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수젯(골디 혼)과 비니(수잔 서랜던)는 록 스타치고 그녀들의 품을 거쳐가지 않은 이가 없는 60년대의 전설적 그루피였다. 30년이 흐른 현재. 록 클럽 바텐더로 일하며 청춘의 기억을 지탱하던 수젯은 갑작스럽게 해고당하자 20년이나 보지 못한 단짝 비니를 찾아 피닉스로 떠난다. 도중에 빈털터리로 자동차 기름이 떨어진 수젯에게, 신경이 쇠약한 시나리오 작가 해리(제프리 러시)가 동행으로 끼어들고 수젯은 그의 호텔방을 멋대로 공유한다. 그러나 다시 만난 비니는 존경받는 교외 상류층 주부, 현모양처의 전형으로 인생을 리모델링한 지 오래다. 비니는 방탕한 과거사가 들통날까 봐 수젯을 꺼리지만, 점점 수젯의 생기와 쾌락주의에 감염된다.
■ Review
할리우드의 록 클럽 위스키 고고의 바텐더는 특이하게도 중년 여자다. 동료의 경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근무 중에 럼 앤 콕을 홀짝이는 그녀의 시선은 스테이지 위가 아니라 스테이지 앞에서 애절하게 팔을 뻗고 아우성치는 소녀들에게 꽂혀 있다. 그 자리는 한때 그녀, 수젯의 것이었다. 수젯은 히피의 시대는 오래 전에 가버렸건만 아직도 ‘머리의 꽃’을 떼지 않고 사는 여자다. 그래서 아들뻘 로커에게 추파를 던지고 해고를 통보하는 매니저에게 “여기 화장실은 짐 모리슨이 나를 안고 쓰러졌던 곳이야! 나는 수젯이야!”라고 소리지른다. 술 마시며 일한다고 실직 당한 그녀는 서빙에만 만족할 수 없는, 자기도 즐기고 싶은 바텐더다. 그루피 시절 록 뮤지션들의 옆구리에 매달려다니던 10대의 수젯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는 약간의 패밀리 비즈니스가 있다. <와일드 클럽>의 골디 혼이 분한 수젯은 <올모스트 페이머스>에서 그녀의 딸 케이트 허드슨이 연기한 그루피 페니 레인의 수십년 뒤 모습에 해당한다. <와일드 클럽>의 골디 혼은, 딸의 페니 레인과 겨루어 전혀 꿀리지 않는 유능한 뮤즈다. 비록 리라를 타는 대신 카 스테레오를 쩌렁쩌렁 틀어대는 뮤즈지만, 변호사 남편을 만나 넉넉하게 산다는 친구 비니에게 집세나 빌려볼 요량으로 떠난 그녀의 처량한 여행은 아주 많은 인생을 구제한다. 불꽃놀이 같았던 청춘을 궤짝에 넣고 잠근 채 지루한 주부로 늙어가는 비니, 단 한번의 히트를 내고 손이 굳어버린 작가 해리, 성년의 문턱에서 벌써 권태로워진 비니의 딸이 그들. 심지어 응급실에 실려가는 사경의 환자마저 그녀의 가슴을 흘긋대느라 눈을 뜬다. 그리고 스크린 위의 골디 혼은 마른 나무에 꽃을 피우는 수젯의 ‘괴력’에 값할 만큼 눈부시다. 스판덱스 차림에 실리콘으로 부풀린 가슴을 내밀고 활보하며 반지름 10m의 분위기를 난감하게 만드는 아줌마 수젯은 부담스런 존재로 관객 앞에 등장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무 유보도 필요없는 ‘귀여운 여인’으로 관객을 설득해 버린다. 수젯의 치유력은 주로 그녀의 섹슈얼리티에서 솟는다. 1960년대와 캘리포니아로부터 2000년대 애리조나의 교외로 날아온 수젯은 섹스의 요정이고 모든 것을 받아안는 모성의 여신으로 그려진다. 그녀의 도발을 두려워하던 작가 해리는 수젯의 숙련된 손길에 말라붙었던 창조력의 수액을 다시 끌어올리고 그녀의 주책이 우아한 거실에 얼룩을 남길까 전전긍긍하던 친구 비니는 남자들의 눈길을 독점하는 수젯에게 “내 옷은 운전 면허시험장 벽과 똑같은 색인데, 너는 꽃 같아!”라며 맥없이 항복한다.
그러나 데뷔감독 밥 돌만이 <와일드 클럽>을 연출한 태도는, 수젯보다 비니의 패션에 가깝다. 영화는 다소 지루한 디자인의 재킷 단추를 맨 위까지 단정하게 꼭꼭 잠그고 어디까지나 후일담의 어투로 1960년대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히피풍의 인물이 등장하는 건강식품 광고에 빗댄다면 너무 심술궂은 표현이겠지만 <와일드 클럽>에서 1960년대를 대변하는 섹스와 마리화나와 로큰롤은 변비와 결벽증을 치료하는 일종의 알약이고, 위기를 맞은 중산층 주부와 모범생의 숙면을 위한 잠언집이다. 이질적인 가치의 자극을 받아 건전한 삶을 재정비하는 ‘제자리 찾기’(reassurance)의 결론을 향해 달려가는 <와일드 클럽>은 초심자가 처음 배운 기본 코드로 작곡한 소곡처럼 전개가 뻔하다. 변호사 남편은 비니의 변모를 별다른 과정없이 받아들이고 철없던 딸은 때마침 졸업식 연설에서 자신에게 솔직하게 살자고 역설해 박수를 받는다.
(왼쪽부터 차례로)♣ 20년 만에 만난 단짝친구들. 처음에 수젯을 경계하던 비니는 그루피 시절로 돌아간 듯, 분방했던 자신을 되찾는다.♣ 강박이 심한 시나리오 작가 해리는 수젯을 만나 섹스를 나눈 뒤 창작열을 되찾는다. ♣ 중년여인이 된 비니는 철없는 두딸과 티격태격하는 주책맞은 엄마가 되어버렸다.
이 단조로운 소곡이 심장을 울리는 몇개의 절묘한 비트를 포함하고 있다면 그것은 모두 골디 혼과 수잔 서랜던의 몫이다. 원숙한 두 여배우는 마릴린 먼로와 베티 데이비스처럼 고전적이고, 능란하고 교활하며, 젊음을 붙잡으려 애쓴 수술의 흔적까지 포함해 아름답다. 억지로 나이보다 더 젊거나 더 늙은 여자로 ‘분장’하지 않은 그녀들의 표정을 볼 수 있는 영화가 드문 것은 큰 손실이다. <와일드 클럽>의 모티브는 여성의 관점으로 반문화를 보는 연구자들의 관심사와도 닿아 있다. 남성 록 스타들이 저항문화의 위대한 기수 노릇을 하는 동안 그들의- 그리고 그 로드 매니저들의- 바지 속을 위안하는 인형처럼 여겨졌던 여자들은 어떻게 착취당했고 또 어떻게 해방되었나 <와일드 클럽>에서 권력관계는 잠깐 역전된다. 지미 헨드릭스와 짐 모리슨은 죽었고 비니와 수젯은 살아남아 추억한다. 로커들의 성기를 찍은 폴라로이드를 야구 카드처럼 갖고 놀면서. 하지만 <와일드 클럽>의 실용적인 교훈은, 지혜는 거칠고 미숙한 생의 한 시기를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가치에 항복할 때에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들이 숙취로 구역질할 때 수젯처럼 “괜찮아. 그냥 파란 하늘을 생각해”라는 쓸모있는 조언을 하며 토닥여줄 수 있는 어른들은 거칠고 미숙한 길을 무릎을 깨며 끝까지 가본 사람들뿐이다. 김혜리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