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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디테일에서 연기의 재미를 느낀다, ‘너의 시간 속으로’ 안효섭
조현나 2023-09-28

<낭만닥터 김사부> 시리즈, <홍천기> <사내맞선> 등 의학 드라마와 사극, 로맨스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안효섭은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그런 그가 택한 다음 작품은 넷플릭스 시리즈 <너의 시간 속으로>다. 국내에도 팬층을 보유한 대만 드라마 <상견니>의 리메이크작인데 그가 연기한 시헌은 타임 슬립을 통해 복잡하게 얽힌 관계의 매듭을 풀어가며 준희(전여빈)와의 사랑을 지켜내려 분투한다. 안효섭은 시헌뿐만 아니라 시헌의 영혼에게 몸을 빌려주는 연준까지 1인2역 연기에 도전했고, 1998년부터 2023년 사이를 오가며 10~40대에 이르는 인물의 변화를 표현했다. 안효섭은 인물의 내외면의 디테일까지 고심하는 과정에서 연기의 재미를 느꼈다고 전한다.

- 드라마와 영화 보는 것을 즐긴다고 들었다. 타임 슬립물도 좋아하나.

= 좋아한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지금 만나러 갑니다> <말할 수 없는 비밀> <시간 여행자의 아내> 등등. 번외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시간을 소재로 연출한 작품들도 다 좋아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인터스텔라>였다. <테넷>은 타임라인이 너무 복잡해서 서너번은 봤다.

- <너의 시간 속으로>도 타임라인이 복잡하다. 중간에 길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 무척 헷갈렸고, 그래서 재밌기도 했다. 시나리오만 보면 이해가 되는데 촬영은 순서대로 찍는 게 아니라 항상 혼란의 시기가 왔고 매번 복습해야 했다. 그래서 초반에 회의하는 단계에서부터 시헌, 준희의 타임라인을 구분해 만들어놨다. 그런데 그걸 봐도 헷갈리는 순간이 있더라.

- 김진원 PD가 “전에 보여주지 않은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안효섭 배우의 캐스팅 비화를 전했다. 1인2역, 10대부터 40대까지의 폭넓은 나이대 연기 등 도전할 거리가 많은 작품이었는데 본인도 작품을 바탕으로 새로운 면을 선보였다고 느끼나.

=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시도해볼 요소가 많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1인2역 연기 자체는 별로 큰 문제가 아니었다. 연준과 시헌은 외모만 같지 아예 다른 인격체라 분리해서 연구했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시헌의 나이대별 변화를 표현하는 게 더 힘들었다. 극에 드러나지 않는 시헌의 삶의 공백이 있는데 타임라인대로 찍지 않다 보니 그걸 설정해두지 않으면 연기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지점들을 따로 정리했다. 예를 들면 시헌이 친구 인규(강훈)를 몇번이나 찾아갔고 준희를 사랑하는 마음을 얼마나 참고 살아왔는지 같은 것들. 그런 구체적인 내용을 정리하면서 어떤 사건을 거쳐 특정 나이대의 시헌의 상태에 이르렀을지 그려나갔다. 내면의 변화만큼 외적인 변화도 고민이 많았다.

- 작품이 공개된 당일부터 40대 시헌의 외형이 화제가 됐다.

= 아쉽다는 반응도 이해한다. 원작 팬들이 기대하는 바가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감독님과 제작진과 내겐 분명한 의도가 있었다. 복잡하게 꼬인 일들을 되돌리는 것에 에너지를 전부 쏟고 있는데 과연 자신을 돌볼 여유가 시헌에게 있었을까. 없었을 것 같았다. 나이대별로 확연하게 변화를 주고 싶기도 했고. 결과적으로 후회는 없다.

- 연준과 시헌의 차이가 도드라졌다. 연준이 조용하고 차분하다면 시헌은 훨씬 쾌활하게 분위기를 주도한다.

= 내가 본 연준은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시선으로 인해 위축된 캐릭터였다. 그래서 몸도 안으로 더 말아넣고 소극적인 몸짓과 스탠스를 취하려 했다. 헤어스타일도 깔끔한 생머리를 유지하고 조금이라도 자라거나 튀어나오면 매일같이 다듬었다. 잘 안 보였겠지만 손톱도 항상 정리된 상태를 유지했다. 분량이 훨씬 많은 시헌의 연기 톤을 더 주요하게 잡았는데, 처음부터 시헌은 모난 구석이 없어 보였다. 뭘 해도 긍정적이고 주도적인 사람들이 있지 않나. 내가 본 시헌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큰 사건을 겪은 뒤 오히려 더 무게감이 생긴다고 봤다.

- 시헌은 준희를 중심에 두고 모든 걸 결정한다. 본인의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선택에 납득이 가던가.

= 납득하지 않으면 진행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시헌이 준희에게 갖는 사랑의 무게는 정말 어마어마하다. 자신을 완전히 내던진 느낌이랄까. 시간이 갈수록 감정이 더 깊어지고 커져서 오히려 담담하게 인내하고 희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아직 그런 사랑을 해본 적이 없어서 얼마나 좋아하면 그럴까 싶고, 그런 사랑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믿고 싶다.

- 현장에서 본인이 낸 의견대로 수정된 신들이 있다고.

= 극의 큰 흐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그때그때 떠오르는 걸 말하는 편이다. 극 후반부에서 시헌이 웹툰 스타트업의 CEO가 되는데, 원래 설정은 요식업 직종의 CEO가 되는 것이었다. 그때 시헌의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만화책을 정말 많이 읽곤 했는데 때때로 그게 의미 없는 행동처럼 느껴져서 ‘이렇게 자주 볼 거면 아예 나중에 웹툰 스타트업 CEO가 되는 흐름이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드렸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는 반드시 만날 거야. 내가 널 찾으러 갈 테니까. 너의 시간 속으로”라는 시헌의 마지막 대사다. 원래 ‘너의 시간 속으로’라는 대사는 없었는데,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니 시헌의 의지를 강조하고 싶었다. 시간대가 다르고 준희가 둘의 관계를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어떻게든 널 찾아갈 거라는 의지 말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렸고 결국 대사가 추가됐다. 그런 디테일을 넣는 게 무척 재밌다.

- 시헌과 마찬가지로 뭔가에 온 열정을 쏟아부은 순간이 있었나.

= 확실한 건 시헌이만큼은 아니었다는 거다. 대신 그런 몰입의 순간들은 있었다. 나도 뭐 하나에 빠지면 끝까지 가는 편이다. 이성을 만나도 그 사람이 좋으면 나머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실 요즘엔 반려묘 바울이에게 완전히 빠져 있다. 공부도 열심히 해서 온통 고양이에 대한 정보로 넘쳐난다. (웃음)

- <너의 시간 속으로>는 결국 운명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본인은 운명에 순응하는 편인가 아니면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하나.

= 후자다.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사람들은 운명을 기적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사람의 의지라고 생각한다”라는 사부님(한석규)의 대사를 좋아한다. 이 말처럼 나도 내가 내 인생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마음이 평화로워진 것도 이걸 깨달은 순간부터다. (컵을 들며) 내가 마시는 유자차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 의미도 없지만 이 따뜻하고 맛있는 차 한잔을 마실 수 있어 감사하다고 생각하면 내겐 이 차가 정말 소중한 존재가 된다. 내 선택에 따라 모든 것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걸 안 후로 무척 편안해졌고 그렇게 운명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여기게 됐다.

- 그간 해온 선택에 관해서도 묻고 싶다. 아이돌 연습생 신분으로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왔지만, 이후 배우의 길로 진로를 틀었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

= 어릴 때 음악만큼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했다. 감자칩 한 봉지를 사다 먹으면서 영화를 보는 게 삶의 낙이자 루틴이었다. 그만큼 좋아했는데 어느 날 우연찮게 기회가 왔다. 캐나다에서 아이돌 오디션을 보고 캐스팅이 된 것이다. 당시엔 가수의 꿈이 우선이긴 했지만 가능하다면 연기도 하고 싶다는 마음을 안고 한국에 왔다. 하지만 갈수록 내가 아이돌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모르겠고, 하고 싶던 음악이 아닌 것 같다는 회의감이 들어 연습생을 그만두고 연기를 시작했다. 연기는 정말, 해봐야만 알 수 있는 재미가 있다. 하면 할수록 더 흥미롭고, 재밌고, 잘하고 싶다는 갈망이 커진다.

- 언젠가 안효섭의 음악도 들어볼 수 있을까.

= 물론이다. (판사 봉 내리치는 손짓과 함께) 이건 확정이다. 이름이 알려지면서 내가 던지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의 파급력이 달라진다는 걸 체감했고 그게 무서웠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좋은 영향을 끼치면 된다고 마음가짐을 바꿨다. 어떤 매개체를 거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내겐 연기와 음악밖에 없더라. 음악은 정말 모든 장르를 좋아하지만, 결국 하고 싶은 건 밴드다. 밴드 사운드가 가장 호소력이 짙다고 느낀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한다. (웃음) 그런 때가 온다면 보컬은 내가 맡고 싶다.

- <사내맞선> <너의 시간 속으로> 등 그동안 보여준 로맨스 연기들로 호평받아왔다. 혹시 액션 연기에 대한 갈증은 없나. 훨씬 이전에 축구 코치(<아버지가 이상해>)와 조정 선수(<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를 연기하는 걸 보면서 몸을 잘 쓴다는 인상을 받았다.

= 당연히 하고 싶다. 그런데 지금의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어서 아껴두는 중이다. 20대까지는 20대에 할 수 있는 걸 더 누려보고 싶다. 이 시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필모그래피가 더 쌓인 후에 제대로 액션 연기에 도전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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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