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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커 애정극 <그들만의 러브매치>

스토커 애정극이 아름답고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들이 궁금하다면.

바르셀로나의 분주함과 낭만성이 적당히 뒤섞인 듯한 스페인 남자 페레(샌티 밀란)를 즐겁게 해주는 건 진토닉뿐이다. 그는 15살 때 어리석음이라는 불치병에 걸려 낫지 않고 있다고 믿고 있다. “내 인생은 어리석음의 연속”이라는 독백을 자신에게만 늘어놓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들 역시 어리석은 행동을 평생 멈추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도 자기 같은 바보를 또 만들지 않기위해서라고 공언한다. 그래서 대부의 생일 파티에 진토닉 범벅이 돼 나타나서는 속죄의 의식을 치르겠노라고 한다. 지퍼를 내리고, 성기를 꺼내 파티 음식인 소시지 옆에 나란히 놓고 날카로운 포크를 위로 치켜든다. 물론 기겁한 친구들이 그의 손을 낚아챘고, 성기를 치워버렸다.

대부가 운영하는 기업형 학교에서 강사로 먹고사는 것이나 음울한 시 같은 말을 일상 대화처럼 늘어놓는 솜씨를 보면 자학적 지식인에 가깝다. 줄기차게 연애를 해왔으나 지금은 잠시 휴지기 상태라 자신의 삶이 더욱 맥없이 보이는 건 아닐까. 머나먼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사는 친구의 죽음을 뒤늦게 알게 된 그가 다시 진토닉에 빠져들어 거리를 헤매다 눈이 번쩍 트이는 사고를 맞는다.

말과 행동으로 초반에 외쳐댔던 페레의 ‘어리석음’이 알리바이였다는 냄새를 짙게 풍기는 건 이때부터다. 페레는 거리 광고판을 제작, 설치하는 샌드라(켄타나 길런 쿠에보)를 보고 한눈에 빠져들었다. 밤거리를 누비며 일하는 그녀의 뒤를 쫓던 페레는 남편과의 다정스러운 조우를 목격하고 허탈해진다. ‘알리바이’라는 건 그가 이후에 뭔가 범죄적 행동을 벌이기 때문이다. 샌드라와 남편의 뒤를 쫓아 교외의 집을 알아내고는 집 주위를 배회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카메라로 찍어대기 시작한다. 애초부터 어리석었으니 스토커가 됐다고 뭐라 더 자학할 여지도 없다. 마침내 낌새를 챈 샌드라에게 자신은 위험하지 않다고 강제로 설득하는 것조차.

모든 스토커가 페레처럼 정말 위험하지 않을지는 의문이나 샌드라의 남편에게는 분명 실재하는 위협이다. 어느 순간 다정하게 돼버린 이들은 거리 곳곳에서 은밀한 정사를 벌인다. 거리에서 벌이는 체위의 종류는 제한돼 있지만 영화가 CF처럼 엮은 섹스신의 횟수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 이어진다. 또 하나의 알리바이가 스타일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들고찍기의 율동은 이 스토커 불륜극에 생명을 불어넣으려 혼신의 힘을 다한다. 섹스신은 그 최후의 방점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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