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예고편을 보고 내심 '볼만하겠는 걸'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뻔한 내용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끝내는 못 보고 마는 영화들이 종종 있다. 아마 <버티칼 리미트>도 내게 그런 부류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뒤 들려오는 사람들의 평가도 '뭐, 그럭저럭 볼만하더군'이 대부분이어서, 비디오로 출시 된 이후에도 굳이 손이 가질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에 DVD로 출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스케일이 중요한 산악영화니까 화질 좋은 DVD라면 한 번 볼까'하는 생각에 마침내 보고야 말았다. 아무래도 상당 기간동안 주어들은 이야기가 있어서인지, 내용상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몇몇 장면에서 볼 수 있는 특수효과는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산악영화를 보면서 머리 속에 자주 떠올리는 질문이 있다면 그것은 ‘저 장면은 도대체 어떻게 찍었을까?’ 일 것이다. <버티칼 리미트>도 마찬가지였는데, 아주 개인적으로는 CG로 작업한 장면이 생각보다 적게 느껴진 반면, 어딘지 모르게 세트촬영 냄새가 살살 나는 장면이 많아 보였다. 뭐랄까 가파른 산등성이, 험난한 암벽, 갈라진 얼음 구멍들이 화면 가득히 아주 생생하게 잡히는데, 실제로는 별로 긴장감이 안 느껴진다고나 할까. 이런 경우에는 내 생각이 어떻든 간에 확인할 길이 없으니, 영화 잡지에 관련된 기사가 나오면 생각했던 것과 맞춰보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즉석에서 그런 궁금증들을 모두 해결할 수가 있었다. 바로 DVD의 특징중 하나인 서플먼트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버티칼 리미트>의 서플먼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촬영이 진행되는 현장의 이곳저곳을 다양한 시각으로 보여주는 'Search and rescue tales'였다. 주인공들이 이를 악물고 벼랑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영화 속 장면을 보다가, 카메라가 주욱 뒤로 빠지면서 온 사방의 조명, 전선 그리고 거대한 블루 스크린 뒤로 소품을 들고 왔다갔다하는 수많은 스텝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역시 즐거운 경험인 것이다. 총 7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 이 'Search and rescue tales'에서는 그런 식으로 촬영장 전체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장면들이 그야말로 눈사태를 이룬다. 그 장면들을 보면서 '아, 아까 내가 궁금해했던 그 장면은 바로 저렇게 찍었구나'라며 연신 감탄사를 외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제작에 대한 전반적인 과정을 훑어주는 'Surviving the limit'의 경우, 20여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제작에 참여한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싣고 있다. 특히 배우들과 주요 제작진은 물론 영화의 특성 때문에 고용된 암벽 등반가 같은 전문가들의 의견까지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그런 인터뷰를 통해 이 영화가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제작되었는지를 조금은 색다른 시각을 가지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극중에서 남자주인공이 소속되어 있는 회사로 나오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가 서플먼트의 한자리를 품격 높게 채워주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끌기 충분했다. 'National geographic channel's quest for K2'라는 다큐멘터리가 그 것인데,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K2를 등정한 등반가들과 그들의 등정 과정을 다큐멘타리식으로 담아놓은 필름이다. 물론 극적인 요소들을 잘 버무려놓은 영화에 비하면 아무래도 몸을 죄어오는 긴장감이 떨어지고 다소 지루하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지만, 실제로 극한의 상황에 도전하는 등반가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일종의 존경심이 절로 생겨나기까지 한다.
김소연/ 미디어 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