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의 내홍이 계속되고 있다. 5월11일 허문영 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사임을 표했을 때부터 논란이 본격화됐다. 영화계 일각에선 5월9일 이뤄진 조종국 부산영화제 운영위원장의 부임이 이용관 이사장의 독단적 결정이며 이것이 집행위원장의 사임 및 부산영화제 내홍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자격이 의심된다며 조종국 운영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부산영화제 이사회는 운영위원장의 자진 거취 표명을 몇 차례 권고했으며 6월26일 열릴 이사회 및 임시총회에서 운영위원장의 해촉(안)을 안건으로 삼았다. 그동안 의견 표명이 드물었던 조종국 운영위원장을 직접 만나 부산영화제를 둘러싼 논란에 관해 물었다
- 허문영 전 집행위원장의 사임이 조종국 운영위원장 부임에 대한 반발이라는 의견이 있다. 부임 과정을 듣고 싶다.
= 올해 1월부터 이용관 이사장과 허문영 전 집행위원장이 본격적으로 운영위원장 직제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안다. 4월까지 허 전 집행위원장이 이사장, 오석근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위원장과 여러 번 얘기한 끝에 직제 도입에 합의했고 총회 일정을 잡았다고 들었다. 그 후에 영화제측에서 나에게 연락을 취했다. 난 허 전 집행위원장의 허락을 직접 받아야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총회(5월9일)가 열리기 5일 전에 허 전 집행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분이 운영위원장 직제에 흔쾌하지 않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에 “잘하겠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달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랬더니 “(영화제) 안에 골치 아픈 일이 많다. 고생이 많을 거다. 인사는 통화로 됐고 총회 때 보고 차차 이야기하자”라 답하셨다. 이에 대해서 내가 대면이나 서면으로 부임을 수락받지 않았기에 문제가 있고 정무적 감각이 떨어진다는 말도 있더라. 하지만 저렇게까지 말하는 20년 지기 선배(두 사람 모두 <씨네21> 기자 출신이다)에게 무작정 찾아가겠다거나 서면으로 확인해달라 말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 총회 당일의 상황은 어땠나.
= 당시 총회에서 개정된 집행위원회 운영규정(아래 그림 참조)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래 규정엔 “집행위원장이 2인일 경우 선임자가 직무를 통할한다”라고 적혀 있다. 해당 항목의 수정을 이사장과 허 전 집행위원장이 합의했고 ‘운영위원장’이란 직명을 추가해 안건으로 상정했다. 즉 ‘선임자’가 직무를 총괄하며, ‘운영위원장’ 직명은 따로 쓴다는 문구엔 사실상 집행위원장을 운영위원장보다 높게 규정하고 영화제 대표로 삼겠다는 함의가 있다. 그런데 이사회에서 규정에 ‘선임자’ 같은 모호한 문구를 쓰면 안된다는 의견이 나왔다. 특히 행정과 법률에 전문성이 있는 이사진들은 집행위원장과 운영위원장의 권한 및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결국 “각자 직무를 통할하고, 집행위원회를 각자 대표한다”라고 규정의 내용을 바꿨다. 이에 대해서 이사들이 허 전 집행위원장에게 이의가 없냐고 물었고 “문구 그대로 해석하면 된다. 행간에 다른 의미는 없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 총회 이후 허문영 전 집행위원장과 업무 관련 이야기를 나눴나.
= 총회 다음날 허 전 집행위원장을 잠시 만나서 이런저런 사담을 나눴다. 일 관련 이야기는 언제 해야 할지 물어봤다. 내일 서울에 올라가야하니 다음주에 하자고 하시더라. 그리고 다른 직원이 쓰던 빈 사무실을 보며 “여기다가 (운영위원장) 자리 만들면 되겠네”라고 하셨다. 그런데 다음날, 허 전 집행위원장의 사의 표명 문자가 영화제 직원들에게 도착했다. 내용은 조금씩 달랐는데 내게 온 메시지는 “종국아”로 시작해 “심신이 힘드니 2주간 휴가를 다녀와서 31일자로 사임하려고 한다. 그날 정리하러 와서 인사하자. 그리고 이제 결재는 나를 빼고 네가 그 자리에 들어가서 부위원장과 처리하면 될 것 같다. 건강해라”라고 마무리됐다. 만약 허 전 집행위원장이 운영위원장 부임 반대 의견을 한번이라도 표했다면 난 절대 이 자리를 맡지 않았을 거다. 내가 그분의 속마음을 꿰뚫지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가장 답답한 사람이 나다.
- 그러나 일부 언론과 영화인들은 내홍의 시발점을 운영위원장으로 주장하며 꾸준히 퇴임을 요구하고 있다.
= 그동안은 외부의 비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았고 자칫 더 큰 파장을 일으킬 것 같아서 별다른 의견을 내놓지 않았는데, 이젠 입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 6월15일에 이사회로 입장문을 보냈다. 이사회, 총회에서 적법하게 운영위원장 부임을 논의하고 승인했으니 외부의 문제 제기에 관해 본인들이 직접 대응하고 중재해야 한다. 하지만 그간 그러지 않았으니 이제라도 분명하고 책임감 있는 자세를 갖춰 달라는 요구였다. 또 부산영화제 논란의 시작이 운영위원장 부임이 아닌 집행위원장 사임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내가 내홍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사자인 나를 불러서 어떤 의견인지 들어보고 결정하면 되지 않겠나.
- 부산영화문화네트워크를 비롯한 부산 지역 영화인들, 그리고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영화수입배급사협회 등에서 운영위원장의 과거 이력을 언급하며 부적격 인사라고 비판하고 있다.
= 부산영상위원회 사무처장 시절에 부산 지역 영화인들과 마찰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사업에 참여하는 학생이나 지원자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지역 영화인들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위원회의 실무자로서 내부 직원들과 함께 더 좋은 사업 방향성을 찾은 것이었지만, 단호한 태도로 업무를 처리해온 탓에 내가 그들을 존중하지 않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영화진흥위원회 사무국장이었을 때도 비슷하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여러 요청을 나름의 원칙으로 거부한 일들이 있었다. 일부 영화인들은 운영위원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부산영화제에 협조하기 힘들다는 식으로 반대 의견을 표하는 것 같다. 다만 그들의 주장에는 내가 부산영상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재직 당시에 법령을 위반했다거나 부정·비리를 저질렀다는 근거가 없다. 대신 영화인들과 사이가 나빴다, 태도가 좋지 않다는 말이 대부분이다. 이런 비판은 감수할 수 있고, 일정 부분은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것이 회계와 예산, 행정 실무와 관련된 운영위원장 직무에 대한 결격 사유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남동철 부산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역시 운영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 프로그래머측의 퇴진 요구도 외부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제 외부에서 나에 대한 반감이 심하니 이만 물러나달라는 거다. 그러면서 수석 프로그래머가 집행위원장 대행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만들어달라고 이사회에 요청했다. 현재 집행위원회 운영규정 6조에는 집행위원장 사고 시(업무가 불가능할 경우) 부집행위원장이 대신한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집행위원장 사고 시 수석 프로그래머가 대신한다는 식으로 고치면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인데, 문화체육관광부 승인이 필요한 정관 개정까지 요구하며 집행위원장의 권한을 수석 프로그래머에게 확실하게 이양할 수 있게끔 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운영위원장 사임과 수석 프로그래머의 집행위원장 대행 체제가 동시에 이뤄졌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문제가 우려된다.
- 어떤 문제인가.
= 운영위원장직의 공석은 사실상 영화제의 체질 개선을 백지화하자는 방향성이다. 조직의 몸집이 커지고 한해 영화제 예산이 100억원을 넘기면서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행정업무가 크고 복잡해졌다. 그래서 부산시로부터 지적받은 계약, 회계, 결재 문제가 가시화되고 있다. 또 부산영화제를 두고 국내외 영화 발굴이 예전보다 못하다는 평가들이 있다. 그러니 집행위원장이 프로그램에 더 집중할 수 있고 더 활발하게 대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이러한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운영위원장 직제를 도입하자는 내용이 바로 부산국제영화제 비전2040 특별위원회, 5월9일 진행된 이사회와 총회에서 동의된 사항이다. 의견을 더하자면 규정상 종신직인 프로그래머들이 제대로 평가받고 보상받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등의 사무국 내 직무 환경의 변화도 앞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 운영위원장 직무를 이사장의 ‘측근’이 맡는다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 측근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허 전 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들 대부분도 이사장이 추천하고 임명을 결정한 인물이다. 이에 관해선 결국 이사장이 조기 퇴진한다고 하니 나로선 더할 말이 없다. 이러한 논란 역시 운영위원장 사임의 근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차후 출범할 부산영화제 혁신위원회에서 나에 대한 인사평가를 실시하고, 차기 이사장이 재신임 과정을 거치겠다고 한다면 당연히 받아들이겠다. 혁신위원회 구성도 빠르게 진행되길 바란다. 혁신위원회 가동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적 사임을 요구하는 것은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그게 부산영화제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6월26일 이사회 및 임시총회를 앞두고 있다. 결과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 이사회와 총회의 결정에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다만 해촉안이 가결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대응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