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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병기 앨리스' 이병헌 총감독, 서성원 감독 "선을 넘는 이야기, 애매한 타협은 없다"
김수영 사진 오계옥 2022-07-07

여름(송건희)은 고통만이 자신의 고통을 잊게 해준다고 믿는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여름은 일부러 싸움에 끼어들어 고통이 괴로움을 밀어내는 순간을 즐긴다. 급기야 비폭력으로 학교 일진까지 무릎 꿇린 여름은 학교 ‘짱’이 되고, 킬러라는 정체를 숨기고 전학 온 여학생 겨울(박세완)에게 묘한 끌림을 느낀다. <최종병기 앨리스>는 하드코어 액션, B급 유머, 로맨스 등 장르를 뒤섞고 캐릭터 설정을 흥미롭게 비튼 왓챠의 오리지널 드라마다. 신인 서성원 감독이 19금을 감수하고 자신의 색깔로 구축한 오리지널 이야기에 영화 <극한직업>, 드라마 <멜로가 체질> 등을 연출한 이병헌 감독 특유의 코믹한 대사와 상황이 더해졌다. 학교, 일진, 킬러, 첫사랑 등 익숙한 소재인 것 같지만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지점에 가닿는다. 이 낯선 조합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프로젝트의 시작이 궁금하다.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나.

이병헌 나는 제작자로서 신인감독을 찾고 있었고, 서성원 감독은 데뷔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영화 <써니>의 연출부를 함께했고 원래도 친분이 있었다. 왓챠와 새 작품을 논의하던 중에 서성원 감독이 떠올랐다. 짧은 시리즈로 해볼 만한 게 없을까 가볍게 물어봤는데, 대번에 이야기가 나왔다.

서성원 이전에 쓴 시나리오가 있었다. 톤은 비슷한데 완전 다른 얘기다. 한겨울이라는 여자 킬러가 아이를 낳고 죽으면서 시작하는 이야기였다. 죽었지만 계속 등장해서 사건을 끌어나가는 이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는데, 한겨울이 어렸을 땐 어땠을까를 상상하다보니 지금의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뻗어나갈 수 있었다.

이병헌 감독은 총감독으로 참여했다.

이병헌 처음에는 내 색깔을 어느 정도 낼 수 있는 작은 규모의 시트콤을 구상했다. 생각해볼수록 그런 이야기가 좀 흔하다고 느꼈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해서 서성원 감독에게 물었던 거다. 여자 킬러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재미있어 보였지만 사실 듣자마자 약간 피곤했다. 제작하려니 벌써부터 힘든 느낌? (웃음) 아주 유니크하고 파격까지는 아니더라도 새로운 색깔을 낼 수 있겠다 싶었고, 신인감독이 자기 색깔의 작품으로 시작하는 게 시장에 어필하는 데 유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서성원 초반 세팅할 땐 이병헌‘빨’이 있었다. (웃음) 이병헌 감독이 총감독한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고, 배우나 스탭을꾸릴 때 수월했다.

둘 다 크레딧에 극본으로 이름을 올렸다. 시나리오 작업 과정은 어땠나.

이병헌 일단 서성원 감독이 썼다. 나의 실질적인 업무는 프로듀싱이었다. 나도 글 쓰고 연출하는 사람이니까 좀더 크리에이터에게 밀착된 프로듀서인 셈이다. 서성원 감독은 재능 있는 창작자지만 어쨌든 첫 작품이라 시나리오에 정리가 필요한 부분이 있었다. 내가 요구한 건, “일단 써라”였다. 예산이나 길이 생각하지 말고 일단 써라. 가져오면 내가 쳐내겠다. (웃음) 같이 고민해보자는 얘기였다.

서성원 2부씩 쓰고 넘기고 만나서 읽고 대화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전에는 이렇게 대화할 사람이 없어서 계속 대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물론 뒷부분에 시간을 들여 쓴 대본을 날리기도 했지만. 무지막지하더라. 이렇게까지 날렸어?

이병헌 내 입장에서는, 이렇게까지 찍었어? (웃음)

서성원 촬영 중에도 수정이 필요하다 싶은 순간이 있었고, 이병헌 감독의 결단으로 잘 정리할 수 있었다.

<최종병기 앨리스>

1화에서 제시된 설정이 흥미로웠다. 비폭력으로 학교 폭력을 제압한다거나 사람을 죽이는 여학생이라거나… 기존의 익숙한 요소를 비틀고 장르를 혼합했다.

서성원 ‘여고생인데 킬러가 전학왔어’ 이 한줄로 시작했다. 로맨스라는 장르는 미리 정했고 어떤 남자애가 킬러와 잘 붙을까 고민했다. 학교 짱이 떠오르는데 이건 좀 흔하잖나. 싸움은 잘하는데 한번도 싸우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떨까? 때리는 사람이 지칠 때까지 맞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이렇게 역순으로 써나가다보니 여름이라는 캐릭터가 완성됐다.

고등학생이 주인공인데 19금이다. 킬러라는 캐릭터, 액션과 폭력 묘사 혹은 B급 유머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처럼 보인다.

서성원 세 가지 다 맞다. 예산이나 시간 등 현실적인 조건 말고는 창작하는 데 제약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불편한 것도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선을 넘는 애들이 더 선을 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나에게는 19금 이야기였다.

이병헌 수위 조절이 필요한 부분이 있긴 했다. 애매한 타협은 안된다는 생각이어서 수위는 최대한 오리지널 작가의 의도와 판단을 존중했다. OTT 플랫폼의 장점이기도 하다. 포스터를 보고 사람들이 뻔한 학원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19금이 그런 느낌을 희석해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첫 작품에 하드코어 액션과 총격 신을 연출하느라 부담이나 고민은 없었나.

서성원 연출이나 음악, 리듬감을 감안하면서 시나리오를 쓰는 버릇을 들여 장면을 만드는 데 부담은 없었다. 정확한 이미지가 있는데 구현이 안돼서 속상한 거지.

이병헌 어차피 좋은 스탭들과 함께 만드는 거니까 너무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고, 그보다 자기 색깔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해줬다. 촬영이 시작되고 나서는 예산 얘기만 했던 것 같다. 우선순위를 정해라, 덜 중요한 걸 버리고 더 중요한 걸 취해라!

서성원 내가 가장 욕심낸 장면은 4부의 옥상 신이었다. 여름과 겨울이 서로 과거를 밝히지 않는데, 옥상 장면에서 두 사람이 왜 끌리고 연결되는지 비로소 이미지로 나타난다. 애초에 그 장면에 5분짜리 노래를 다 쓸 생각이었고 여름이 맞는 장면을 충분히 보여주려고 했다. 왜 그 장면이 그렇게 길어야 하느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나는 이 장면이 잘 드러나야 시청자가 둘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종병기 앨리스>

이상하거나 낯선 구석을 가진 캐릭터들이 설득력 있게 느껴진 데는 두 배우의 힘이 크다.

서성원 원하는 톤이 정확하게 있어서 여름, 겨울 모두 리딩을 많이 했다. 평소 배우의 말투와는 다른 말투로 연기하길 바랐다. 캐릭터에 관해서도 두 사람과 자주 이야기했는데 믿을 건 배우밖에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초반에는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건 배우의 연기가 어색한 게 아니라 연출이 처음인 내가 느끼는 어색함이었다. 두 배우 모두 크게 디렉팅할 게 없을 만큼 연기를 잘해냈다.

이병헌 박세완 배우에게 이게 인생작이 될 거라고 말해줬고, 송건희 배우가 연기하는 이상한 여름 캐릭터는 나중에 섹시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배우들에게 좋은 말을 많이 해줬는데 모두 진심이었다. 나는 ‘원만하다’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배우와 이야기, 리듬과 색채가 잘 어우러져 드라마가 원만한 느낌으로 완성된 점이 좋았다.

이병헌 감독은 <힘내세요, 병헌씨>로 첫 장편을 연출하고 <극한직업>으로 천만 영화도 만들었다. 이제는 ‘이병헌 감독의 참여’가 홍보 문구로도 쓰이고 있는데 이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이병헌 이런 것이 홍보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홍보팀의 생각이 부담스럽다. (웃음) 하지만 부담과는 별개로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포지션과 상관없이 산업 안에서 무언가를 콘텐츠나 이야기로 만드는 일이 내 직업이고, 이것 역시 나에게 주어진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게 홍보가 되는지 진심으로 모르겠다. (웃음)

<최종병기 앨리스>는 ‘죽고 싶다’, ‘죽이겠다’고 하던 애들이 만나 ‘우리 살자’고 말하는 이야기다. 여름과 겨울은 서로 죽도록 버티고 싸우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두 사람에게 이 바닥에서 버티고 계속 창작하게 하는 원동력이 있다면 뭘까.

서성원 재미! 첫 연출이어서 당연히 힘들었지만 정말 큰 재미를 알게 됐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 작업에 관한 재미를 잃지 않았다. <최종병기 앨리스>는 이 일이 내게 즐거움을 준다는 걸 확신하게 해준 작품이다.

이병헌 순수하게 답하자면 아직 꿈을 이루지 못해서다. 아직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이 남았다. 내 영화 인생의 전반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제 겨우 시작이라 당연히 꿈을 이루려면 계속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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