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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2001-04-03

DJUNA의 오!컬트 / <라 트라비아타>

오페라가 서구 모든 예술을 종합한 장르니, 가장 영화와 어울리는 장르니, 하고 떠들어대지만 정작 훌륭한 오페라영화를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잉마르 베리만이 <요술 피리>를 아름다운 영화로 만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 영화는 음악 애호가들을 만족시키기엔 음악적 힘이 너무

가볍습니다. 그뒤에 나온 조셉 로지의 <돈 조반니> 같은 영화들도 생각만큼 영화적 매력은 없습니다. 카라얀 아저씨가 직접 감독한 오페라영화들은…

말을 말죠.

어떻게 보면 당연합니다. <햄릿>을 영화로 각색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진행이 빠르고 액션도 많은데다가 각색할 여지도 많습니다. 감독들은

대사를 자르고 장면 순서를 바꾸면서 영화라는 장르에 <햄릿>을 끼워 맞출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페라는 다릅니다. 그런 식으로 각색할 수 없어요. 호박 속에 굳어버린 벌레처럼 드라마가 음악 속에 갇혀버렸으니까요. 대부분 오페라는

장면 전환도 느리고 액션도 적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무대 녹화 이상이 되기는 힘들죠. 사실 잉마르 베리만의 <요술 피리>가 그렇게 성공했던

데에는 그런 무대적 매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편법이 숨어 있었습니다. 현명한 선택이었지만 매번 쓸 수 있는 건 아니죠.

그러다 80년대 초에 프란코 제피렐리가 <라 트라비아타>를 선보였을 때 그건 일종의 충격이었나 봅니다. 영화음악실에서 고 정영일 아저씨가

그 영화에 대해 떠들어댔을 때 얼마나 구미가 당겼는지요. ‘와, 이 영화에서는 가수가 막 말을 타고 노래를 해요!’ 운운…. 다시 말해

무리없이 오페라를 각색했으면서도 영화적 매력을 잃지 않은 아주 희귀한 영화가 탄생했다는 것이었죠. 레너드 말틴 가이드에 아직도 이 영화에

별 넷이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사람들의 반응도 상당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 <라 트라비아타>는 당시 그런 칭찬을 들을 가치가 있었습니다. 훌륭한 오페라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좋은 실내극 영화이기도 했어요. 제피렐리의

오페라 무대에서도 볼 수 있었던 그 근사한 세트 속에서 유려하게 흘러가는 카메라가 또다른 음악을 만들어내는 상당히 훌륭한 영화였습니다.

지금도 제피렐리가 오페라영화 장르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냐고 누가 물으면 전 그렇다고 대답할 겁니다.

그러나 제피렐리의 실험은 꽤 짧게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뒤에 <팔리아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타> <오텔로>가 연달아 나왔고, <오텔로>는

국내 개봉되기도 했습니다(혹시 선생님 따라 이 영화를 단체 관람한 경험이 있는 분 계신가요?). 하지만 그게 끝이었어요. 제피렐리가 다시

극장용 오페라영화를 만든다는 소린 들은 적 없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영화의 진짜 고객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팬들이 그의 작품에 그렇게 대단한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으니까요. 아무리

제피렐리가 영화를 잘 만들었어도 결국 그건 립싱크 쇼였습니다. 클래식 애호가들은 그런 립싱크 쇼보다는 공연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는 실황

녹화를 훨씬 선호하는 편이니까요. 한번의 쇼로는 먹힐지 몰라도 결국 장사가 안 되는 일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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