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노래를 잘 부르지 않는 아이가 저녁 시간에 일기를 쓰면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반갑고 귀엽기도 해서 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나 들어보니 패닉의 <뿔>이었다. 반가워서 어떻게 이 노래를 알게 됐느냐고 물으니 방과 후 교실에서 배웠다고 한다. 세상에. 신기해서 ‘아빠도 어렸을 때 이 노래 들었어.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가 테이프를 선물해줘서 엄청 들었지. 그때 듣던 테이프도 작업실 어딘가에 있을 거야’ 하고 말해주곤 같이 신나게 불렀다. 군데군데 정확하지 않은 부분은 있었지만 아직도 노래 가사를 외우고 있는 것을 보니 신기했다. 그 친구가 S.E.S보다 핑클을 좋아했으며 그중 특히 이진씨를 좋아했다는 것도 왜인지는 모르지만 기억이 났다.
아이들에게 한때의 대중가요를 들려준다는 것은 시간을 이겨내고 나서도 그 노래의 멜로디나 가사가 어린이들에게도 전해질 만한 것이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유년기에 들었던 ‘동요’ <산할아버지>나 몇몇 산울림의 노래도 그 이전에 좋은 대중가요였다. 그 사실을 성인이 되고 나서 알았고 그 음악을 들으며 밴드의 꿈을 키웠던 것처럼, 지금 아이들은 <뿔>이 어떤 의미를 갖는 노래인지 훗날에 더 자세히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패닉을 알게 되고 이적의 솔로 앨범이나 긱스를 알게 되겠지.
‘내 노래 중에도 아이들에게 전해질 만한 것이 있을까’ 생각해본다. 사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교과서에 실릴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왔지만 가사 내용이 점점 비관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 그건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몇몇 노래들은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기도 한다(<유자차>라든지). 시간이 지나면서 앞으로 더 좋은 노래를 만들지 못하고 언젠가 다른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지는 오래되었다. 그래도 언젠간 ‘윤덕원 아저씨가 이런 좋은 음악을 만들었구나’ 하고 누군가 다시금 봐줄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뭐 일단 우리 애는 내 노래를 좋아하니까 절반은 성공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듣기는 했나보다. 자꾸 가사를 틀린다고 하기에 가물가물한 부분을 찾아보려 음원 사이트에서 패닉을 검색해서 음악을 들어보았다. 그런데 아이가 말하기를 자기가 들어본 노래는 이게 아니라고 한다. 설마 어린이 동요 느낌으로 커버한 버전이 나온 것일까. 찾아보니 스텔라장이 부른 버전이 얼마 전에 나와 있었다. 음 역시. <뿔>은 패닉 2집 때의 기괴한 이미지가 조금(아주 조금…) 남아 있어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학교에서 저학년들에게 들려줄 만한 노래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편곡은 조금 더 편하고 동화 같은 느낌이 있어서 왜 아이들에게 알려주었는지 알 만했다. 가사도 아이들에게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주기도 하고. 사춘기 시절의 나에게도 그랬던 것 같다.
‘나만의 감춰진 비밀이란 이렇게도 즐거워’라는 구절을 특히 좋아하기에, 나의 비밀 하나를 아이와 공유하기로 했다. “아빠가 이 노래 원곡을 부른 사람을 만난 적이 있어. 아빠가 대학생일 때 학교에서 음악회를 다녀와서 감상문을 쓰라는 숙제가 있었거든. 서양음악의 이해라는 수업인데, 아빠는 그때까지 클래식 음악회는커녕 공연장에 가본 적이 없었어. 어디서 뭘 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친구가 서초구청에서 무료음악회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줘서 함께 가기로 했어. 그 음악회에 사회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당시에 구청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중이던 이적 아저씨야. 그래서 아빠랑 친구들은 음악회 끝나고 이적 아저씨한테 가서 사인도 받고 학교 후배라고 친한 척도 했었단다. 물론 그 뒤로는 만날 일이 없었지만….”
<뿔> - 패닉
아침에 일어나 머리가 간지러워서
뒤통수 근처를 만져보니 뿔이 하나 돋아났네
근심찬 얼굴로 주위에 알리려다가
이상한 눈으로 놀려댈 걸 뻔히 알고 관뒀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도 뿔은 자라나
어느새 벌써 엄지 손가락 닮을만큼 굵어졌네
손톱이 길 듯 수염이 길 듯 영영 자랄까
불안한 맘에 잠을 못자니 머리마저 빠져가네
이쯤은 뭐 어때 모자를 쓰면 되지 뭐
직장의 동료들 한마디씩 ‘거 모자 한 번 어울리네’
어쩐지 요즘엔 사는게 짜릿짜릿해
나만이 간직한 비밀이란 이렇게 즐거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도 뿔은 자라나
어느새 너무나 굵어
내 맘을 너무도 긁어
오 너무나 빨리 늙어
손톱이 길 듯 수염이 길 듯 영영 자랄까
너무도 늦어진 밤에
너무나 불안한 밤에
잠도 안 와 앞이 까매
이쯤은 뭐 어때 모자를 쓰면 되지 뭐
직장의 동료들 한마디씩 ‘거 모자 한 번 어울리네’
어쩐지 요즘엔 사는게 짜릿짜릿해
나만이 간직한 비밀이란 이렇게 즐거워
나의 예쁜 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