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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로 알아보는 옴니버스영화의 매력
권민성 2006-12-11

몽마르트르 언덕, 차이나타운, 마레, 센 강변, 에펠탑…. 당신은 혹시 파리에 대한 낭만을 품고 있는가. 그렇다면 <사랑해, 파리>를 보자. 영화는 코언 형제, 구스 반 산트 등 20명의 감독들이 파리를 배경으로 한 18가지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스티브 부세미, 줄리엣 비노시, 일라이저 우드, 내털리 포트먼, 제라르 드파르디외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총출동해 5분이란 제한된 시간에서 찍은 이 영화를 우리는 ‘옴니버스영화’라고 부른다. 각기 다른 감독의 개성이 빚어낸 한 그릇의 짬뽕 같은 영화들! <사랑해, 파리>를 계기로 옴니버스영화에 관한 궁금증을 Q&A 방식으로 풀어본다.

Q1. 왜 옴니버스인가?

<에로스>

A. 옴니버스영화는 반찬 가짓수가 많은 상차림 같다. 관객은 같은 주제 아래 다양한 감독과 스타일을 볼 수 있어 포만감을 느낄 수 있고, 배급사는 단편영화와 장편영화의 배급 방식을 모두 활용할 수 있으며, 감독들은 장편보다 자유로운 스타일로 자기의 영화세계를 펼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물론 전반적인 영화의 흐름과 상관없이 이야기들을 기계적으로 묶인 영화는, 작품마다 큰 편차가 느껴질 수도 있다. 가령 일본영화 <잼 필름스>처럼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이와이 순지 감독의 ‘아리타’만 겨우 건졌다고 투덜대는 사태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보길도에서 일어난 세 가지 퀴어 옴니버스 <동백꽃> 역시 비슷한 예. 뮤지컬 형식을 따왔지만 조악하기 그지없는 ‘김추자’와 여성의 시선으로 게이 커플을 바라본 ‘동백아가씨’는 느낌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런 상대적인 비교 우위는 <에로스>처럼 거장들이 만든 작품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다. <눈부신 하루>처럼 단편을 제작한 신인감독들의 디지털 옴니버스영화가 꾸준히 제작되는 점만 봐도 아직 옴니버스영화의 가능성은 무한해 보인다.

Q2. 옴니버스 영화를 촬영하다가 끔찍하게 죽은 배우가 있다던데….

A. 그렇다. 문제의 주인공은 <환상특급>(1983)의 배우 빅 머로다. <환상특급>은 조 단테, 존 랜디스,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밀러 이렇게 네명의 인기 감독들이 50년대 말 인기리에 방영된 TV시리즈를 극장판으로 옮긴 옴니버스영화다. 이중 존 랜디스의 에피소드 ‘빌에게 생긴 일’에 출연한 빅 머로는 추가 촬영을 하다가 갑자기 하늘에서 추락한 헬리콥터 프로펠러 날에 맞아 목이 잘려 사망하고 마는데, 그 장면은 그대로 카메라에 담겼다. 영화의 제작자이자, 빅 머로에게 보충촬영을 권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그 뒤 몇 주간 계속된 악몽에 시달렸다고.

Q3. 아시아 국가들이 합작한 옴니버스영화에는 어떤 게 있나요?

<쓰리>

A. 아시아를 대표하는 옴니버스영화는 한국, 홍콩, 타이 아시아 3국이 최초로 합작한 공포영화 <쓰리>(2002)다. 타이 전통인형극을 계승해온 명문가에서 벌어지는 저주받은 인형 이야기를 다룬 논지 니미부트르 감독의 ‘휠’(Wheel),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한 여자가 기억을 되찾으며 밝혀지는 진실을 그린 김지운 감독의 ‘메모리스’(Memories), 한 남자의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그린 진가신 감독의 ‘고잉 홈’(Going Home)으로 이루어져 있다. 2년 뒤에는 한국, 일본, 홍콩의 스타 감독, 배우, 스탭들이 참여한 ‘쓰리 2’ <쓰리, 몬스터>가 개봉했다. 괴한에게 납치당한 인기 영화감독의 사투를 그린 박찬욱 감독의 ‘컷’(Cut), 한 남자를 사랑한 쌍둥이 자매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다룬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상자’(Box), 젊음에 집착하는 여자의 욕망을 다룬 프루트 챈 감독의 ‘만두’(Dumplings). <쓰리, 몬스터>의 엽기성은 전작을 뛰어넘었다. 특히 ‘메모리스’에서 감독으로 열연한 이병헌의 광기 어린 연기가 돋보인다. 또 일본, 대만, 중국이 합작한 영화 <사랑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About Love, 2004)도 빼놓을 수 없다. 도쿄, 타이베이, 상하이라는 대도시에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젊은이들의 사랑을 쿨하게 다루는 영화다. 만화가가 되기 위해 일본으로 온 대만 남자와 스페인으로 간 남자친구에게 차인 일본 여자의 만화 같은 사랑, 대만 여자의 큐피드가 된 일본 남자의 소통 문제, 말을 배우러 중국으로 간 일본 남자와 중국 여자의 사랑이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세 번째 에피소드 말미에서 일본 남자의 “데키에로!”(스페인어로 ‘좋아해’라는 뜻)라는 외침은 마음을 잔잔하게 울린다.

잠깐 상식: 현재 제작 중인 한국 옴니버스영화들

<달콤한 인생>의 김지운, <남극일기>의 임필성, <연애의 목적>의 한재림 이렇듯 실력파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화제의 옴니버스영화는 <인류멸망보고서>(가제)다. 근 미래 지구 멸망 시점을 배경으로 한 SF물이다. 절에서 일하는 로봇이 황당하게도 깨달음을 얻는다는 내용의 ‘천상의 피조물’(김지운), 좀비가 된 순수한 어떤 청년의 이야기 ‘멋진 신세계’(임필성),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의 선물’을 변주한 지구멸망을 목도한 연인들의 뮤지컬 ‘크리스마스 선물’(한재림)로 구성된다. 김강우, 김민선, 류승범 등의 배우를 비롯해 <카우보이 비밥: 천국의 문> <공각기동대>(TV시리즈)의 음악을 맡은 세계적인 일본 음악감독 간노 요코가 음악에 참여해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총 50억원 규모의 제작비가 투입될 이 작품은 2007년 초 개봉할 예정이다.

한편 <괴물>의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 역시 옴니버스 형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30분짜리 단편 시나리오는 탈고한 상태라고. 봉 감독은 초창기 <지리멸렬>이란 옴니버스 형식의 단편영화를 선보인였었다.

Q4. <러브 액츄얼리>도 옴니버스영화인가요?

A. 옴니버스영화란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몇개의 독립된 짧은 이야기를 주제나 인물이 연관성을 가지도록 해, 한편의 작품으로 만든 영화를 뜻한다. 여기서의 포인트는 바로 각 이야기가 ‘독립’된 점이다. <러브 액츄얼리>는 크리스마스를 5주 앞두고 영국에 사는 10쌍의 연인들의 이야기가 얽히고설켰으므로 엄밀히 말해 옴니버스가 아니라 멀티 플롯(다중 플롯) 영화다.

잠깐 상식: 멀티 플롯과 유사 옴니버스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후폭풍으로 한국에서도 비슷한 포맷의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새드무비> 등이 그 예다. 이 영화들 역시 각 커플이 모두 주인공으로 병렬적으로 전개되는 멀티 플롯 영화다. 이와는 조금 다른 예로 <가족의 탄생>이 있다. 이 영화는 서로 다른 시공간의 인물들의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전개되는 듯하지만 결국엔 하나로 이어져 있는 점에서 멀티 플롯을 지닌 유사 옴니버스영화라 할 수 있다. 비슷한 형식의 영화로 <pm 11:14>와 <숏컷> 등이 있다.

한편 8명의 예술인들이 모여 릴레이 형식으로 만든 100분짜리 실험 영화 <베리 코리안 콤푸렉스>도 유사 옴니버스영화다. 설치미술가 김홍석, 임승률, 미술비평가 겸 큐레이터 최빛나, 3호선 버터플라이 성기완, 모조소년 권병준(고구마), 사진작가 김지양, 패션디자이너 서상영, 영화감독 김성호 등이 공동작업한 이 영화는 사실 옴니버스영화라기보다는 종합 예술이나 영상 실험에 가깝다. 작업 방식은 이렇다. 첫째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고 10~15분 분량의 영화를 만들면, 둘째 작가가 첫째 영화의 시나리오만 보고 둘째 영화를 만드는 식으로 해서 여덟째 작가까지 바통을 이어받는 것. 성정체성, 미혼모, 익명성, 아이덴티티 등 각자 자유로운 방식으로 상상력을 뻗어나간 이 작품은 올해 초 광화문 아트큐브에서 개봉했다.

Q5. 요절복통 에피소드를 지닌 옴니버스영화 좀 추천해주세요.

A. <우리 개 이야기>란 일본영화가 있다. 11개의 독립된 에피소드가 영화 안에 담겼지만, 천식에 걸린 외톨이 소년 야마다와 그의 개 포치의 우정어린 이야기가 미묘하게 하나로 연결돼 있다. 이 가운데 광고기획자로 성장한 야마다의 개 사료 광고 에피소드는 단연 압권이다. 소심하고 귀 얇은 청년 야마다는 개 사료 광고 기획안을 내놓지만, 윗사람들이 계속 트집을 잡아 광고를 대폭 수정하게 된다. 우아하고 청순한 이미지의 이토 미사키가 어떻게 변하는지 주목하자. 최종 광고판에서 마치 노래방 화면의 주인공인 양 섹시한 해변의 여인이 된 사연이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를 연상케 한다. 이 외에도 치와와, 시추, 퍼그, 토이푸들, 보더콜리 등 50종 90마리에 달하는 표정 풍부한 강아지들이 등장하니, 애견가나 개를 사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볼만한 영화다.

<묻지마 패밀리>

한국영화 중 최고의 코믹 옴니버스영화는 장진 감독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묻지마 패밀리>다. 러브호텔 8층의 각기 다른 방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다룬 시추에이션 코미디 ‘사방에 적’, 80년대 초반 모든 학생의 선망 대상이었던 나이키 운동화를 소재로 한 휴먼코미디 ‘내 나이키’, 휴가 나온 군인과 교회 누나의 하루 동안의 데이트를 그린 ‘교회 누나’ 세편이다. ‘내 나이키’에서 주인공 소년이 물감으로 그린 탓에 가족 모두가 나이키 신발을 신고 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며, 마지막 기차역 장면에서는 마치 연극의 엔딩처럼 출연진이 모두 나오는 특이하고 웃긴 영화다. 총제작비 8억원이 들어간 이 작은 영화는 50만명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끝으로 <묻지마 패밀리>로 장진 사단의 저력을 보여준 장진 감독의 오리지널 단편 하나를 소개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 제작한 인권영화 <다섯 개의 시선> 중 하나의 에피소드 ‘고마운 사람’이다. 다소 무겁고 찜찜한 듯한 기획영화에서 장 감독은 비정규직 이야기를 비틀어 탁월한 블랙코미디를 만들어냈다. 학생운동을 하다 붙잡힌 학생을 수사하던 주중은 학생을 다그치다 오히려 열악한 비정규직의 업무환경을 한탄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심심풀이로 오목을 두던 두 사람의 앞에 제3자가 나타났을 때 두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면 웃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잠깐 상식: 특이한 소재와 형식의 옴니버스영화들

<눈부신 하루> 2005년 여름, 광복 6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눈부신 하루>는 서울과 도쿄, 제주를 배경으로 세쌍의 한일 양국 청춘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모습을 단 하루 동안의 여정을 통해 보여주는 기획 옴니버스 장편. ‘거울 속으로’의 김성호, ‘폴라로이드 작동법’의 김종관, ‘지우개 따먹기’와 ‘외계의 제19호 계획’의 민동현 이 세명의 젊은 감독들이 메가폰을 잡아 디지털 옴니버스형식으로 제작했다.

<9시 5분> 불임, 유해성 폐기물, 애견 유기 등을 소재로 한 환경 옴니버스영화. <나의 결혼원정기>의 황병국 감독, <야수와 미녀>의 이계벽 감독, 단편 <핵분열 가족>의 박수영, 박재용 감독이 연출했다. 제목 9시 5분은 12시를 인류가 멸망하는 시간으로 할 때, 지구 환경의 악화 정도를 표시한 ‘환경위기시계’에서 따온 것이며,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필름 대신 디지털로 작업한 것이 특징이다. 장진, 송일곤, 이영재 감독이 뭉쳐 만든 <1.3.6>(2004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키아로스타미의 길>(2005년)에 이어 올해 서울환경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SMS 슈거맨> 세계 최초로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90분짜리 장편영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감독 아리안 카가노프는 휴대전화 소니 에릭슨 W900i 8대로 총 11일에 걸쳐 <SMS 슈거맨>을 만들었다. 총제작비는 약 16만5천달러가 들었으며 극장 상영이 가능한 버전으로 블로업까지 마쳤다. 3분짜리 에피소드 30개를 엮어낸 옴니버스 형식의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이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도시 요하네스버그에서 두명의 고급 창부와 포주가 선박여행을 즐기는 와중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Q6. 죽기 전에 꼭 봐야 하는 옴니버스영화엔 뭐가 있나요?

A.

<포 룸> LA의 호텔을 배경으로, 신참 벨보이 테드가 혼자서 프런트 데스크를 지키고 있을 때, 네방에서 일어난 일들을 그린 옴니버스영화. 로버트 로드리게스, 쿠엔틴 타란티노, 알렉산드 록웰, 그리고 유일한 여성감독 앨리슨 앤더스 이렇게 4명의 감독이 각각 한편씩 연출했다. 특히 로버트 로드리게스가 연출한 ‘Room 309-Misbehavers’가 가장 인상적이다. 라틴계 갱스터 부부가 떠난 뒤 테드가 부부의 두 아이를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렸다. 담배와 샴페인을 즐기는 두 악동은 침대 밑에서 창녀의 시체를 발견하고, 이를 수습하기도 전에 담뱃불로 말미암아 방이 홀라당 타버린다는 이야기다. 앞서 나온 에피소드의 사람이 나타난다든가, 아이들이 보는 TV에서 섹시한 춤을 추는 사람이 샐마 헤이엑이라든가 하는 사실 등을 알면 보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커피와 담배> 짐 자무시 감독이 17년간 꾸준히 채워간 단편영화의 연작들을 한데 모은 지적이고 소소한 유머의 총집합.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작은 카페에서 두 친구들이 나누는 핑퐁 같은 대화들이 자잘한 웃음을 준다. 로베르토 베니니, 스티브 쿠건, 이기 팝, 록밴드 화이트 스트라입스에 빌 머레이까지 출연진도 화려하다. 특히 빌 머레이의 엉뚱한 종업원 연기는 금메달감이다. 이기 팝과 톰 웨이츠가 출연한 ‘캘리포니아 어딘가’는 칸영화제 단편영화 부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케이트 블란쳇이 1인2역을 완벽히 소화해낸 ‘사촌’은 2005년 Central Ohio Film Critics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티켓>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켄 로치, 에르마노 올미, 이 세 거장 감독이 만든 유럽여행기. 아름다운 여인과의 로맨스를 꿈꾸는 1등석의 노신사, 무례하고 안하무인인 2등석의 노부인, 꿈에 그리던 챔피언스 리그 축구 경기를 보러 간다는 흥분에 들뜬 3등석의 열혈 축구팬 소년들이 로마행 열차를 타고 가는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다. 난민 가족에게 표를 양보한 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켄 로치의 작품이 가장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