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M컬쳐 박무승(42) 대표는 좀처럼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매년 ‘파워50’에 이름을 올리지만, 정작 그에 대해 알려진 바가 많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전형적인 금융권 출신. 창투사인 국민기술금융에서 15년 동안 투자심사역을 맡았다. 영화쪽에 눈을 돌리게 된 건 97년부터다. 이후 <퇴마록> <이재수의 난>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텔미썸딩> <행복한 장의사> <해피엔드> 등 10편의 작품에 투자했다. 그가 주목받은 것은 전액 투자한 <반칙왕>이 성공을 거두면서부터. 지난해 2월부터는 국민기술금융에서 떨어져 나온 KM컬쳐의 대표를 맡고 있다. 영화 외에도 음반 등의 사업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정작 충무로에선 “투자 결정에서 지나치게 신중하다”는 평가를 들어왔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다르다. 그동안 ‘씨 뿌려왔던’ 영화들이 본격적으로 제작에 들어갔기 때문. 이미 개봉한 <중독> 외에도 <이중간첩> <빙우> 등 내년에 개봉할 큼직큼직한 작품들의 메인투자를 맡고 있다. 곧 선보일 <품행제로>는 직접 제작자로 나선 영화. 매년 자체 제작하는 영화 1편을 포함해서 6∼7편의 영화에 투자하겠다는 그의 구상을 들어봤다.
<품행제로>는 KM컬쳐가 직접 제작한 영화다.
→ 얼추 3년이 다 되어간다. 시나리오 고치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동안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전엔 몰랐는데 직접 해보니 제작사들의 애로사항을 알겠더라. 사실 투자할 때는 세부적인 제작진행 사항에 대해선 잘 모른다. 중간중간에 그림 보고서, 왜 이 장면은 시나리오랑 느낌이 다르냐, 뭐 그러는 게 전부다. 근데 막상 현장을 차려놓고 보니까 한 다리 건너서 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더라. 돌발사항도 있고 그때마다 대처해야 하니까. <품행제로>도 일부 액션장면은 CG작업까지 해놓고 나서 결국 잘랐다. 돈 들여 찍었는데 못 썼다고 하면 전엔 기획단계서부터 예상했으면 헛돈 쓰는 일 없을 것 아니냐고 그랬을 텐데.
제작까지 하겠다는 맘을 먹은 건 언제부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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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컬쳐를 만들면서부터다. 음반이든 영화든 이쪽에서 생존하려면 콘텐츠를 갖고 있어야 한다. 사실 제작 안 하면 국민기술금융에서 나와서 따로 KM컬쳐라는 회사를 차릴 필요가 없었다. 얼마 전까지 간접생산이었다면 앞으로는 1년에 1∼2편씩 직접생산도 할 생각이다. 요즘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앞으로는 제작자로 불러달라고 그런다. 다른 작품에 투자하는 건 돈이 조금 더 있어서 병행하는 것일 뿐이라고 하고.
국민기술금융에서 15년 가까이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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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된 직장을 차고 나온 건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어서다. 처음엔 반대도 많았다. 친한 친구들은 월급도 많이 주고 망할 염려없는 회사를 왜 나오느냐고 그랬다. 월급도 실제로 3분의 2 수준으로 줄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엔터테인먼트쪽 일을 해보려면 아무래도 그곳에서 나와야 했다. 영화라는 게 6개월 만에 뚝딱 하고 나올 수도 있지만, 2∼3년 이상 걸리는 프로젝트가 대부분이잖나. 때론 회수가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투자도 필요한 것이고. 예를 들어 국민기술금융 안에서 사전개발비 명목으로 투자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으니까.
창투사에서 영화쪽 투자를 도맡게 된 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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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쯤이었나. 내가 회사에 큰 수익이 나게 한 일이 있었다. 사장이 뭘 하고 싶냐기에 승진이나 보너스 같은 것말고 영화쪽에 한번 투자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이뤄진 거다. 까먹어도 좋으니 10억 범위 내에서 해보라고 해서 <퇴마록>과 김민종 음반에 투자했다. 둘 다 잘됐다. 사실 다른 곳보다 국민기술금융은 훨씬 보수적인 곳이라 만약 그때 잘 안 됐으면 그 이후로는 투자를 안 했을 거다.
엔터테인먼트쪽에 관심을 둔 것은 그 무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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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관심은 그 전이다. 92년에 회사에서 보내줘서 미국에 연수를 갔다. 벤처캐피털이 엔터테인먼트쪽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걸 거기서 처음 봤다. 그러면서 앞으로 나도 이런 소프트웨어나 서비스, 유통 뭐 이런 쪽을 메인 투자종목으로 삼아야겠다고 맘먹었다. 좋은 투자심사들 보면 전자, 기계쪽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데 난 지금도 컴맹일 정도로 그쪽에 관심이나 지식이 없던 차에 주업종으로 영화나 음반이 눈에 들어왔다.
일신창투가 <은행나무 침대>에 투자해서 상당한 수익을 거둬들였다. 당시에도 영화쪽 투자를 고려할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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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에도 의뢰가 많이 들어왔었다. 그런데 돈이 영화계에 일시적으로 몰리면서 제작비가 이전보다 30∼40% 뛰었다. 통계적으로 봤을 때 도저히 수익 맞추기가 어려워 보이더라. 그러다 IMF 터져서 다들 영화 안 한다고 할 때 이제 투자하면 괜찮겠다 싶었다. 영화사 봄의 오정완 대표를 만나서 <반칙왕>을 하자고 했던 것도 그 무렵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하잖나. 남들이 다 괜찮다고 너도 나도 몰려들 때는 성공해도 나중에 먹을 게 없다. 주식시장도 그렇지 않나.
하지만 정작 투자 스타일은 지나치게 조심스럽다는 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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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단순히 돈만 들고 시장에 뛰어들어선 안 된다고 봤다. 이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전혀 모른 상태에서 어떻게 일할 수 있나. 얼마 안 돼서 충무로에서 빠져나갈 것 아니라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본 거다. 그렇다고 대신 앞뒤 재고 계산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프로젝트하고 상관없이 10군데 영화사들에 뿌려놓은 개발비만 벌써 30억원이다.
씨네2000, 쿠앤필름 등 어느 정도 검증된 제작사들에 주로 투자해서 그런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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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갖춰진 상황에서 돈만 넣은 것 아니냐는 말 많이 한다. 그런데 오해다. 처음 투자할 때부터 그런 모양새가 다 갖춰진 것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회사의 제일 큰 철칙은 일단 시나리오다. 시나리오가 좋으면 배우들부터 욕심이 가서 붙고, 스탭들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이병헌이 출연하겠다고, 한석규가 출연하겠다고 한 것 아니다. 얼마전 투자하기로 결정한 <빌리브>만 하더라도 신생 제작사다. 제작 노하우에 대한 검증은 안됐지만, 시나리오 하나만 보고서 결정한 경우다.
KM컬쳐가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은 충분한가. <중독>의 경우 흥행성적이 기대만 못해서 다음 작품들에 대한 부담이 클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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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규모보단 못하겠지만, 자금은 넉넉한 편이다. 순수 자기자본만 100억원 정도 갖고 있고, 기관투자자인 창투사와 함께 출자해서 조성한 펀드도 160억원 정도 있다. 자금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벌이는 것은 내 스타일하고 안 맞기도 하고. <이중간첩> <빙우> <두 사람이다> 등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작품들을 제작하기에 돈은 충분하다. <중독>은 관객이 100만명 조금 넘었는데 국내에서만으론 제작비를 채우진 못할 것 같다. 하지만 감내할 수 있는 선이다. 그냥 돈복이 안 따르나보다 한다.
충무로에 자금이 말랐다고들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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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2년 사이에 충무로 규모에 비해 많은 돈이 몰려왔는데 그때를 기준으로 두고 비교하니까 그런 거다. 서브 투자자들의 자금이 일시적으로 빠져나간 것 정도로 보면 된다. 대형 블록버스터 몇편의 흥행이 안 좋았다고 해서 투자자들이 영화 쪽에 관심을 버린 것도 아니다. 무슨 큰 문제에 봉착한 것처럼 몰고갈 필요는 없다.
<중독>의 경우, 시네마서비스가 투자했다가 도중에 빠졌는데. 아무래도 배급을 놓고서 쇼박스와 충돌이 있었을 것 같다. 배급 파트너로서 쇼박스와의 관계는 앞으로도 지속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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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에 이야기할 땐 공동투자를 하기로 했었는데 막상 개봉을 앞두고 쇼박스하고 시네마서비스가 배급이라는 부분에서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결국 괜히 어렵게 같이 살지 말고 모양좋게 정리하자고 해서 그렇게 된 거고. 쇼박스는 우리가 투자하는 영화에 공동투자하고 배급권을 갖는 식인데, 일단은 같이 간다. 비즈니스라는 게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야 하니까 지속 여부는 지금 뭐라 말하기 좀 그렇지만.
추후에 직접 배급할 뜻이 있다는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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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4∼5편씩 하니까 주위에서 배급도 해보지 한다. 하지만 아직까진 우린 큰 욕심을 안 갖는다. 시류와 반대되는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배급의 힘이라는 거 안 믿는다. 사실 소프트웨어가 좋으면 극장은 따라온다고 본다. 영화라는 상품 자체가 도매상의 입김보다는 소비자의 선택이 결정적이다. <달마야 놀자>만 하더라도 그렇잖나. 메이저배급사가 아니었지만, 흥행에 성공했다. 시네마서비스가 배급 파워가 세다고 하지만, 그건 좋은 콘텐츠를 확보하고 있어서다.
영화뿐 아니라 음반이나 매니지먼트사업도 벌이고 있는데, 어느 한쪽에 주력할 생각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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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이나 매니지먼트사업 접고 영화만 한다고 해서 시네마서비스 못 이긴다. 그렇다고 음반에 힘을 쏟는다고 도레미레코드를 이길 수 있나. 매니지먼트도 마찬가지다. 싸이더스 HQ를 못 이긴다. KM컬쳐는 처음부터 토털엔터테인먼트사를 겨냥한 것이다. 그래서 무리해서 음반회사를 인수했고. 우리 모델은 한 분야에서 1등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에서 고루 3∼4등 하는 거다. 앞으로 방송 외주제작도 할 계획이다. 대신 스탭 바이 스탭으로 무리하지 않고 해나갈 것이다.
‘금융맨’이라는 꼬리표를 빨리 떼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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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캐피털 출신이니까 나나 회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럴 수밖에 없다. 뭐 또 나를 돈을 쥔 투자자로 보는 것 때문에 생긴 불만은 없다. 중요한 건 앞으로 투자자로 계속 인식될 것인지 아니면 내가 희망하는 것처럼 될 것인지는 내가 하게 나름이다.
글 이영진 [email protected] 사진 오계옥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