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1.22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창립대회. 이에 정부,
무노동 무임금 등을 골자로 한 단체교섭 공동지침 마련.
“저는 지금 16mm 극영화 <파업전야>를 상영하였다는 영화법위반 죄명으로 검찰에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적용된 법 조항이 그 입법취지와는 상관없이 일반적이고 사회통념적인 법상식에 어긋난 것이고 현행 영화법을 구시대적으로
해석하여 영화창작 혹은 그 예술행위를 국가기관에서 독점적, 일방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발상에 따른 결과라면 문제는 심각합니다.”
-93.4.24 당시 <파업전야>를 상영해 공연법 위반으로 기소, 피고였던 이용배
감독이 대법원에 제출한 항소이유서 중에서.
“제작하면서 상영계획을 짰고, 그대로 일반에 공개한 최초의 영화였다. 현장 관객을 설정하고 만든 작품이니만큼, 압수수색이 들어온 뒤에도 전국단위의 공동투쟁이 가능했던 것이다. 좋은 기억이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장윤현 감독이 떠나고나서 예전의 영광에 붕 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차기작에 대한 논의가 있긴 했다. 전국 단위의 사회단체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전교조의 내용을 가져와 <닫힌 교문을 열며>를 만들었다. 아쉬운 것은 <파업전야> 때와 작업방식도 똑같다는 거다. 빈궁한 것도 똑같고. 책임감은 더 없고. 애니메이션 현장에 이미 들어가 있던 내겐 그렇게 보였다. 다들 장 감독과 같은 고민들, 그러니까 장산곶매가 실력을 더이상 축적시킬 수 있는 구조도 아니었고, 그에 비해 주위의 기대치는 높았고, 결국 구성원이 들쭉날쭉했던 것 같다. 새로운 동참자들이 있긴 했지만, <파업전야> 이후 영화단체로서의 고유성은 더 줄었던 것 같다.
-<파업전야>를 돌아보면서 이용배 감독이 남긴 말 중에서
■<파업전야> 16mm/ 컬러, 흑백/ 105분/ 1990년/ 장동홍, 장윤현,
이은기, 이재구
“우리보다 싼 기계가 어딨어.” 한 노동자의 컬컬한 탄식은 이내 들이부은 찬 ‘쐬주’에 말려 들어간다. 월급날까지도 원치않는 특근을 해야 하고, 심지어 동료에게까지 칼을 들이밀어야 하는 공장에서, 그들은 질식 직전이다. 새카매진 목구멍을 간신히 틔워주는 것은
한잔의 술뿐인 인생들. 누리지 못할 ‘모던 타임즈’를 위해 기꺼이 육신을 바쳐야 하는 사람들. 천국의 신화를 위해 지옥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한 금속공장 단조공장을 무대로 이곳 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세세히 그리는 <파업전야>는 ‘노동자는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라는
질문에 교과서적으로 답하는 영화다. 비인간적인 노동조건, 학출의 위장취업, 민주노조 결성, 이어지는 해고, 구사대의 등장 등 영화는 전형적인
80년대의 스토리보드를 이어간다. 하지만 구태의연한 것은 정작 ‘영화’가 아니라 처참한 ‘현실’이었던 것일까. 불충분한 조명과 입이 맞지 않는
후시녹음이 간간이 눈과 귀를 괴롭히겠지만, 기계를 멈춰 세우고 스패너를 움켜쥐는 노동자들을 클로즈업한 엔딩의 울림은 여전하다.
장산곶매의 두 번째 장편 극영화인 <파업전야>는 제작비 2천만원을 들여 89년 4월부터 경인지역 공단을 직접 취재한 뒤, 실제로 파업중이던
공장에서 3개월 동안 찍었다. 푸른 옷의 노동자들을 정면으로 다룬 이 영화의 맥동은 실로 대단했다. “헬리콥터를 앞세운 공권력을 무장해제시킨
영화.” 10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따라붙는 ‘전설 같은’ 수식이다. 90년 4월7일, “파업을 선동할 뿐 아니라 한국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지 않았다”며 공권력은 당시 <파업전야>를 상영하던 서울의 예술극장 한마당을 침탈, 영사기와 프린트를 압수했다. 이에 전국 18개 단체들이
연대, 공동투쟁위원회가 결성됐고, 같은 달 11일부터 재상영에 들어갔다. 첫 번째 상영이 있었던 4월11일 전남대학교에는 1800여명이나 되는
병력이 투입됐지만, 500여명의 관객들은 <파업전야>을 지켜냈다. 독립영화가 든든한 후원자들과 조우한 일대 ‘사건’.
■<어머니, 당신의 아들> 16mm/ 컬러/ 84분/ 1991년/이상인
영화제작소 ‘청년’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장편영화. 학생운동에 몸담고 있는 아들과 그의 어머니 사이에서 벌어진 갈등을 그리고 있다. 1991년
4월 상영 당시 필름을 압수당하고, 제작자인 이상인 감독이 구속되기도 했다.
■<`Wet Dream`> 16mm/ 15분 30초/ 컬러/1992년/ 김윤태
흠씬 젖은 꿈? 혹은 몽정. 장마가 계속되는 장례식 3일 동안, 어떤 한 남자가 꾸는 몽환적인 꿈을 비구상적으로 표현한 작품. 몸을 옥죄는
어둠이 폐소공포증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등 억압당하는 몸에 비해 푸른 톤으로 표현된 심상들이 대비되고, 이러한 이미지들이 혼란스럽게 섞여
있는 실험영화. <다우징> <`video ritual`> 등으로 이어지는 김윤태 감독의 ‘제의의 삼부작’ 중 첫 번째 작품.
■<`org`> 16mm/ 흑백/ 13분/ 1994년/ 임창재
“영화에서 한 남자가 자살을 한다. 새로운 소재는 아니다. 남자의 죽음은 외부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키는 극단적인 방법이다. 삶을 포기. 그런데 이상하지 않는가. 94년의 봄과는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 아닌가.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말하고 싶다. 죽음은 당시 내가 바라보고 느끼던 것에 대한 하나의 은유이다. 죽음으로서의 단절, 단절과 단절의 틈새로 보이는 이어짐. 이어짐으로서의 또다른 생명. 역사는 이렇게 흘러가는 것 아닌가. 새로운 현실은 낡은 배경을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것이 더 새로워질 수 있는 통로이다. 그러나 영화적으로 이것을 성취하였는가? 아니다. 단지 출발일 뿐이다.”
-임창재 감독의 <`Org`>에 관한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