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관객도 맘껏 즐길 수 있게!
학원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던 90년, 대동제를 맞은 어느 대학 한 강의실에서는 흰 천을 스크린 삼고, 신문지로 자리를 삼은 500여명의 관객이 모여 있었다. ‘바깥 상황이 좋지 않다’는 말에 잠시 끊긴 영화의 제목은 <파업전야>. 영사기를 돌리던 공대생 채홍필(34)의 손에는 방금 필름을 자르던 커터칼이 들려 있었다. 조금의 웅성임도 없이 앉아 있던 관객에게 다시 빛이 뿌려지기 시작한 건 10분이 조금 지난 뒤였다. 두개의 롤로 이루어진, 90분 남짓한 길이의 영화는 두번의 긴급 중단과 롤 교체에 걸린 시간을 모두 포함한 세 시간의 상영을 마쳤다. 자리는 한동안 미동조차 없더니, 누군가의 선창에 의해 <철의 노동자>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대학 2학년, 자그마한 영화동아리 회장이던 채홍필은 그 순간 영화가 대중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 두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 기계공학과를 중도에 포기하고 16mm 현장에서 뛰어다닌 6개월 동안 그가 확인하고 싶었던 건, 다시 맛보고 싶었던 그런 영화의 힘이었다. 6개월이 10년의 세월로 승화한 지금도 그 갈증은 그대로다.
군대에 들어간 건 16mm를 찍다 충무로 현장에 갓 입성한 직후였다. 작품이 갑자기 엎어지는 바람에 오갈 데가 없던 그는 정해진 수순대로 군대를 택했다. 일, 이등병 시절은 말 그대로 암흑이었고, 같은 시기 입대한 친구녀석과 서신 세미나를 시작한 건 상병이 되면서였다. 원서 한권을 정해 전화로(그는 당시 외부전화를 쓸 수 있는 보직이었다. 그의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편지로 발제를 하고 토론을 하고 반문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일년을 꼬박 매달리다보니 곧 제대였다. 친구는 한창 문화담론이 형성되던 시기, 뮤지컬 연출에 흥미를 보였고, 채홍필은 여전히 영화였다. 친구의 뮤지컬 작업을 도우면서 틈틈이 현장을 모색하던 중 문승욱 감독을 만나 <나비>의 조감독을 맡기도 했다. 부천영화제에 발을 디딘 건 순전히 경제적 궁함을 타개해보려는 미봉책이라고 말하지만, 역시 영화가 군중에 안기는 그 살떨리게 멋진 경험을 다시 느끼기 위해서일 것이다. 올해는 특히 초보관객이 많을 것 같다는 사무국장의 지적대로 자원활동팀은 바짝 긴장 중이다. 부천이라는 도시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라 게시판에 물어오는 초보관객뿐만 아니라 그들을 긴장시키는 또 하나의 존재는 올해 부천영화제 최대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문 차일드>를 보기 위해 몰려들 전국의 팬들이다. 그로서는 관객의 안전관리가 최대한의 목표다. 조용한 성격에 싫은 소리 한번 못할 것 같은 그지만, 공연기획과 연출에서 누구보다 꼼꼼한 조직력을 선보이고 있어 영화제가 처음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 노련한 자원활동가들에게 뒤지지 않는 초보팀장의 활약상을 보고 싶다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7월10일 부천으로!글 심지현 [email protected]·사진 이혜정 [email protected]
프로필
기계공학과 89학번 · 97년 창작 뮤지컬 연출 · <나비> 조연출 · 전주 소리문화 축제 등 다양한 공연 기획을 해오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자원활동팀장으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