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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인간과 자연은 공생관계고, 하나다, <비밀의 화원> 김성환 감독
이자연 사진 최성열 2024-05-30

토종 생태계 복원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식물학자 동호(박정학)는 야생벌을 돌보거나 씨앗폭탄을 만들며 자기만의 온실을 지킨다. 평화로워 보이기만 한 푸른 삶에는 사실 그도 모르는 외로움이 녹아 있다. 자신을 떠난 가족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타인과 단절된 삶은 아무 말 없이 마음의 불균형을 만들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동호는 누에에게 먹일 뽕잎을 찾고 있다는 12살 봄이(최나린)를 우연히 마주친다.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날갯짓을 시작한 봄이는 동호의 어두운 마음에 파동을 일으킨다. 빛을 충분히 받고 자란 담쟁이넝쿨처럼 두 주인공의 우정은 푸르고 단단하다. 이 비밀의 화원에는 자연의 순환을 닮은 인간의 모습이 소생하고 있다.

- 두 번째 장편 극영화다. <비밀의 화원>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 <비밀의 화원>은 박준호 PD가 개발한 시나리오에서 출발했다. 기본 뼈대를 손상하지 않으면서 제작 상황에 맞게 바꾸고자 했다. 이를테면 배역 수를 다듬었다.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건 예산상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 식물학자라는 동호의 배경을 직업적 정보로서만 머물지 않고 거기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도록 구체성을 더했다. 이 과정에 내 경험을 많이 반영했다. 백두산 이야기도 다큐를 찍는 동안 느꼈던 식물학자들의 소명 의식과 사명감을 그대로 넣은 것이다.

- 동호는 식물과 교감하며 연구만 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소신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어린이 봄이에게 동호는 어떤 어른으로 작동했다고 생각하나.

= 대부분의 환경문제는 가부장적인 문화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비롯한다. 많은 기성세대는 가족의 일원으로서 사회의 리더로서 자신의 선택이 어떤 흐름을 만들어내는지 충분히 고민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환경과 생태에 인간이 저질러온 일들의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낼 수 있어야 한다. 봄이가 겪어야 했던 가정폭력 또한 이러한 근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가정폭력과 환경파괴는 결국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부장제의 권력과 자본에 종속된 인간성이 사회에서 부품처럼 세팅될 때 우리 주변에 어떤 문제가 생겨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봄이의 사정을 알게 된 동호가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그건 밖이 아닌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누군가의 아픔을 보고 자신을 성찰하는 점에서 동호는 좋은 어른이다. 우리 사회의 희망이자 기대이기도 하고.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판타지에 가깝다. (웃음)

- 우리가 직면한 다양한 사회문제에 동호가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면 봄이가 그것을 이어받는다.

= <비밀의 화원>을 통해 어린이들은 자기 생존 문제를 말한다. 어떻게 보면 세상의 변화가 절실한 건 아이들이다. 어른들은 살 만큼 살았다고 냉소적으로 생각하거나 풍요로웠던 과거를 경험한 것으로 만족해한다. 하지만 날마다 뉴스에서 기후 위기와 바이러스 문제 등이 거듭되면서 환경문제가 공포스럽게 다가올 것이다. 같은 문제를 두고도 어린 세대와 기성세대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무게에 차이가 생겨난다.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정책적인 결정권을 가진 것은 기성세대인데 이들은 아무도 봄이의 두려움을 공감하지 못한다. 그래서 <비밀의 화원>은 어른이 어린이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 <월성> <수라> 등 다양한 다큐멘터리 작품을 연출 및 기획해왔다. 그러한 경험이 극영화를 촬영하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나.

= 다큐멘터리를 많이 찍어서인지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게 익숙하다. 배우들도 자신의 생각과 해석으로 움직이지 않나. 배우의 연기를 통제하거나 특정 디렉션을 주는 게 내게 맞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오래 기다린다. 배우의 생각과 나의 계획이 맞아떨어질 때까지. 그럼에도 이것도 한계가 있다. 영화 촬영이라는 게 예산으로나 시간으로나 한정된 자원 안에서 빠르게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경험이자 자극이었다. 주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고민하는 시간도 좋았고, 예측불가한 현장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

- 봄이를 연기한 최나린 배우는 <비밀의 화원>의 주요 메시지와 맥락을 명확하게 이해한 듯 보인다.

= 나린이는 사실 최종 오디션에서까지 고민했던 배우다. 나린이를 이미지로서 보면 어린이답지 않은 모습이 있다. 뭐랄까. 고민과 사연이 있는 듯한 표정을 지니고 있다. 해맑고 천진난만한 아이들과는 약간 다른 맥락이다. 물론 웃으면 바로 그 나이대 어린이로 돌아간다. 이런 간극이 봄이의 숨겨진 이야기를 시각적 메시지로 전달할 거라 생각했다. 봄이는 동호와 함께 웃음을 찾아갈 때 완전한 봄이로 거듭난다. 이 부분에서 최나린 배우가 적합하다고 확신했다.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아도 나린이의 표정이 충분한 정보를 전달한다.

- 최나린 배우의 힘으로 완성된 장면을 꼽아본다면.

= 나린이는 정말 신기하게도 장면간의 함의를 본능적으로 읽어낸다. 처음엔 우연이라 생각했는데 촬영할수록 어른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포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뽕잎을 찾으러 숲속을 헤매는 장면에서 나무를 끌어안고 “나무 할아버지! 뽕나무가 되어주세요!”라고 자신의 염원을 외치는 장면이 있다. 딱 이렇게만 나와 있었다. 그런데 나린이는 이렇게 말하더라. “나무 할아버지! ‘저의’ 뽕나무가 되어주세요.” 그건 정말 봄이의 언어였다. 자신의 절실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진짜 봄이가 된 순간이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진행했다.

- 환경영화라고 하면 삶의 변화를 촉구하고 문제를 각성시킬 것이라는 선입견이 강하다.

= 그래서 나는 ‘환경영화’라고 카테고리화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자연을 대상화하면서 인간과 분리된 카테고리로 만들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연을 보호한다고? 보호 대상이 아니라 공생관계다. 우린 하나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돈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모든 말을 “돈이 중요하다”로 마무리하진 않는다. 그냥 일상적인 가치로 지배하고 있을 뿐이다. 환경에 대한 책임도 그렇게 접근해야 한다. 무의식에 가닿는 태도로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그래서 환경 이야기가 나오면 그냥 단순하게 묻는다. “아름다운 걸 본 적 있니?” 아름다운 것을 보면 그것이 영원히 유지되길 바란다. 기후 위기와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은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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