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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길복순’ 전도연, “현장에서 일할 때, 나는 가장 나답고 살아 있다고 느낀다.”
김소미 2023-04-13

사진제공 넷플릭스

- 엄마를 연기할 때조차 대부분 단독자인 여자를 연기했다. 남편이 없거나 있어도 잘 보이지 않는다. (웃음) 역할에 상관없이 항상 ‘여자’랄까.

= 그건 확실히 일할 때의 내 성향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나는 누군가의 엄마, 아내로도 충실하지만 배우일 때의 내 삶 역시 오롯이 살아내 고자 한다.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한다기보다, 음… 본능적으로 자신을 존중하면서 내 임무와 역할에 충실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는 편이 맞겠다. 내가 가진 성향을 끌어내 연기하니까 그게 역할에 투영되어 보여지는 것 같다.

-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일>에 이어 배우 설경구와 세 번째로 호흡을 맞췄다.

= 오래전부터 같이 일해왔고 익숙해져 있는 배우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선 서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길복순>을 통해 아직 내가 이 사람에게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을, 그래서 다음 작품에서 또 만나고 싶다는 기대를 하게 됐다. <길복순>의 멜로드라마는 설경구 배우가 만들어낸 부분이 크다. 나는 그가 그린 차민규라는 큰 산을 타던 중 어느 지점과 만난 것인데, 그게 강한 멜로적 감정이었던 거다. 그는 상대 배우가 자신의 능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어느 지점까지 도달하게 만들어준다. 얼마 전에 술 마시고 경구 오빠에게 전화해서 한참을 칭찬했다. (웃음)

- tvN에서 최고 시청률 17%를 기록하며 사랑받은 <일타 스캔들>에선 삶이 척박해도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책임감을 놓지 않는 반찬가게 사장 남행선의 씩씩함에 많은 이들이 위로받았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킹 메이커>를 만든 변성현 감독의 액션인 <길복순>으로 필모그래피 중 가장 스타일리시한 옷을 입은 것도 같다. 이 일련의 흐름 속에서 최근 배우 전도연을 향한 대중의 반응이 확실히 밝은 채도를 띤다고 느낀다. ‘도연 언니’를 응원하는 1020세대의 목소리가 커졌고, 연기력이나 작품성에 대한 진지한 평가만큼 배우의 매력에 신이 난 반응이 관찰되어 흥미롭다.

= 감사할 따름이다. 나름대로 생각해봤는데, <길복순> 속 모녀 관계가 서로에게 마냥 희생적이지 않다는 점을 요즘 관객들이 반가워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각자 자기 삶에 주체적인 여자들이라 즐겁게 바라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일타 스캔들>에선 이모지만 좋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은, 적극적이고 유연한 관계가 그려지기도 하고.

- <무뢰한>의 김남길, <남과 여>의 공유, 드라마 <일타 스캔들>의 정경호, 그리고 <길복순>의 구교환까지 꾸준히 연하의 남성배우들과 로맨스 호흡을 맞추고 있다. 현실이든 허구든 헤테로 로맨스에서 남성이 연상인 경우가 대다수라는 점을 고려하면 간과하고 싶지 않은 이력이다.

= ‘전도연이 그 나이에 로맨틱 코미디를?’ 처음엔 <일타 스캔들>에 대한 시청자의 우려를 접하면서 앞으로 작품을 선택할 때 나이에 맞는 영역이 무엇일지 더 숙고해야 하나, 잠시 고민도 했지만 우려도 관심이라고 받아들였다. 여성배우가 특정 장르에서 소화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선입견이 아직도 존재하는 것 같다. 과거보다 더 크냐 작냐를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여전한 건 사실이다. 그걸 느끼면서도 너무 불편하게 여기지만은 않으려고 한다. 어떤 평가를 받든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도전해보고 싶다. 로맨틱 코미디야말로 한국에서 배우의 나이에 가장 민감한 장르 같지만 이번 경험을 계기로 내게는 10년 뒤, 20년 뒤에도 계속해서 도전할 수 있는 장르라는 생각이 더더욱 짙어졌다.

- 젊은 감독들로부터 언젠가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배우로 자주 호명되지만 최근 인터뷰에서 직접 시나리오를 써서 건네준 것은 변성현 감독이 처음이라는 말도 했다. 선망의 대상이 되는 만큼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이미지도 있다고 보나.

= 엄두를 못 내거나 어려워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나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내 필모그래피에서 차지할 위상이 어떻든, 흥행이 어떻든, 지금의 나는 다양한 장르와 인물에 목마르다. 내가 먼저 나를 내보이지 않으면 깰 수 없는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길복순> 이 남긴 의미가 고무적인 것도 있다. ‘오호, 전도연을 작품에 좀 막 써도 되는구나?’ 그렇게 받아들여주고 다들 자신감을 가져주면 좋지 않을까. (웃음)

- 필요하다면 작품에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현장에서 워낙 치열한 배우로 알려져 있다. 과거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완벽주의자라고 수식하기도 했는데, 한편 현장에 있을 때 마음이 가장 안정된다는 말도 해서 양가적인 상태의 묘한 공존이 흥미로웠다.

= 현장엔 항상 긴장과 불안이 있는데, 그것들이 오히려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나 자신을 릴랙스하는 게 어떤 건지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예전에는 일이 왜 좋냐는 물음에 관객이 많이 봐주는 즐거움 같은 것을 먼저 떠올렸는데 지금은 현장이 좋아서 간다고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현장에서 일할 때, 나는 가장 나답고 살아 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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