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AFKN 으로 <버피>(국내 방영제는 ‘미녀와 뱀파이어’) 4시즌의 19번째 에피소드 `new Moon Rising`을
보면서, 전 어떻게든 이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를 이 칼럼에 쑤셔넣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렸습니다. 핑계요? 그거야 만들면 되지요. 이
시리즈의 1시즌 에피소드 몇개가 국내 출시되어 있으니까 멋대로 출시작이라고 우기면서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new Moon Rising`은 꽤 중요한 에피소드였습니다. 이 시리즈의 고정 캐릭터인 윌로 로젠버그가 처음으로 친구 타라 매클레이와
자신이 단순한 ‘친구’ 이상이라는 걸 주변 사람들에게 밝혔지요. 10번째 에피소드 `hush`에 타라가 처음 등장한 뒤부터 이들 사이를
짐작하고 옹호했던 수많은 ‘시퍼(shipper)들’에게는 기념비적인 날이었겠죠. 물론 방송사의 매서운 자기 검열 속에 키스 한번 제대로
못하고 이루어진 수줍은 커밍아웃이었지만요.
4시즌 에피소드들을 보면서, 전 그뒤로 이 수줍은 마녀 커플이 살짝살짝 내비치는 관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흥분하고 열광했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방송사의 자체 검열로 그들의 제대로 된 키스는 5시즌 16번째 에피소드에야 간신히 나왔지만 오히려 그런 감질나는 느낌이 그들의
열광을 더욱 화끈하게 만들었겠지요. 아마 첫 번째 키스가 나오자 팬들은 기뻐하면서도 맥이 좀 빠졌을 겁니다. 더이상 WB사 사람들의 부두
인형을 만들어 바늘로 심장을 콕콕 찌르는 장난을 할 이유가 없어졌을 테니까요.
그러고보니 이번 7시즌 `er`에서 역시 그만큼이나 수줍게 진행중인 케리 위버 박사의 게이 연애담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er` 에피소드들은
비디오로 출시된 적 없지만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기로 하죠. 지금처럼 이 칼럼의 제목인 ‘오 컬트!’에 걸맞은 글이 나오기도 쉽지 않으니
말입니다.
이 성질 고약한 빨강머리 의사가 직장 동료인 킴 레가스피 박사와 더듬더듬 연애를 시작하자 <버피> 때와 비슷한 열광이 몰아닥쳤습니다.
시청자들의 연령층은 한참 위지만 이들은 이미 안정기에 접어든 윌로와 타라 팬들보다 훨씬 열성적입니다. 그들은 이들이 나오는 장면의 대사들을
모조리 받아적고 나오는 장면마다 동영상과 음성 파일로 만들어 수백번씩 반복해 보면서 매번 구석에 숨겨져 있는 새로운 의미를 찾아냅니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서부터 부엌에 놓여 있는 베이글빵과 침실에 있는 인형들까지, 이들이 놓치는 부분이 있기는 한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들은 진정한 컬트 팬들입니다.
물론 이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열광은 둘 사이의 관계가 극히 불안하며, 나오는 시간도 아주 잠시에 불과하다는 데 있습니다. 그 때문에
둘 사이가 더욱 더 로맨틱해 보이는 거죠. 레가스피 박사가 성희롱 혐의를 뒤집어쓴 지난주 에피소드는 특히 더 위태로웠어요.
아마 이런 현상은 일시적일 겁니다. 좀더 이런 이야기들이 잘 통하게 될 미래의 시청자들에겐 이런 흥분 따위는 없겠지요. `er`과 <버피>의
게이 스토리라인에 흥분했던 사람들은 수십년이 지난 뒤 당시의 열광을 회상하며 아쉬워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