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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형국 평론가의 엔데믹 극장론 - '탑건: 매버릭'과 '헤어질 결심'을 극장에서 본다는 것

뉴 노멀 극장의 신호

낯선 풍경들이 이어지고 있다. 시네마만이 할 수 있는 일 역시 낯선 것들 속에서 발견될 것이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진 1. <세 가지 시대>(1923)

#풍경 1. 5월18일 칸영화제 본행사 첫날. 톰 크루즈가 헬기를 타고 날아와 칸 항구에 내렸다. 영화제측은 그가 레드 카펫을 밟는 시간에 맞춰 전투기 8대를 행사장 상공에 띄웠다. 실로 기동성 높은 시의적절함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사실상 3년 만에 정상 개최된 칸영화제가 오프라인에서 펼쳐낸 최상급의 아날로그 퍼포먼스였다. 이어 열린 마스터클래스에서 톰 크루즈가 무대에 오르자 객석에선 진심 어린 환호가 이어졌는데, 뜻밖에도 박수 소리는 작았다. 진행자가 주문했다. “모두들 전화기를 내려놓으세요. 그리고 박수를 치세요.” 오프라인이라는 의미가 무엇보다 컸던 행사에서 저마다 온라인으로 연결된 고화질 카메라를 가진 인류는 이렇게 아이러니한 풍경을 연출했다.

#풍경 2. 5월28일 칸영화제 마지막날. 박찬욱 감독이 “극장이라는 곳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역설한 시상식 직후,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두 주역이 영화제 기자실을 찾았다. 기자실엔 40명 넘는 한국 매체 기자와 관계자들이 잔뜩 기대하며 대기 중이었다. 박찬욱 감독과 송강호 배우가 각자의 트로피를 안고 모습을 드러낸 순간. 기자들이 소리 높여 환호하는 가운데 박수 소리는 단 한차례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들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촬영을 하느라 박수 칠 손이 없었던 것이다. 이건 아주 이상한 사운드다. 환호성은 드높은데 손뼉이 없는 소리라니.

사진 2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2018)

망각의 시대와 극장의 귀환

인류는 앞으로도 온라인과 오프라인, 실제 세계와 가상현실 사이에서 자주 혼란스러워할 것이다. 코로나19는 이 변화를 앞당겨 각종 비대면 기술과 OTT를 급부상시킨 한편 국내 극장 수입은 4분의 1 토막으로 쪼그라들게 했다. 인류는 코로나19 사태에서 커다란 충격과 교훈을 얻었음에도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의 반(反)순환 시스템에 아무런 변화도 취하지 않은 채 3년 전으로 되돌아가겠다고 결정한 듯 보인다. 예견된 자기 망각의 시대. 다수가 극장을 다시 찾기 시작한 상황 또한 보다 총체적인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를 느낀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리에게 다가온 <탑건: 매버릭>과 <헤어질 결심>은 그런 의미에서, 작품 내면과 외연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논의할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풍경 3. 그렇게 국내에 도착한 <탑건: 매버릭>과 <헤어질 결심>은 또다시 흥미로운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른바 ‘용아맥’(용산아이파크몰 아이맥스관)으로 불리는 상영관의 티켓을 구하기란 인기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 표를 예매하는 일과 비슷한 정도의 클릭을 필요로 했다. 적지 않은 이들이 아이맥스관이 아닌 곳에서는 <탑건: 매버릭>을 관람하지 않을 것을 굳게 결심한 눈치고, 결국 <토르: 러브 앤 썬더> 개봉에 따라 관람 기회를 아예 놓칠 위기에 처했다. <헤어질 결심>의 경우 돌비 애트모스관에서 봐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했다. 급속도로 형성된 팬들의 n차 관람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7월6일 자정 현재 누적 관객 64만7천여명에 그치고 있는 이 영화는, 일반관 좌석은 남아도는데도 돌비 애트모스 상영관 티켓을 구하기는 ‘용아맥’ 못지않게 어려운 분위기다. 몇해 전부터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이같은 상황이 연출되긴 했으나 상대적으로 흥행이 덜한 <헤어질 결심>의 이런 현상은 일종의 신호처럼 보인다. 극장 중에서도 특수관이 제공하는 환경을 누리겠다는 관객 경향은 코로나19 이후 업계를 긴장시킬 두드러진 트렌드다.

이 세상 절대다수의 영화가 극장에서 보는 편이 좋다고 하겠으나, 나는 <어벤져스> 시리즈 같은 경우 아이패드로 봐도 충분히 재미있다고 느끼는 쪽이다. <탑건: 매버릭>과 <헤어질 결심>은 무엇이 다른가. 천동설을 믿는 자가 맞이하는 아침 해와 지동설을 아는 사람이 보는 그것은 분명 다른 태양일 것이다. 본다는 것은 우리가 알거나 믿는 것에 심하게 영향을 받는 행위다. 또한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 우리는 그것을 본다기보다 그것과 우리와의 관계를 본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예컨대 주인공이 탄 전투기가 미사일을 피해야 할 때, 사랑하는 사람이 GPS 신호만을 남긴 채 사라졌을 때, 우리의 마음은 물론 몸까지 들썩이는 이유는 나와 대상의 관계가 무의식중에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이들 두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볼 이유를 짚어보기로 하자.

사진 3 <백일몽>(1922)

사진 4 <폴리스 스토리>(1985)

신비화와 폄하 사이에서

물론 <탑건: 매버릭>에도 디지털 VFX와 CGI가 적지 않다. 무엇이 톰 크루즈의 영화를 다르게 만드는가. 대역과 CG가 없다면서 마냥 신비화하는 경향과 여전히 미남 스타로만 보는 옛 인식 사이에서 우리가 찾을 균형점은 어디인가. 나는 그런 점에서 지난주 김병규 평론가가 내놓은 문제 제기(<씨네21> 1363호)가 반갑다. 찬사가 무성한 화제작을 놓고 이처럼 흥미로운 논리를 펼칠 수 있던 것은 ‘미국영화’, ‘군대영화’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해 논거를 찾아간 덕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매버릭(톰 크루즈)이 마하 10의 속도를 넘기고 추락한 이후를 판타지로 볼 수 있다는 발상은, 리메이크와 다를 바 없는 이 영화의 플롯을 깔끔히 설명할 수 있어서 머릿속 필라멘트가 켜지는 느낌이었다. 톰 크루즈의 작품들을 영화적 관점의 출발선에서 짚어보는 시도는 그래서 필요하다고 여긴다.

톰 크루즈는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을 고민하는 귀한 할리우드 스타다. 버스터 키튼의 점프 장면(사진1)과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의 장면(사진2)이 종종 함께 거론되는 이유는 그가 대역 없이 연기를 소화하다 골절상을 입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카메라는 배우의 정측면에 있다. 카메라가 인물 뒤에 위치한 수많은 유사 장면들과는 액션 윤리에서 커다란 차이를 지닌다. 카메라를 등진 배우는 블루 스크린에 의지해 매트리스에 뛰어내리기만 하면 그다음부터는 CG팀에서 모든 걸 해결해준다. 측면 풀숏으로 인물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배우는 시늉이 어려워진다. 이처럼 대역 최소화뿐 아니라 카메라 위치를 통해 톰 크루즈가 보여주려는 건, 정확함이다. 할리우드를 경험하고 돌아온 성룡이 “미국영화의 관객은 자신이 무엇을 보는지 알기 어렵다. 카메라는 세워두고 내가 격투하는 모습을 정확히 보여줘야 한다”고 반성하듯 말한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톰 크루즈는, 성룡이 버스터 키튼을 오마주하며(사진3, 4) 그 계보를 잇는 마지막 액션 스타였다는 아쉬움을 채워주는 거의 유일한 현역 배우다.

사진 5 <성룡의 CIA>(1998)

사진 6 <미션 임파서블3>(2006)

모험가 아닌 시네필

톰 크루즈는 성룡을 오마주하며 빌딩 벽을 타고 미끄러져 내리고(사진5, 6) 헬기와 항공기에 매달린다(당연한 얘기지만 성룡과 달리 안전줄을 매고 촬영한 다음 컴퓨터로 지우는 방식이다). 자신이 직접 하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정확함이다. 대역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카메라가 피사체 뒤에 숨거나 현란하게 카메라를 흔들거나 의미 없이 숏을 나눠 찍은 다음 이어붙이거나 할 필요가 없다. 정확한 장면이 나올 때까지 촬영하고 또 촬영한다(<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의 고공 침투 장면을 위해 톰 크루즈는 100번 넘게 비행기에서 뛰어내렸다). 대도시 전체를 때려부수거나 수만명의 엑스트라가 백병전을 벌이는 숱한 액션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 우리의 시선을 강제로 분산시키는지를 따져야 한다. 톰 크루즈는 못 말리는 모험가가 아니다. 말리기 어려운 시네필이다. 그의 여러 작품에서 히치콕의 흔적이 보이는데, 히치콕 서스펜스의 교과서와도 같은 장면(사진7)을 작정하고 오마주한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의 오페라 장면(사진8)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중에도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꼽힌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 비하면 <탑건: 매버릭>의 톰 크루즈는 안전한 편이다. 그가 미 해군에 누차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전략 자산의 조종간을 손에 쥐지는 못했다. 배우들은 베테랑 파일럿이 모는 전투기 뒷좌석에 앉아 연기했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거대한 도전이다. 우리는 실제 전투기에 탑승해 중력과 맞서는 배우들의 얼굴 근육을 더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톰 크루즈는 이와 함께 촬영 현장 메이킹 필름과 배우들의 훈련 장면 영상을 개봉 전부터 대대적으로 배포한다. 언론은 물론 유튜버들이 앞다퉈 이를 재가공해 확산시키면 관객의 ‘앎’은 달라진다. 앞서 천동설을 믿는 자와 지동설을 아는 이의 예에서 알 수 있듯, 본다는 것은 일종의 선택이다. 우리는 이 영화의 정직한 정면 얼굴 클로즈업에서 진짜 중력 가속도와 대면하는 톰 크루즈의 미간과 볼살을 선택적으로 눈여기게 된다(<트랜스포머>의 로봇들이 도시를 박살낼 때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가). 칸영화제 마스터클래스에서 진행자가 질문했다. “진심으로 묻는데, 당신은 왜 그렇게 합니까? 당신의 생명이 위험합니다.” 톰 크루즈의 대답에 나는 가슴이 벅찼다. “아무도 진 켈리에게 ‘당신은 왜 춤추냐’고 묻지 않잖아요.”

사진 7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1956)

사진 8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2015)

디테일의 끝

<헤어질 결심>에 대해서는 김소희 평론가의 글(<씨네21> 1363호)이 명료하게 핵심을 짚고 있는데, 특히 이 영화의 ‘시간차 공격’에 대해 곱씹을 거리를 던져주는 원고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에 대해 말을 더 얹을 필요는 없는 듯하니 사운드 얘기로 넘어가보자.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모든 작품의 사운드를 디자인한 업체 ‘블루캡’을 찾아 <헤어질 결심> 작업 현장을 엿볼 기회가 있었다. “기도수씨 아내 송서래입니다”라는 대사는 오케이가 나오기까지 수십번 후시녹음했다. 그다음 현장에서 탕웨이가 서 있던 방향에 맞게 소리의 위치를 조정하고, 사체 보관실이라는 공간 특성에 맞도록 울림 효과를 더했다. 금속성의 공간인 만큼 천장이나 벽에 부딪혀 나오는 소리의 방향까지 계산해 수십 차례 수정 작업을 거쳐 나온 게 이 대사 한마디 분량이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를 말하는 해변 장면(사진9)은 대사와 음악, 현장음이 적절히 더해져야 하는데, 현장 파도 소리는 실제 현장 소음은 물론 800개 채널에 달하는 각기 다른 소리를 조합한 다음 인물의 감정과 상황에 맞게 파도의 데시벨을 수시로 바꿔야 했다. 두 주인공이 초밥 먹는 장면(사진10)은 취조실 ‘유리창 너머’에서 ‘회와 밥이 더해진 음식을 맛있게 씹는’ 소리를 창조해내는, 디테일의 끝을 보는 듯한 도전이었다. 이쯤 되면 돌비 애트모스 상영관을 찾는 게 제작진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마저 든다.

극장에서 다시 팝콘을 먹을 수 있게 된 뒤 우리를 찾은 두편의 걸작은 이렇게 각자의 답을 내놓고 있다. 앞으로도 영화는 답을 찾을 것이다. 영화란 원체 하나의 주체가 한 장소에서 한순간 대상을 바라보는 자기 본위적 시선에서 벗어나 우리가 위치한 시공간에 따라 피사체가 다르게 보인다는 진리를 깨우쳐준 매체 아니던가. “이미지의 새로운 언어를 다르게 사용할 수 있다면, 이를 통해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다. 그 새로운 언어를 통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의 경험들을 더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존 버거가 50년 전 <다른 방식으로 보기>(1972)에 쓴 말이다.

사진 9 <헤어질 결심>의 해변 장면.

사진 10 <헤어질 결심>의 취조실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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