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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영화가 될 ‘뻔’했다우
2001-08-08

<쿠스코? 쿠스코!>(The Emperor’s New Groove)

2000년, 감독 마크 딘달 자막 영어, 한국어, 타이어 화면포맷 1.66:1 지역코드 3

눈을 감고 배경음악만 들어도 지금 그 장면이 어떻게 전개되어 어떤 식으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지까지 훤히 추측이 되는 것이 디즈니표 애니메이션의 특징이라면 특징. 그래서인지 <라이온 킹> 이후 잠시 그쪽 계통으로는 발길을 멀리해왔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조건 개봉이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봐버리다가, 요즘은 ‘극장에서 안 봐도 그만이야. …’ 수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생각은 그렇게 변했어도, 행동까지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았다. 갖은 수단을 모두 동원해서 TV는 물론 잡지, 패스트푸드점의 먹거리에서도 불쑥불쑥 튀어나와 ‘지금 절찬 상영중!’을 부르짖는 디즈니의 홍보 전략 때문에, 신경을 딱 끄고 외면하기가 꽤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쿠스코? 쿠스코!>와서는 개봉될 당시 디즈니가 홍보에 열을 올리는 게 너무 요란해 아예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게다가 Emperor’s New Groove(굳이 번역하자면 <황제의 새 여흥거리> 혹은 <황제의 새로운 신바람>쯤이 될까)라는 원제가 번역하기에 좀 어렵다는 이유로, 뜬금없이 <쿠스코? 쿠스코!>라는 제목으로 바뀐 것도 왠지 어색하게 느껴졌었다. 또 전체 음악을 관장한다고 해서 내심 기대를 걸었던 가수 스팅과의 작업도 거의 깨졌다는 불협화음 소식까지 들려와서, <쿠스코? 쿠스코!>는 나의 머리 속 극장가에서 조용히 간판을 내리고 사라지고 말았었다.

하지만 최근에 DVD의 현란한 매력에 거의 넋이 나가 있는 나에게 <쿠스코? 쿠스코!>처럼 기본 이상을 충분히 해줄 애니메니션은 놓칠 수 없는 작품이었다. 게다가 상술의 귀재 디즈니의 제품답게 서플먼트도 빵빵하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왔으니 투항은 예정된 수순일 뿐이었다. 여하튼 그 소문에 걸맞게 우선 <쿠스코? 쿠스코!> DVD는 서플먼트가 무지하게 재미있다. 특히 애니메이션의 내용을 가지고 아기자기한 퀴즈형식으로 꾸며놓은 게임코너는 디즈니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서플먼트에서 시선을 끄는 다른 볼거리로는 ‘스팅의 뮤직비디오 제작과정’과 편집과정에서 삭제된 ‘파차 마을 부수기’장면이 있다.

이 두 볼거리는 <쿠스코? 쿠스코!>가 기획 초기에는 고대 콜롬비아의 전설에 입각한 심각한 시대극이었다가, 방향을 전부 바꿔 지금의 코믹 어드벤쳐물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고보면 묘미가 더해진다. 중후한 분위기가 주를 이루는 스팅의 음악은 그런 방향전환과 마찰이 생겨 일부분만이 <쿠스코? 쿠스코!>에 삽입되게 되었고, 일부 어두운 느낌을 주는 장면들도 많이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 초기의 분위기가 남아 있는 ‘스팅의 뮤직비디오 제작과정’과 삭제된 ‘파차 마을 부수기’장면에서 어둡고 진지하며 역사적인 비장미까지 느끼게 해주는 색다른 이미지를 감상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쿠스코? 쿠스코!>의 서플먼트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줄 만한 특징은, 감독과 제작자의 소개말이나 제작과정에 대한 내용설명에 한글 자막이 지원된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매우 당연한 일이어야 하는 것 같지만, 국내에서 출시되는 거의 대부분의 DVD 서플먼트에는 한글 자막이 지원되지 않고 있는 실정인 것이 사실. 그런 상황이니 영어에 아주 능숙한 사람이 아닌 이상 서플먼트에서 만나는 귀한 정보들이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DVD의 대표적인 장점 중 하나인 추가정보에 대한 부분에서 시청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이런 상황을 개선하려는 <쿠스코? 쿠스코!> DVD의 시도는 칭찬받을 만하다. 더욱이 이 <쿠스코? 쿠스코!>를 시작으로 앞으로 디즈니에서 출시하는 상당수의 DVD가 서플먼트 부분에 한글 자막 기능을 지원할 것이라는 것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김소연/ 미디어 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