우를 겸하는 그 모습이 어쩌면 박광정의 오랜 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참 닮긴 닮았다.

그런데 하일지 원작의 <진술>의 영화화를 준비하던 그를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로 지난해에 세 번째 인터뷰했을 때도 영화감독의 꿈은 여전히 미룬 상태였다. 하일지 작가가 자신의 <경마장 가는 길>보다 몇배나 더 영화화가 힘들 것이라던 <진술>은 <강신일의 진술>이라는 이름으로 무려 월드컵과 맞장을 뜨며 먼저 연극무대에 올려진 상태였다. 강신일 역시 <강철중: 공공의 적1-1>으로 복귀하기까지 간암으로 투병생활을 했으니 장례식장을 찾은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제 마지막 남은 그의 영화 유작은 개봉이 밀리고 밀려 어쩔 수 없이 지금까지 남게 된 이상우의 <작은 연못>이다. 영화 <진술>의 주인공으로 회자되던 문성근과 강신일은 물론, 이대연과 최덕문 같은 대학로 동료들이 출연했던 영화라 그 느낌이! 참 묘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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