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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마이너리티 리포트
2002-07-23

스필버그는 디스토피아에서 휴머니티의 꿈을 꾸는가?

■ Story

한 사나이가 재채기를 하며 의학의 더딘 진보를 한탄한다. 2054년의 워싱턴 D.C.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세계는 감기 치료약도 아직 발명되지 않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다. 그러나 적어도 이곳에서 범죄는 완벽하게 예방된다. 세명의 돌연변이 예지자에 의존해 치안 시스템을 구축한 특수경찰국 프리크라임(pre-crime)의 활약 때문이다. 프리크라임을 지휘하는 존 앤더튼 반장에게 일은 마약이자 종교다. 어린 아들을 유괴당한 충격으로 폐인이 된 그는 오직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생을 지탱한다. 프리크라임의 전국 확대를 결정할 국민투표를 앞두고 연방수사관이 시스템을 내사하러 방문한 어느 불쾌한 날, 앤더튼은 살인자를 지목하는 예지자의 붉은 공에 또렷이 새겨진 자신의 이름을 읽는다. 불가능한 미션의 시작. 이제 그는 스스로 설계한 미로를 탈출하고 자기가 딛고 선 발판을 때려부숴야 한다.

■ Review

딜레마로 얼룩진 이 어두운 이야기가, 의 고개 숙인 흥행으로 “대중의 판타지를 포착하는 천부적 재능이 녹슨 것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던 스티븐 스필버그가 내놓은- 그리고 박스오피스의 황태자 톰 크루즈를 끌어들인- 신작 여름 블록버스터의 골자다. 아무리 <도망자>식 영웅 모험담으로 변형됐다 해도 플롯은 여전히 복잡하고 화면은 어두우며 러닝타임은 길다(144분). 스필버그의 예고대로 우리에게 제출된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미션 임파서블3’라는 별명으로 일축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현재를 연장한 미래영화, 첨단의 누아르라는 맞추기 어려워 보이는 타깃을 겨냥했던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적어도 스스로 재현하는 세계에 대해 일관된 비전을 지니고 있음을 입증한다. 스펙터클과 액션이 고조될 때면 종종 스크린이 아니라 거대 용량 컴퓨터의 거대 모니터를 보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하는 경쟁작 <스파이더 맨> <스타워즈 에피소드2: 클론의 습격> <맨 인 블랙2>에 비해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대단히 고전적이다. <A.I.>에 이어서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도 스필버그는 관객의 집중력 주기를 자꾸 단축시키고 ‘하이 컨셉’을 실상 ‘로 컨셉’(low-concept)의 동의어로 만든 주류 블록버스터의 대세를 거스른다. 1975년 <죠스>로 블록버스터를 창시했던 스필버그는, 마치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예”라고 대답하더니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라고 말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액션블록버스터의 속도로 질주하지만 간간이 등장인물과 관객의 동공에 스캐너를 들이대고 “당신은 누구인가?”라고 묻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물론, 스필버그는 이번에도 근심하기를 그만두고 미래를 사랑하고자 한다. <A.I.>의 사랑밖에 모르는 아이 대신 인간을 불신하는 남자가 거리를 헤매고 <A.I.>의 노랑과 네온빛 대신 블루와 실버로 채색된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얼핏 필름누아르의 차갑고 푸른 피를 이어받은 듯하지만, 영화가 끝나기 전에 더 행복한 세상에 대한 전망을 제시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필버그의 뿌리깊은 모범시민 기질을 떨치진 못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필립 K. 딕의 원작 단편이 싸늘하고 명철하게 제기했던 생존본능과 명분, 자유와 치안, 프리크라임의 패러독스를 제대로 파고들 야심이 없다. 예지의 분열을 상징하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존재도 영화에서는 스토리나 테마의 몸체와 무관한 사소한 수수께끼로 전락한다. 다만 “아직 기회가 있어요. 당신은 미래를 알았으니 바꿀 수 있어요”라는 반복되는 호소가 인간 의지의 위대함을 강조할 뿐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존재를 몰랐던 것으로 설정이 바뀐 존 앤더튼을 비롯한 영화 속 인물들은, 양가감정과 복잡한 동기로 움직이던 원작의 캐릭터들과 달리 오로지 생존욕구와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으로 평면화됐으며 플롯은 결말의 행복한 가족사진을 위해 막판에 핸들을 꺾는다. <A.I.> 역시 많은 평자로부터 유사한 비판을 들었으나 <A.I.>의 후렴에는 해석의 자유를 여는 시적 여운이 있었다. 하지만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훨씬 산문적이다. 여기서 스필버그는 인과관계를 복습시키는 수다스런 설명으로 뉘앙스를 증발시켜버린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A.I.>를 넘어서는 수작이라기보다 <A.I.>의 일부를 잘라낸 각론에 가까워 보인다.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필립 K. 딕 원작이 통찰한 미래사회의 노이로제를 꿰뚫는 것은 소설이 가질 수 없는 이미지를 통해서다. 미래학자들의 리서치에 기초해 디자인됐다는 개인 통신장비, 운송수단 등의 소도구는 양적으로 질적으로 너무 풍성한 나머지 천연덕스럽게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면서 관객의 자연스런 몰입을 유도하는 고급한 경지를 보여준다. 지하철 망막 스캐너 섬광의 섬뜩함과 천장을 뚫고 뛰어드는 액션신의 파괴력, 방문 밑으로 스멀스멀 기어드는 거미 로봇을 롱테이크로 잡은 장면의 미끄러움은 어떤 대사보다 소비와 치안행위를 통해 드러난 미래사회의 사생활 파괴를 극명하게 웅변한다. 이에 비하면 <시계태엽장치 오렌지> <THX-1138> <블레이드 러너>의 이미지 인용은 경의의 표식을 넘지 않는다. 사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걸맞은 애칭은 ‘미션 임파서블3’보다 ‘아이즈 와이드 오픈’ 같기도 하다. 톰 크루즈가 구르는 눈알을 잡으러 허둥지둥 달리는 악취미의 조크를 포함해,‘시각’에 대한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편집증은 두드러진다. 필립 K. 딕의 단편에서 말로 기록되던 예지자의 비전은 홀로그램 영상으로 스크린에 투사되고 영화 내내 화면 곳곳에서는 광고판, 모니터, 홀로스피어(홀로그램이 영사되는 평면) 등의 형태로 유무형의 윈도가 겹겹이 펼쳐진다.

어린 아들이 유괴당한 뒤 폐인이 된 존 앤더튼. 그를 지탱해주는 것은 오직 특수경찰국 프리크라임에서의 범죄 예방 뿐이다.

그러나 어느날 미래의 살인자로 자신이 지목되면서, 그는 자신이 딛고 서 있던 그 견고한 발판을 무너뜨리는 싸움을 시작한다.

개개인의 안구를 읽어 정보를 식별하는 미래사회에서 사생활과 자유권은 침해당한다. 궁지에 몰린 앤더튼은 신원을 숨기기 위해 안구이식 수술을 받는다. 그에게 희망은 있을까? 돌연변이 예언자인 애거사는 "미래를 알았으니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말한다.

설령 미래 유행의 번쩍이는 액세서리를 다 떼낸다고 해도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화려하고 장대한 볼거리다. 이 영화의 몇몇 정밀한 시퀀스 설계와 공간을 상하좌우로 절묘하게 확장하는 역동적 촬영은, 가공할 만한 영화적 ‘완력’을 자랑한다. 세상에는 좋은 스토리를 가진 감독도 테크닉이 빼어난 감독도 많지만, 그것을 대중이 원하는 드라마의 밀도와 자극을 높이는 데 남김없이 쏟아넣는 집중력과 효율성에서 스필버그는 여전히 추월당하지 않은 챔피언이다. 그리고 그렇게 빚어진 스필버그의 용의주도한 영화는 언제나 희미하게 위협적이다. 어찌보면, 과거와 미래를 담은 ‘영화’를 봄으로써, 단서를 숨긴 ‘영화’를 편집함으로써, 예언자의 머릿속 ‘영화’를 다운로드함으로써 고비마다 이야기를 전진시키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세계에서 최고 권력자는 바로 (다른 꼴로 변장한) 영화들인지도 모른다. 프리크라임 수사본부에서 미완성 교향곡에 맞춰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능란한 손짓으로 예지자의 뇌파가 산출한 이미지를 봉합해가는 톰 크루즈의 모습은 거의 스필버그 감독의 유령처럼 보인다. 도대체 스티븐 스필버그의 무의식은 어떤 대담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김혜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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