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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영화 회고전 - <판놀이 아리랑>외
2001-03-28

<판놀이 아리랑><강의 남쪽><문><그 여름>

1980.5.17 정부 비상계엄 전국 확대, 계엄포고 10호 발표

“서로가 타인이었던 자들이 영화라는 낯선 형식의 틀 안에서 문화원을 찾아다니며 원했던 영화를 봤고,

중국집과 다방을 옮겨다니며 영화이론 서적도 뒤적거려봤으며 또한 지금은 사라진 아르바이트 덕분으로 세명 정도가 8mm 카메라를 구입하여 몇편의

습작을 통해 작품제작에의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며…자신들의 영화에 대한 애착을 설익은 막걸리 몇잔으로 토해내기도 했다.”

-80.11.7∼8일 서울대학교 26동 대형강의실에서 열린 얄라셩의 첫 번째 영화마당

자료집중에서

“영화는 일종의 도피 비슷한 것이었어. 그래서 영화과로 가게 됐고. 개인 작업을 하다 제1회 작은영화제에서 얄라셩 같은 곳도 있구나, 처음

알았지. 배타적인 감정들도 있었어. 운동 차원에서 접근하는, 순수하지 못한(웃음) 이들이었으니까. 그래도 함께 모일 수 있었던 건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생각들이었던 것 같애. 누구에게나 그런 강박증 같은 게 있었어. 그때는. 물론 다들 테크닉이나 영화문법을 충분히 숙지하고 카메라를

든 것은 아니지. 영화과에서 배울 수 있었던 것은 고작해야 낡아빠진 이론들뿐이었으니. 그런 참에 나에게 누벨바그는 성서였어. 비디오데크있는

다방을 찾아다니면서도, 우리는 작가여야 한다고 생각했어.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

-80년 초를 회고하는 서명수 감독

■<판놀이 아리랑> 8mm/ 18분/ 칼라/ 서울영화집단/ 1984년

“현실참여,

공동창작” 80년대 영화운동의 시발을 알리는 서울영화집단의 첫 번째 작품. 82년 3월 박광수, 김홍준, 문원립 등 서울대 영화서클이었던 얄라셩

출신들이 주축이 된 서울영화집단은 이 영화에서 연우무대의 공연 <판놀이 아리랑 고개>를 옮기되, 그들의 ‘열린 영화’에 대한 고민을 형식적인

실험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영화는 일단 소작농들의 한맺힌 절규가 절절한 판놀이 무대를 택한다. 당시 연우무대의 이 공연은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되는 일종의 마당극. 하지만 84년 ‘작은 영화를 지키고 싶습니다’의 자료집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영상과

사운드를 분리한” 다음 이를 결합하는 색다름을 선보인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소재인데도, 좀처럼 긴장을 잃지 않게 만드는 이유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머리를 매만지는 배우와 소품을 들고서 요리조리 장난을 치는 무대 뒤 장면을 카메라가 두리번거리는 동안 사운드는 “오살 육실헐

놈의 세상”이라는 무대 위 대사와 곧이어 터지는 관객들의 웃음을 채록한다. 정신없이 배우들이 오가는 무대를 보여줄 때에는 공연을 보고 난 관객들의

상반된 의견을 모아 흘려보낸다. 무대의 안과 바깥, 공연의 시작과 끝을 동시에 담으려는 이 시도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 허물기에 나선 열린

마당의 의미를 영화적으로 확장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카메라는 관객이 영화에 몰입하여 영화속 인물과 동일시하게끔 하는 기존의 틀 역시 해체하고

싶어한다. 물론 이들의 영화적 실험 역시 ‘도식적인’ 의식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남동철 기자 [email protected]

■<강의 남쪽> 16mm/ 14분/ 흑백/ 장길수/ 1980년

아파트 공사가 진행중인 서울의 한 공사장. 지반을 흔드는 소리가 잦아든다 싶으면, 이번에는 함바집에서 한 여자가 겁에 질린 얼굴로 도망쳐 나오고

한 남자가 이내 식칼을 들고 뒤쫓는 영문모를 경주가 시작된다. 세번의 연속 줌 아웃으로 장면을 연결하는 부분 등에서는 과잉의 흔적이 보이지만,

앙상한 서울의 풍경을 강렬한 터치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돋보이는 작품.

■<> 16mm/ 12분30초/ 흑백/ 서명수/ 1983년

서울이라는 비정한 도시는 어른에게만 냉혹한 것은 아니다. 급한 생리 현상 때문에 버스에서 도중에 내린 한 꼬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화장실을

찾지만, 어디에도 그에게 화장실을 제공해 주는 곳은 없다. 곳곳의 빌딩과 건물들의 화장실이 굳게 닫혀 있는 것. 사색이 된 꼬마는 결국 자신이

사는 집 문 앞에까지 다다른다.

■<그 여름> 8mm/ 칼라/ 35분/ 김동빈/ 1984년

남매

사이인 영민과 영숙, 그리고 철호는 돈을 벌기 위해 상경한 젊은이들이다. 영민은 공사장에서, 영숙은 미용실에서, 철호는 바에서 밤낮없이 일을

한다. 하지만 영민이 작업 도중 부상을 입어 실명할 위기에 처하자 철호는 백주 대낮에 칼을 들고 아파트를 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상경할

때 이들이 불렀을 서울 예찬은 영화가 끝날 무렵 구슬픈 비가로 변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