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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기 힘든 재능, 기억하게 되는 이름 - 서울독립영화제 50주년, 독립영화 베스트 100선 총평
조현나 2024-11-28

2024년 50주년을 맞이한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는 50년간 서독제에서 상영된 모든 작품 중 총 100편의 독립영화를 선정했다. 영화 창작자, 연구자, 배급 관계자, 평론가 등 40명이 설문에 참여했으며 설문 결과를 바탕으로 4명의 선정위원이 최종 100편을 리스트에 올렸다. ‘서울독립영화제 50주년, 독립영화 베스트 100선’(이하 독립영화 베스트 100선)은 이번 <씨네21> 지면을 통해 최초로 공개된다. 호명된 100개 영화와 해당 작품의 감독들은 시대별로 한국영화사에 유의미한 족적을 남겼거나 현재까지도 주목해야 할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 이들이 대다수다. ‘독립영화 베스트 100선’은 서독제의 50년 역사를 훑을 기회이자 시기별 한국영화사의 변화를 일부 읽어낼 수 있는 좋은 사료가 되어줄 것이다.

‘그’ 감독들의 단편들

<폴라로이드 작동법>

단편 50선, 장편 50선을 들여다보면 미세한 차이가 드러난다. 우선 단편 50선에는197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폭넓게 영화들이 선정됐다. ‘한국인은 백의민족’이라는 말에 의문을 갖고 “아이들의 색동옷, 움직임과 놀이 속에서 한국적 색깔을 찾아본”(한옥희 감독) <색동>, 여성 무용수의 일상을 바탕으로 순종적 여성을 바라는 시대에 대한 저항을 담은 김의석 감독의 <뫼비우스의 딸>, 취업난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이정국 감독의 <백일몽> 등 당대 현실을 짚거나 실험적 시도가 돋보이는 단편들이 1970~80년대에 다수 제작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80년대 중후반 무렵부터 한국영화의 격변기가 시작될 수 있었던 건 다양한 주제와 표현 방식에 관심을 기울인 연출자들이 앞서 존재한 덕일 것이다.

1990~2000년대에는 보다 익숙한 창작자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김성수 감독의 <비명도시>에는 통금을 알리는 사이렌, 범죄가 일어나는 뒷골목 등 당대의 시대적 징후가 상징적으로 담겼다. 류승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도 수록된 단편 <현대인>에선 조직폭력배와 경찰이 맞선다. 누아르에 특화됐으며 역사적 시류를 민감하게 읽어내는 김성수 감독, 상반된 캐릭터의 대치 상황 및 액션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류승완 감독의 연출적 특징은 그들의 초기 단편에서부터 감지된 것이며 <서울의 봄> <아수라>(김성수), <짝패> <베테랑> 시리즈(류승완) 등으로 이어져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연상호 감독의 <지옥: 두개의 삶 Part1> <지옥: 두개의 삶 Part2>는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의 근간이 되는 작품으로 연상호의 작품 세계를 일찍이 접할 수 있던 애니메이션이다. 제62회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 3등을 차지했던 조성희 감독의 <남매의 집>, 20여년이 흐른 현재까지 많은 이에게 호평받는 김종관 감독의 <폴라로이드 작동법>, 이경미 감독의 <잘돼가? 무엇이든>, 이종필 감독의 <불을 지펴라> 등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나아가 시리즈까지 자기 영역을 확장해나간 감독들의 영화도 여러 편 리스트에 호명됐다.

앞으로 50년이 지나도 기억될

<송환>

장편 50선에는 다큐멘터리들이 다수 자리한다. 홍형숙 감독의 <경계도시> <경계도시2>는 한국 정부로부터 간첩 혐의를 받던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가 37년 만에 귀국을 감행하고, 귀국한 이후의 사건을 6년의 시간차를 두고 살핀다. 비전향 장기수가 북으로 송환된 전후 상황이 담긴 김동원 감독의 <송환>, 탈북 소년과 조선족 소년의 우정을 묘사한 장률 감독의 <두만강>에선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단절과 공존의 경험이 주제로 다뤄진다. 대다수 다큐멘터리들이 동시대 한국의 사회문제를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한편 펑크 밴드들의 삶을 유쾌하게 그려낸 이동우 감독의 <노후 대책 없다> 또한 리스트에서 호명됐다. 2010년대 무렵부터는 여성감독들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2018년에는 김보라 감독의 <벌새>, 이옥섭 감독의 <메기>가, 2019년에는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 김초희 감독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나란히 상영되며 화제성을 견인했다. 2020년대에 들어서도 <휴가>의 이란희 감독,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김세인 감독, <성적표의 김민영>의 이재은, 임지선 감독 등 주목해야 할 신인 여성감독들이 꾸준히 배출됐다. 이제는 특정 시기의 경향이라 한정지을 수 없을 정도로 여성 창작자들의 활약이 이어지는 추세다.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 오멸 감독의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 장건재 감독의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감독의 개성을 강하게 드러내며 개봉 전 서독제 상영 때부터 큰 반향을 일으킨 영화들이다. 뒤이어 이들이 내놓을 차기작을 기대케 하는 단초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 밖에 장편 50선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김곡, 조현철, 이옥섭, 이정홍 감독 등 단편·장편 리스트 양쪽에 모두 이름을 올린 창작자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이 긴 호흡의 장편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데에는 단편을 완성해 관객에게 선보일 자리가 마련된 덕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요컨대 ‘독립영화 베스트 100선’은 주요한 독립영화의 이름을 기록하는 동시에 영화제가 창작자들이 가진 잠재력의 씨앗을 틔울 수 있는 소중한 장소임을 되새기는 작업이다. 국내 영화제 최초로 50회를 맞이한 서독제에서, 50년 이후로 새로이 기록될 한국영화의 역사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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