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감독을 사칭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클로즈업>은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처럼 영화가 행사할 수 있는 힘에 대한 영화다. 대부분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영화가 그렇듯, <클로즈업> 역시 표층적으로는 단순한 모양새를 가진 듯하지만 그 심층에서는 꽤나 복잡한 설계도를 은밀히 드러내는 영화다. 영화로 들어갈수록 우리는 픽션과 리얼리티가 서로 엇갈리게 마주보면서 만들어내는 심연(abime)에 아찔함마저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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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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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조너선 로젠봄과 함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에 대한 비평서를 낸 영화감독이자 비평가인 메흐르나즈 사에드 바파는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지만 한때 이란에서 영화 만드는 이를 바라보던 시선은 미국의 흑인 젊은이들이 프로 농구 선수를 대할 때의 것과 유사했었다고 말한다. 키아로스타미의 <클로즈업>에서 우리는 그 재미난 실례 하나를 엿볼 수 있다. 그건 우리 같은 이방인에게는 거의 부조리한 일처럼 보일 정도다. 재판 과정을 담겠다는 영화감독이란 이가 ‘감히’ 촬영 스케줄 때문에 재판 일정을 앞당겨달라고 법원에다 우리 기준으로는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니 말이다. 유명 감독을 사칭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클로즈업>은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처럼 영화가 행사할 수 있는 힘에 대한 영화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단지 현상의 차원에서 그 문제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을 넘어서서 어느새 그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의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려놓는다는 점이다.more
키아로스타미가 <클로즈업>이란 영화의 제작에 착수한 것은 자신이 모흐센 마흐말바프라며 한 부유한 가족을 속여온 사브지안이란 남자에 대한 기사를 잡지에서 읽고 난 다음이었다. 여기에 흥미가 생긴 그는 당시 준비하던 프로젝트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그 이야기를 영화화하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사브지안과 그에게 속임을 당한 아한카 가족을 비롯한 실제 당사자들을 기용해 실제와 픽션의 경계가 모호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사실 이처럼 리얼리티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의 영화가 완전히 새로운 유의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당장 떠오르는 이름들만 열거해도 이건 장 르누아르, 로베르토 로셀리니, 장 뤽 고다르 등이 이미 탐사한 영역인 것이다. 하지만 그 유사한 영역을 답사하는 행보의 강건한 완력이란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클로즈업>의 키아로스타미는 앞선 모험가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말해도 된다.
대부분의 키아로스타미 영화가 그렇듯, <클로즈업> 역시 표층적으로는 단순한 모양새를 가진 듯하지만 그 심층에서는 꽤나 복잡한 설계도를 은밀히 드러내는 영화다. 영화로 들어갈수록 우리는 픽션과 리얼리티가 서로 엇갈리게 마주보면서 만들어내는 심연(abime)에 아찔함마저 느끼게 된다. 요컨대, 그 구조란, 실제 일어났던 일을 스크린에 옮겨낸 <싸이클리스트>라는 픽션, 그 영화를 만든 마흐말바프라는 실존 인물, 이 스타 감독처럼 되고자 하는 사브지안의 판타지, 그런 공상이 실행에 옮겨져 발생한 실제 사건, 이 사건을 카메라로 담아낸 <클로즈업>이란 영화가 긴 연쇄고리를 만들어내는 꼴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의 적확한 표현대로 로셀리니와 피란델로가 만나서 만들어진 듯한 이 구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가장 바깥의 층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즉 실제 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짐으로써, 마흐말바프와 관련되고자 했던 사브지안의 바람은 부분적으로 이뤄지고 영화 출연의 꿈이 꺾였던 아한카 가족의 좌절은 극복된다. 다시 말해, 그 바깥쪽의 고리에서 현실은 영화라는 픽션이 행사하는 힘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부정’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클로즈업>은 영화라는 픽션이 현실에 개입하는 양상까지를 포괄해서 현실이 구축되는 좀더 복잡한 방식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어찌 보면 리얼리티를 보는 이런 시선은 동시대의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회의주의에 굴복하는 것으로 보이기가 쉽다. 그러나 키아로스타미는 고집스럽게도 그러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보듯, 영화는 감옥에서 풀려나고 실제로 마흐말바프와 만난 사브지안이 용서를 받으러 아한카 가족을 찾아갈 때 그의 손에 든 꽃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려 한다. 부박하게 이야기하자면 그 꽃이란 화해의 아름다운 상징일 터이다. 이때, 우리에게는 이런 의심이 들 법도 하다. 사브지안과 아한카 가족이 서로 꽃을 사이에 두고 서 있게 될 수 있었던 것은, 혹은 그게 좀더 용이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그들 앞에 그들을 또 다른 많은 이들의 시선에 노출케 하는 카메라라는 픽션의 장치가 놓여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아무래도 키아로스타미는 여기서 조작이 아니라 힘을 본 듯하다. 그런 점에서 <클로즈업>은 현실과 떨어져 있지 않은 영화의 힘을 재고하라는 권유를 영화사상 가장 혁신적이면서 감동적인 방식으로 체현하는 영화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홍성남/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