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단짝 콤비를 보면 항상 생각한다.저 둘 중 누가 살리에리일까?
우리 학교는 공대가 커서 시험기간 응용수학2를 칠 때면 학교 전체가 들썩이곤 했다
착한 학생들은 밤을 새우기도 하지만 일찌감치 포기하는 자들도 있다…(내 동기들은 이 부류). 나의 동아리에 같은 과를 다니는 두명의 후배가 있었다. 둘은 아주 성향이 달랐지만 단짝들이다. A는 학교가 들썩이는 응수 시험 전날 저녁 9시까지 공부하곤 “아… 난 공부 다했다”면서 기타를 뚱끼탕 퉁기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러면 어김없이 눈이 충혈되어 동아리방으로 들어온 B는 초조해하며 밤을 새워도 못한다는 표정을 짓다가 “아… 공부 다했다”며 기타를 뚱끼탕하는 A를 보며 부러운 표정으로 서성이다가 다시금 도서관으로 가곤 했다
물론 B는 밤을 꼴딱 새웠을 것이다. A는 기타치며 노래부르다가 맥주도 한 모금 마시며 눈을 지그시 감다가 자러 들어갔겠지. 시험결과? 물론 B가 항상 근소한 차이로 잘 본다. 문제는 바로 이거다. 말하자면 그 ‘근소함’… 때문에 B는 잘 나온 점수에도 불구하고 항상 열패감에 빠져 있었다. A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역시나 노래를 부르곤 했다. A는 시도 잘 썼다. 딱딱한 사회과학모임에서 보면 그가 끼적인 시는 우리의 청량제요 감성의 안식처였다. 반면 B는 묵묵히 세미나 주제를 열심히 발제해온다. 이들을 보면서 난 B를 많이 챙겨줬던 거 같다.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그러는 그에겐 어쩐지 인간적 매력이 더 났는지 모를 일이다. 또는 A의 화려함과 여유로움에 나도 질렸거나 나말고도 다른 선배들이 잘 대해주니 나라도 B를 챙겨야지 하며 이른바 어둠과 그늘의 패거리를 만들어 놀곤 하였다. 이름하여 ‘살리에리 클럽’이었다.
1984년, 밀로스 포먼 감독의 <아마데우스>에 나온 ‘살리에리’란 인물.
80년대에 사춘기나 청년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이 인물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후후후… 이런 이야기를 끄집어내니 우습지만 항상 이런 캐릭터 대비는 동서고금 장르를 떠나서 더 극명히 나오지 않는가. 마쓰모토 다이요의 <핑퐁>이란 만화를 보면 탁구에 천부적으로 재능이 있으나 승부욕이 없는 천재소년 페코와 항상 노력하는 1등소년 안경잡이 스마일이 나온다,
<유리가면>의 가난하고, 평범한 외모이지만 연기천재인 오유경(마야)과 배경, 외모, 재능 모든 것을 갖추었으나 천재 오유경을 라이벌로 생각하면서 끝없이 노력하는 소녀 신유미(아유미). 이 둘의 대결은 세기의 대결인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76년에 시작되어 어찌된 일인지 이 만화는 2003년이 된 지금도 끝낼 기미를 안 보인다(작가가 신흥종교 교주가 되었다나 뭐라나). 물론 여기서도 매력있는 것은 신유미의 오유경에 대한 열패감이다.
재능있는 천재와 노력하는 2인자의 이야기는 현실에도 있다. 사상적으로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같은 사람도 있지만 늘 보는 TV화면에서 나오는 서경석과 이윤석, 예전의 남철·남성남, 같은 곳에서 같이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었고 동시에 영화를 준비한 장준환과 봉준호 등등 단짝, 콤비 플레이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누가 2인자 정서를 가진 살리에리일까를 생각해보곤 했다. 재능이 있는 자를 동경하고 몰래 질투도 하고 열심히 노력도 하건만 좌절의 눈물을 흘리는 인간적인 살리에리. 하지만 그 재능있는 자를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살리에리, 이 살리에리의 피를 이어 신의 작품이 아닌 살아 숨쉬는 인간의 불완전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이는 과연 누구일까? 누군 모차르트도 살리에리도 못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뭐냐고 투덜거린다. 쳇… 뭐긴 뭐야. 세상 게임의 룰을 초월한 절대강자 진정한 루저지…. 하지만 살리에리 의식은 어떤 관계에도 나타난다. 형제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형제 사이의 살리에리 의식은 친구 사이의 것과 사뭇 다르다. 자신에 대한 포기가 빠르기 때문이다.
동료 사이에선? 영화판에도 있다. 수많은 PD들은 살리에리의 후예들… 감독들은 톰 헐스처럼 으하하하하 웃겠지…. 앞의 후배들 A와 B는 이제 모두들 결혼하여 아기들 낳고 잘산다. 가끔 이메일로 딸래미 사진을 보내주며 ‘예쁘죠? 나 안 닮아서 다행이죠’ 하며 딸 앞에 헤헤 웃는 팔불출 아빠들이 되어 있다. 그들이 한때 눈부신 질투와 번민과 좌절의 시절을 기억이나 하는지…. 난 시계탑 건물에서 밤 꼴딱 새운 그들의 충혈된 눈빛을 기억한다.김정영/ 프로듀서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