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년 동안 미국 생활이라는 것을 했다. 그 말은 <와호장룡>이 오스카 시상식에서 요요마와 함께 단상을 빛내고 있을 때, 상당히 가까운 곳에서 그 중국인들의 환호성을 즐기고 있었다는 말이다. 문제는 재개봉까지 해주면서 전 미국이 다같이 밀어주던 그 영화를, 웬만한 영화는 거의 다 챙겨서 보는데다가 리안 감독을 상당히 좋아하기까지 하는 내가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대단히 개인적이고 또 쑥스러운 것이라 철저히 숨겨왔지만, <와호장룡>의 DVD를 소개하는 자리니만큼 솔직히 드러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외국어 영역에 관한 한 일종의 금치산자 수준인 나로서는, 중국어 대사에 영어 자막으로 된 <와호장룡>을 내용 파악도 제대로 못하면서 얼렁뚱땅 보고 싶다는 생각이 결코 없었던 것.
그로부터 1년여 동안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꼭 봐야만 하는 영화 0순위에, 항상 <와호장룡>을 올려놓고 벼르고 있었다. 그리곤 결국 돌아오자마자 큰맘 먹고 장만한 DVD플레이어로 <와호장룡>을 보고야 말았다, 물론 한국어 자막을 마음껏 즐기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와호장룡>을 DVD로 본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 씨줄날줄처럼 기승전결이 딱 맞아떨어지는 치밀한 영화들도 좋아하지만, 시각적인 요소가 훌륭한 영화에는 거의 맥을 못 추다시피 광분하는 성격의 소유자라서 그런지 그야말로 영화보는 내내 입가에 가느다란 침 한줄기씩을 달고 감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뭐, 필요 이상으로 예쁘게 잡아주는 장쯔이의 얼굴이 나올 때마다 잠시 제정신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 여리다 못해 가슴이 시리기까지 한 연녹색 대나무숲장면에서는 거의 혼절하다시피 할 정도였다.
역시, 사람들이 ‘화질 하면 DVD’를 부르짖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지 않을까. 초대형 스크린이 아닌 바에야 그렇게 망막을 찌를 듯이 생생한 색감을 전달해 줄 수 있는 매체는 DVD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사실인 것이다. 게다가 <와호장룡> DVD는 DVD만의 또다른 미덕이라고 할 수 있는 서플먼트들이 제몫을 충실히 해내고 있어서 더욱 좋았다. 꼼꼼한 리안 감독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는지 서플먼트 속에는 극장 예고편, 영어판과 중국어판의 뮤직비디오, 스틸 사진들 그리고 양자경과의 긴 인터뷰까지 빼곡이 차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와호장룡> DVD를 보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사운드. 잘 알다시피 광활한 중원을 무대로 협객의 이야기를 다루기는 하지만 <와호장룡>은 <스타워즈>처럼 사운드 스케일이 큰 영화는 아니다. <와호장룡> DVD에서 맛봐야 할 사운드는 오히려 칼날의 울림이나 나뭇잎의 흔들림과 같이 섬세함을 극명하게 묘사한 미세 사운드들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소리이기는 하지만 귀기울여 듣고 있노라면 가벼운 전율을 느낄 만큼 장면을 잘 표현해내고 있기 때문.
그러나 이렇게 매력적인 면이 많았기에 더욱 아쉬웠던 것 하나는, 바로 DVD의 선명한 화질에 힘입어 더욱 어설프게 보였던 피아노줄 무협연기였다. <매트릭스>의 어설픈 가상 무술대련장면은 그나마 짧기라도 했건만, <와호장룡>에서는 도대체 공중을 비용-비용- 뛰어다니는 장면들이 왜 그렇게 끝까지 많이 나오는지…. 여하튼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와호장룡>을 일부러 안 본 경우가 아니라면, DVD를 통해 극장에서 누리지 못한 또다른 형태의 감동을 누려보라고 권하고 싶다.
김소연/ 미디어 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