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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언더 유어 베드’ 사부 감독, 인간의 어긋난 욕망에 대하여
이우빈 사진 오계옥 2023-12-14

1990~2000년대 일본의 청춘영화를 말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름, 사부 감독이 한국영화를 연출했다. 그가 한국 제작사, 제작진, 배우와 협업한 <언더 유어 베드>는 국적뿐 아니라 그동안 보여준 작품들의 결과도 무척 다르다. <탄환주자>(1996)부터 <부서져 흩어지는 모습을 보여줄게>(2020)까지 사부 유니버스의 스크린을 관통했던 ‘질주하는 청춘들’의 역동성은 잦아들었다. 대신 뛰는 법을 잊은 듯, 좁은 공간에서 서로를 학대하는 세 성인 남녀의 이야기가 <언더 유어 베드>를 지배한다. 남편 형오(신수항)에게 지독한 가정 폭력을 당하고 있는 예은(이윤우), 그리고 그런 예은을 사랑하며 비밀리에 감시하는 지훈(이지훈)의 관계가 얽히고설킨다. 각자의 사랑, 각자의 트라우마, 각자의 어긋난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들의 모습은 처연하고 잔혹하다. 배우로 영화계에 입문해 감독의 길로 들어선 지 어언 30년을 바라보는 사부 감독은 여전히 새로운 시도, 새로운 환경, 새로운 이야기에 목말라 있었다.

- 제작사 미스터리픽처스의 이은경 대표가 먼저 작업을 제안했다고.

= 드라마 촬영을 마친 2022년쯤 한창 해외에서 영화 작업을 하고 싶던 찰나였다. 마침 이은경 대표에게 제안이 왔다. <미스 좀비>의 한국 수입 당시 연을 맺었었다. 오이시 게이의 원작 소설을 보니 내가 충분히 만들 수 있겠다고 느꼈다.

- 사부 감독하면 떠오르는 청춘물이 아니라 평소보다 나이대가 많은 인물의 이야기를 그렸다.

= 약간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데뷔 때부터 항상 직접 쓴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었고 늘 코미디 색채가 짙었다. 어느 순간 문득, 내가 너무 한곳에 안주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처음엔 연출을 주저했지만, 오히려 기회일 수 있겠다고 여겼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일단 부딪쳐보기로 했다.

- 이야기뿐 아니라 4:3 화면비 등 형식상의 변화도 눈에 띈다.

= 화면비는 확실하게 기획한 컨셉이었다. 주인공 셋의 모습을 화면에 가득 채우고 싶었다. 클로즈업을 잡을 때 관객들이 인물에 명확히 집중하게 만들고 싶었다. 영화에 수위 높은 가정 폭력이나 성적인 묘사가 잦다. 이런 부분에서 카메라를 작위적으로 흔들고 특정한 부분을 보여주려 한다면 관객을 속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대부분 픽스캠으로 촬영했고, 이전의 내 작업과 명확히 달라지는 경향이 있도록 더 노력했다. 개봉은 컬러 버전이지만, 콘티 단계부터 흑백 버전을 염두에 뒀다. 개봉 후에 따로 공개할 예정이다. 컬러와 완전히 다른, 어쩌면 훨씬 더 꺼림칙한 느낌을 줄 거다.

- 지훈과 예은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헤드룸이 화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등 색다른 구도도 인상적이다.

= 촬영 구도, 인물 배치 등 영상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들에 평소보다 많이 집중했다. 아무래도 한국어로 연기하다 보니 내가 대사를 100% 이해하진 못했다. 그렇기에 대신 영상미에 더더욱 몰두했다. 데뷔부터 지금까지 콘티를 직접 그리고는 있지만, 이번엔 더 치밀하게 작업했다. 컷마다 최대한 정밀하게 그린 덕에 한국 제작진과 소통의 문제도 없었다. 시작부터 4:3 프레임 위에 그렸고, 각 숏의 여백을 얼마나 남기고 이을 것인지를 판단했다. 특이한 여백들, 그리고 하늘을 많이 보여주고 싶었다.

- 제작진과의 소통에 문제가 없었다면, 배우들과의 디렉팅 과정은 어땠나.

= 시나리오 단계부터 대사에 신경을 많이 썼기에 괜찮았다. 너무 극적이거나 힘이 들어간 대사들은 다 뺐다. 평소에도 일본 배우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지나치게 힘내거나 분발하면 안된다. 오히려 의욕을 좀 줄이고, 최대한 몸에 힘을 빼야 한다. 이지훈 배우에게도 “최대한 멋있지 않아야 한다”라고 주문했던 기억이 있다.

- 세 주인공 모두 폭력, 관음 등에 물들어 있다.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정상성의 범주에서 비껴나 있다.

= 사회의 왜곡된 시선, 부조리와 모순은 인간 개인의 고독과 공포로 이어진다. 이제껏 비뚤어진 코미디로 이러한 맥락을 담았다면 이번엔 인간의 어긋난 욕망에 결부해서 말하고 싶었다. 최근엔 SNS 등으로 모든 인간이 각자의 의견을 해소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예은처럼 여전히 사회에서 격리되어 고난에 빠진 인물이 있을 수 있고, 형오나 지훈처럼 어릴 적의 가정 문제로 인해 여전히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이처럼 사회의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제대로 청하지 못한 채 성장한 세 어른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 원작 소설 및 각본과 달리 각색한 부분이 있다면.

= 꽤 많이 변했다. 우선 기존 각본에서 대사의 대부분이었던 내레이션을 대폭 줄였다. 엔딩도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 영화 중반부에서 형오가 환자 앞에서 갑자기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부분이 있다. 현장에서 추가한 장면이다. 형오가 어릴 적에 갖고 있던 본연의 순수함, 해방을 바라는 마음을 순간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다. 캐릭터들의 내면을 폭넓게 확장하려 했다.

- 30년 가까이 영화를 찍고 있다. 원동력이 무엇인가.

= 재밌어서 한다. 특별히 다른 이유는 없다. 이렇게 영화로 대화하는 것도 즐겁고, 현장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좋고, 내 영화를 봐주는 관객들을 볼 땐 가장 행복하다. 내가 데뷔했을 무렵엔 일본에 미니시어터 붐이 일어 지금보다 훨씬 더 영화를 만들고 틀기가 좋았다. 최근엔 최소한의 흥행이 보장된 원작 소설 위주로만 영화가 제작되고,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감독과 제작자가 함께 성장하는 그림은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계속 새로운 출구를 모색하고, 다른 것들과 차별점이 있는 나만의 영화를 보여줄 생각에 늘 즐겁다. 영화 말고 다른 쪽으로 눈을 안 돌리고 여기에만 있는 이유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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