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향기>에서 <천국의 아이들>까지, 이란영화는 어떻게 세계를 사로잡았나
모흐센 마흐말바프에 따르자면 이란에는 2만명의 시인과 15만명의 갸페(이란의 카펫) 만드는 이가 있는 나라이다. 그리고 15만명의 갸페
만드는 이는 단순한 기능인이 아니라, 모두가 예술가라고도 하였다. 각기 자신의 디자인대로 갸페를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예는
이란영화를 이해하는 첫걸음에 불과하다(우리는 이란의 문화 전반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가). 80년대 이후 이란영화가 세계무대에서 각광받는
이유는 이란영화의 저변에 깔린 페르시아 문화의 본질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가 없다. 80년대 중반, ‘유럽영화는 죽었다’고 하였을
때, 세계영화계가 발견한 새로운 신천지는 중국과 이란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과 이란영화에 대한 평가는 조심스럽게 나뉘고 있다. 중국영화는
몇몇 뛰어난 작가의 출현에 머물렀지만, 이란영화는 영화사를 뒤흔드는 새로운 미학을 창조하였다는 것이다. 특히 2000년의 이란영화는 과히
눈부시다 할 정도이다. 예술적 성과를 수상실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기는 하지만, 참고자료 삼아 보자면 지난해 이란영화는 전세계의
국제영화제에서 무려 118개의 상을 수상하였다(이란의 영화계간지 30/31호 참조). 한 국가의 영화가
1년 동안 이렇게 많은 상을 수상한 것은 아마도 전무후무한 기록일 것이다. 분명 세계영화계는 이란영화의 예술적 수준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간결함의 미학’으로 대변되는 이란영화의 정체성은 때로 모든 이란영화가 비슷비슷한 것 같고, 그러한 영화미학이 80년대 중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이후에 창조된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 그러한 오해는 키아로스타미 이후 무관심으로 이어졌다. 세계가
점점 더 이란영화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 우리는 점점 더 이란영화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시인, 모두가 영화감독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일반적으로 갸페를 단순히 기능적 측면에서만 바라보면 모두가 비슷비슷하다. 그렇지 않으면 가격으로 그 가치를
구분하든가. 그러나 갸페 속에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속에는 갸페를 만드는 이의 일상생활 속 이야기나 상상의 세계가 무궁무진한
것이다. 이처럼 갸페는 일정한 형식 그 자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간의 삶과 꿈, 낭만이 넘쳐 흐르는 무한한 세계이며, ‘시’에 다름아니다.
그래서 마흐말바프는 갸페를 만드는 이는 모두가 시인이라고 한다. 이처럼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삶의 철학을 깨닫는
페르시아의 문화적 전통이야말로 이란영화를 풍부하게 하고 독창적으로 만드는 중요한 바탕인 것이다(그래서 때로 이란영화가 그저 조그맣고 깨끗한
샘인 줄 알았다가 문득 그 밑에 망망대해가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적 전통은 이란영화의 미학에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다. 영화의 본질적 성격, 즉 ‘영화관’(映畵觀)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보편적인 이란영화인들의 영화관은 영화야말로 가장 ‘민주적인 예술’이며, 누구나가 영화창작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영화관은
‘서구의 리얼리즘 영화관’과도 그 궤를 달리한다. ‘서구의 리얼리즘 영화관’이 미학적 관점이나 영화의 사회적 기능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이란 영화인들의 그것은 ‘영화만들기를 특정인으로부터 대중에게로 확산시키는 방식’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즉 단순히 비전문배우가
영화에 출연하는 차원을 넘어서, 일반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 속에 담아내도록 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이고, 감독은 단지 그것을 다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키아로스타미의 <클로즈업>(1990)은 영화감독 행세를 하다가 붙잡힌 청년 후세인 사브지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브지안은 실제로
영화에 출연할 뿐 아니라,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 대한 사랑’이라는 주제만 놓고 본다면, 그 어떤 영화보다도
설득력 있는 작품이 바로 <클로즈업>이다. 그리고 한국이라면 영화감독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을 무학(無學)의 사브지안이 감독 데뷔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였을 때는 어떤 경외감까지 느낄 수 있었다.
키아로스타미와 그의 스승들
마흐말바프의 <순수의 순간>(1996)에서 경찰 역으로 출연한 알리 박시-조잠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경찰에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영화 속에
반영하고 있다. 그 결과 이야기의 방향이 감독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이제 갓 20살이 된 사미라 마흐말바프는 지난해
칸영화제의 개막전 컨퍼런스에서 ‘미래의 영화’에 대한 발제를 하면서 “이제 영화에서 기술적 측면은 전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앞으로
남은 것은 ‘말할 것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이제 바야흐로 영화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고 있는 중이라는 것인데,
이란의 영화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러한 사고의 전환을 실천에 옮겨왔던 것이다.
이러한 영화관의 절정은 모흐센 마흐말바프가 지난해에 발표한 40분짜리 디지털영화 <민주주의의 실험>일 것이다. 모흐센은 영화라고는 찍어본
적이 없는 친구 샤하보딘 파로크-야와 함께 공동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 민주주의의 진화과정과 영화의 진화과정이 일치한다는 주제를 담은
이 작품에는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담을 것인가를 논의하는 과정까지도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샤하보딘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영화감독이 된
것이다. 또한 모흐센은 딸과 아들에게도 영화만들기의 기회를 부여하고 있는데, 그는 영화만들기야말로 가장 훌륭한 교육이라고 믿고 있다. 그의
막내딸 한나가 <이모가 아팠던 날>을 만들었을 때의 나이는 겨우 9살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이제부터이다. ‘시’와 ‘갸페’로 대변되는 페르시아 문화의 전통, 그리고 ‘간결함의 미학’,
‘영화창작주체의 보편화’와 같은 이란영화의 특성들은 키아로스타미 이전에 이미 존재했다는 사실, 그리고 키아로스타미에 못지않은 작가들이 무수히
많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소흐랍 샤히드 살레스의 <사소한 사건>(1973)이나 <정적인 삶>(1975)은 키아로스타미류의 영화의 원류에
해당되며, 단 한편을 남기고 죽은 여성감독 포루그 파로흐저드의 다큐멘터리 <검은 집>은 오늘날 이란의 다큐멘터리의 전통을 확립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말하자면 그녀 역시 키아로스타미나 마흐말바프의 스승인 셈이다. 그러나 살레스나 파로흐저드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이란의 숨은 고수들, 세계를 공략하다
필자는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이란영화를 편애(?)한다는 비판을 여러 차례 들은 바 있다. 그러나 그동안 소개해왔던 이란영화는
사실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줄이고 줄인 결과였다. 무협지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란에는 숨은 고수(高手)들이 무수히
많다. ‘여성영화의 대가’이면서 가장 지적인 감독으로 손꼽히는 다리우스 메흐르지(그는 1971년에 이미 <암소>로 베를린영화제 비평가연맹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1998년에 만든 <배나무>는 가장 아름다운 ‘성장영화’로 손꼽힌다), 완벽한 드라마트루기의 대가로 불리는 바흐람 베이자이(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지 못하다가 마흐말바프가 기획한 옴니버스영화 <키시섬 이야기>의 한 파트를 맡아 재기한 뒤, 올해 드디어
신작 <개죽이기>를 완성했다. 그의 1992년작 <여행자>는 필자가 가장 감명깊게 본 영화 중 한편이다), 배우 출신으로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 마지드 마지디(그의 <천국의 아이들>(1997)이 드디어 지난주 국내개봉됐다. 마지디는 현재 외국영화에
매우 까다로운 미국에서도 인기를 얻을 정도로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천국의 색깔>(1999) 역시 미국에서 상영되어 호평을 받았으며,
올해 발표한 신작 <비>는 캐나다의 자본으로 만들어져 세계 배급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 대중적 인기면에서는 키아로스타미보다 앞서는 감독인
셈이다), 이 밖에 아볼파즐 잘릴리, 아미르 나데리, 락샨 바니 에테마드, 에브라힘 포르제시, 자파르 파나히, 마수드 키미아이, 나세르
타크바이, 모함마드 알리 탈레비 등도 모두 일가를 이룰 수 있을 만큼의 공력을 지닌 고수들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위의 감독들은 모두가 중견급 감독들이다. 지난해 세계영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란 감독들은 대부분 젊은 감독들이었다.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칠판>의 사미라 마흐말바프,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공동수상한 <조메>의 하산 예크타파나흐와 <술취한 말들의
시간>의 바흐만 고바디, <내가 여자가 된 날>의 마르지예 메시키니, 도쿄영화제 예술공헌상 수상작인 <하루 더>의 바박 파야니 등에 이어,
올해만도 <끝나지 않은 노래>의 미지아르 미리, <경과>의 이라지 카리미 등과 같은 주목할 만한 신인감독이 벌써 등장하였다(자칫 이 지면을
감독이름만으로 다 채울 것 같아서 이만 줄여야 겠다). 그래서 필자는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중요한 감독’이라고 판단되는 이들을 다 소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영화보다 더 극적인 주변이야기
이란영화가 이처럼 풍부한 인력풀을 갖출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하였듯 영화가 이미 특정계층만의 전유물이 아닌 풍토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편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깊고도 넓은 전통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편수의 단편영화(필름)를 만들어내는 나라는
아마도 한국과 이란일 것이다. 이란의 영화산업은 매우 열악하지만 정부차원의 단편영화 제작지원만큼은 어느 정도 틀이 잡혀 있다. 또한 알리
악바르 사데기, 누레딘 자린켈크 등과 같은 세계적인 작가를 배출한 애니메이션의 전통 또한 녹록지 않다(지난 1998년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란 애니메이션 걸작선’을 통해 이들의 작품을 소개한 바 있다).
이란은 신인감독이 데뷔한 뒤 살아남기가 가장 힘든 나라 중의 하나이다. 그렇게 사라져가는 재능이 숱하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또
다른 뛰어난 재능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던 감독 중 하나인 사이에드 에브라히미 파르는 지난
1989년에 데뷔작 <석류와 피리>(이란식 서예를 하는 한 노인의 일생을 다룬 작품으로 영화사상 가장 아름다운 ‘영화시’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를 만들어 만하임영화제와 이스탄불영화제 등에서 호평을 받았었지만, 이후 10년간 다음 작품을 만들지 못했었다. 그런 그가 드디어
얼마 전 신작 <홀로 선 나무>를 완성하였다는 소식이 이란으로부터 날아들었다. 그의 재기는 지난해에 십수년 만에 영화계로 돌아온 또다른
거장 바흐만 파르마나라, 그리고 바흐람 베이자이의 재기와 함께 가장 극적인 소식 중 하나였다. 이처럼 때로는 이란영화 그 자체보다 주변
이야기가 더 재미있고 감동적인 경우도 숱하게 많다. 그 때문에 더 이란영화에 매료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김지석 /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이란영화가
알려지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