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외곽의 세 자매, 16살 로라(비앙카 델브라보), 12살 미라(딜빈 아사드), 6살 스테피(사피라 모스페리)는 부모 없는 집에 살고 있다. 엄마가 자주 사라져버리는 삶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이웃에게 도움을 청하고 마트를 털며 생계를 이어간다. 어떻게든 지켜지던 꼭 붙어 지내는 이들의 생활은 전화 한통에 흔들린다. 사회복지국이 로라의 장기 무단결석에 의문을 품고 부모를 찾자 로라는 엄마 역할을 대신해줄 여자 어른을 찾아 나선다. <파라다이스 이즈 버닝>은 암울한 생존극일 거라는 예상을 비켜간다. 울타리 부재의 위험성을 모른 척하지 않으면서도 웃음과 장난이 가득한 성장영화의 길을 간다. 연출과 각본을 맡은 미카 구스타프손 감독과 공동 각본가인 알렉산데르 외르스트란드는 구원해줄 어른을 기다리는 불쌍한 소녀들의 이야기가 되는 것을 경계하며 함께 만들었다. 영화적 파트너일 뿐만 아니라 부부이기도 한 두 사람이 한목소리로 보내온 이야기를 전한다.
- <파라다이스 이즈 버닝>의 소녀들은 작은 아씨들이 아니다. 이들은 집에서 가만히 앉아 책을 읽지도 바비인형을 가지고 놀지도 않는다. 밖에 나가서 뛰어다니고 친구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게 일상이다. 두 사람이 함께 생각한 세 자매의 상은 무엇이었나.
우리는 세 자매가 단순히 ‘소녀들’이 아니라 완전한 인간으로 존재하길 바랐다.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모두 가진 채로 말이다. 이들의 유대는 너무 강해서 어른이 된다는 두려운 일이 닥쳐도 끊어질 수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함께 글을 쓰면서 “이게 소년들에 관한 이야기라면 어떻게 했을까?”란 질문을 수시로 던졌고, 여성 캐릭터들에게 소년들이 누리는 자유를 똑같이 주고자 했다.
- 항상 함께 작업하는 걸로 알고 있다. 공동 작업의 풍경이 궁금하다.
톤, 캐릭터, 장면 등에 관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일종의 비디오게임처럼 영화적 세계를 각자 만들어나간다. 우리가 머릿속으로 같은 걸 보고 있다고 느낄 때쯤 비로소 시작한다. 각자 쓰고 서로의 장면을 교환하며 다시 쓰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만족할 때까지 작업한다. <파라다이스 이즈 버닝>도 이런 과정을 거쳤다. 본질적으로 성인 관객을 위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이들이 시간과 삶의 덧없음을 성찰하도록 의도했다.
- 아마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세 자매를 맡은 배우들이 누구인지 한번쯤 검색해봤을 것 같다. 반짝이는 세 여성배우, 비앙카 델브라보, 딜빈 아사드, 사피라 모스페리는 어떻게 찾아냈나.
연극 학교, 배우 에이전시, 체육관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곳을 찾아다니면서 1천명이 넘는 소녀들을 만났다. 스웨덴은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정말 많은 숫자였다. 결국 캐스팅 디렉터가 딜빈은 딜빈이 다니는 학교에서, 사피라는 지하철에서, 비앙카는 슈퍼마켓 근처에서 찾아냈다.
- 촬영 전에 3~4개월 정도의 워크숍을 진행했다고.그렇다. 모두 재능이 넘치지만 연기 경험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워크숍에서는 의지나 동기를 장면 안에서 펼쳐 보이는 법 등을 가르쳤다. 또 브라질리언 주짓수를 배우게 해서 몸싸움을 하며 서로 가까워지는 데 익숙해지도록 했다. 다들 영화 촬영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전혀 몰랐기 때문에 리허설도 여러 차례 진행하면서 필요한 요소들을 하나씩 추가해나갔다.
- 영화에 부모는 끝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자매들이 엄마를 간절히 보고 싶어 하는 장면도 없으며, 가족이 함께 살던 시절을 플래시백으로 보여주지도 않는다. 이러한 결정을 내린 이유는.
우리 영화는 자매들과 이들 사이의 유대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어머니는 중요하지 않다. 자매들을 불쌍히 여기거나 낮춰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의지할 수 있다는 이들의 기쁨에 초점을 맞췄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에 집중하고자 했다.
- 세 자매 주변의 어른들을 비정한 어른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옆집 여자는 마실 것과 생리대를 나눠주고, 이모는 자신을 찾아온 로라를 내치지 않는다. 이웃인 한나(이다 엥볼)는 라우라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세 자매의 구원자가 되는 건 아니다. 어른들을 소녀들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시키지 않은 이유는 뭔가.
자매들이 구원받아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서다. 이들은 스스로를 지켜낼 줄 알며 거기서 오는 강인함이 있다고 생각했다.
- 마트에서 간 세 자매가 식료품을 훔치는 장면의 비하인드가 궁금하다. 이 신에서 스테피는 생고기의 피를 얼굴에 묻힌 뒤 비명을 질려 사람들의 주의를 끈다. 그 사이에 언니들은 도둑질에 성공한다. 이 장면에서의 촬영과 편집, 연기의 합이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쇼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촬영했다. 이런 상황이 배우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사피라가 이 장면을 특히 좋아한다. 찍는 동안 정말로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 필름으로 촬영한 영화라고 알고 있다. 왜 꼭 필름이어야 했나.
필름처럼 느껴졌다니 정말 기쁘다. (웃음) 필름으로 촬영할 계획이었지만 결국 알렉사 카메라를 선택했다. 16mm 필름으로 룩 테스트를 진행한 뒤 그 느낌을 재현하는 필터를 만들었다.
-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음악이다. 펑키한 사운드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소녀들의 움직임과 잘 맞아떨어진다.
이오르기오 이암파 음악감독이 스코어를 만들었고 영화에서 쓴 팝 음악은 우리 둘이 함께 골랐다. 캐릭터들의 기분과 감정을 보완하거나 아예 반대되는 역할을 하길 바랐다. 무엇보다 인생의 기억을 담은 사운드트랙처럼 느껴지길 원했다.
- 흥미로운 차기작 소식을 접했다. 한국 배우와 협업하길 바란다고.
지금 단계에서 너무 많은 걸 밝힐 수는 없지만 차기작은 <파라다이스 이즈 버닝>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절망과 자유의 조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정 인종이나 성별을 염두에 두고 대본을 쓰진 않지만 한국영화에 흥미가 큰 만큼 한국 배우가 우리 영화에 어떤 색다른 매력을 더할지 호기심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