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비포 선라이즈>를 관람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9년 전.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꿈 많은 고등학생에게 그 영화는 손에 잡힐 듯한 근미래였다. 아무리 짧은 국내 여행길에서도 나만의 <비포 선라이즈>에 대한 갈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5년 뒤. 부산영화제 폐막식에서 <화양연화>를 봤다. 양조위와 장만옥의 완벽한 자태에 감복하는 한편, 차마 말할 수 없는 기억을 봉인하고 돌아서는 차우의 어깨가 안쓰러웠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극적인 화양연화가 조만간 나에게도 찾아올 것이라는 근거없는 믿음도 있었던 것 같다. 다시 4년 뒤. 9년 전 고등학생이었고, 4년 전에는 대학생이었으며, 이제는 (불쌍하게도, 보고 싶은 영화를 시사회 때 제대로 챙겨보지도 못하는) 영화잡지 기자가 된 나는 어느 일요일 오후 집을 나섰다. <비포 선셋>과 <2046>을 연달아 관람한다는 무모한 계획을 가지고 극장으로 향하던 그 길. 여태껏 배낭여행 한번 떠나지 못했고, 화양연화로 기억할 만한 순간도 딱히 없었음이 문득 떠올랐지만 별로 슬프진 않았다.
아마도 <비포 선라이즈> 없는 <비포 선셋>은 가증스런 가정(만일 그때, 네가 나왔더라면. 결혼식장으로 향하던 차 안에서 널 발견하고 소리쳐 불렀더라면 등등)에 의지한 신파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화양연화> 없는 <2046>은 과잉된 매너리즘으로 인해, 소통할 수 없는 오페라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편과 후편을 9년과 4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맞닥뜨린 나에게, <비포 선셋>과 <2046>은 시시해져버린 사랑과 젊음, 어느새 우리 곁을 지나쳐간 화양연화를 향한 애절한 송가(送歌) 그 자체였다. 고스란히 9년의 시간을 얼굴에 새긴 채 등장한 에단 호크를 발견했을 때부터 코끝이 시큰거렸다. 셀린느와 제시가 자동차 안에서 돌이킬 수 없어져버린 자신들을 이야기할 때는 흐르는 눈물과 콧물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기진한 채로 보기 시작한 <2046> 역시 마찬가지. 양조위가 장쯔이의 손을 뿌리치고 나오던 순간, 화면 한구석에서 씁쓸하게 미소짓는 그 얼굴에 아예 가슴이 무너져내렸으니까. 어긋남의 순간을 되새김질하는 제시와 달리, 9년 동안 자신이 잃어버린 모든 절실함을 곱씹는 셀린느의 후회가 와락 내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더이상 어느 것에도 진심을 담지 못하는 양조위의 모습에서, 모든 것에 심드렁해진 나의 모습을 불현듯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극적인 감정의 기복에 스스로도 놀라면서 생각했다.
극장을 나선 뒤. 부은 눈을 하고, 콧물을 훌쩍거리며 캔맥주를 들이켰다. 차가운 밤공기와 술기운의 힘으로 흥분은 가라앉았다. 조금씩 이성과 감성이 균형을 찾아갈 무렵. 두 영화의 전편을 극장에서 볼 수 있었음이, 함께 나이들어가면서 세월의 폭을 감지할 수 있는 영화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이 다행으로 느껴졌다. 돌이켜보니 셀린느의 춤은 화면이 암전되도록 끝나지 않았다. 어쨌거나 차우는 스스로 묻어버린 화양연화를 잊지 않을 것이다. 스크린 너머 나름의 시간을 살게 되는 영화들이 있다. 꿈결같은 시간이 흐른 뒤, 영화 속 그들은 오래된 친구처럼 다시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때는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그들의 변화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햇살 찬란하던 어느 가을날. 잊지 못할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하게 만들었던 두편의 영화가 나에게 준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