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랜드>란 제목의 프로그램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신가요? 디즈니사의 자사 작품 재활용 프로그램쯤 되는 쇼였습니다. 디즈니사에서 만든 장편영화들은 2부작으로 변형되어서, 애니메이션들은 적당히 재편집된 꾸러미 모양으로 이 쇼를 통해 방영되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구하기가 매우 힘들어서 이 쇼를 통해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클립만 하나 나와도 굉장히 신기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들 중 몇몇 영화들은 기억해두면 꽤 유익한 작품들이었습니다. <페어런트 트랩>의 오리지널 버전이니, <명탐정 디씨>의 오리지널 버전이니 하는 것들이 다 여기를 통해 방영되었으니까요.
물론 그중에는 원래부터 텔레비전영화로 제작된 오리지널도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오래 전에 비디오로 출시된 특수학교 교사 이야기인 <에이미>와 같은 작품이 기억나는군요. 하지만 오늘 이야기할 작품은 다른 영화입니다.
아마 어렸을 때 한번 보고 저처럼 꽤 오랫동안 기억속에 품고 있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한번 기억을 되살려 보세요. 이 영화는 한 소년과 그의 가족이 시골 마을로 이사오면서 시작됩니다. 소년은 어느 날 밤 밖에서 이상한 불빛을 보고 따라가다가 이네스라는 소녀 유령과 그 소녀의 개 유령을 발견합니다. 유령은 자신의 영혼이 안식을 찾으려면 ‘유리 아이’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죠. 소년은 친구가 된 이웃 소녀와 함께 ‘유리 아이’의 미스터리를 풀기 시작합니다.
이 영화가 당시 아이들에게 남긴 인상이 굉장히 강했다는 사실을 제가 알게 된 건 인터넷 시대가 돼서였습니다. 전 귀신들린 집이나 유령이야기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이런 부류의 사이트나 리스트에 종종 드나들었는데, 꼭 그럴 때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거든요. “혹시 <디즈니랜드>에서 방영했던 어린이영화 기억나세요? 새로 이사온 집에서 주인공 남자애가 소녀 유령을 만나는 이야기였는데?” 대답도 대부분 같았습니다. “아, 저도 기억나요. 하지만 제목이 뭔지는 저도 모르겠군요.”
IMDb가 잠시 ‘잃어버린 영화 찾기’를 했을 때 가장 많은 문의가 들어온 영화 역시 바로 이 작품이었습니다. 이제 어른이 된 사람들이 오래 전에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기억을 짜맞추다 이 어린이영화의 정체에 갑자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죠. 그러고보니 하이텔에서도 이 영화에 대한 질문을 서너번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유리 아이>(Child of Glass)였습니다. 78년 작품이었어요(문화적 활동이 활발한 젊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간직하기 딱 좋은 때 나온 영화죠). 어린이 공포소설로 유명한 리처드 펙이라는 작가의 소설 를 원작으로 삼은 영화였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이웃집 소녀 블로섬은 나중에 펙의 고정 캐릭터가 된 모양입니다.
이 영화를 찾아 헤맸던 사람들 중 78년 이후 이 영화를 다시 본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비디오로 출시된 작품은 아니니까요. 어떻게 보면 이 영화 자체가 유령이었죠. 존재하는 영화로 남아 있는 대신, 희미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뇌 속에 숨어 있다가 툭 하면 튀어나오는 그런 유령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