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다. 7월부터 이어지는 ‘전국! 인디자랑’ 투어 공연에 대한 내용이다. ‘전국! 인디자랑’은 내가 속한 밴드 ‘브로콜리너마저’가 언제나 그렇듯 여름 시즌이면 해왔던 ‘이른 열대야’ 공연의 2022년 버전으로 부산, 대구, 세종, 전주, 서울을 돌면서 각 지역 팀들과 함께하는 것이 올해의 특별한 점이다. 지난해에는 교류가 있던 솔로 아티스트들과 작업을 하며 새로운 자극을 받고 기존에 없던 결과물을 내는 것이 목표였다. 이번에는 비교적 신진 아티스트에 가까운, 기존에 함께 공연해본 적 없는 밴드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그런 점이 흥미롭게 다가와서인지 음악 전문 기자가 인터뷰를 제안했고, 함께하는 팀 중에서 마침 일정이 맞는 밴드 ‘문없는집’과 함께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문없는집은 내가 진행하는 SBS 라디오 <애프터클럽>의 인터뷰에 한번 초대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새 앨범이 발매되었을 때였는데, 내가 타이틀곡 <밝은 미래>에 강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아주 재미있었다. 멤버들은 귀엽게도 비타민 음료수를 사왔고 그 뒤로 다시 만난 것은 이번 인터뷰가 처음이다. 문없는집은 그사이에 부지런히 곡도 발표하고 멤버에 변화도 생겼다. 당시 라디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브로콜리너마저의 다른 멤버들에게도 추천을 했지만, 실제로 멤버들과 함께 만난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서로에 대한 인상이나 공연에 대한 생각도 처음 듣게 되는 자리였는데, 그런 순간들이 인터뷰로 담기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느꼈던 것이 있을까요?’ 하는 질문에, 섭외 연락을 담당했던 잔디는 섭외했던 팀들로부터 ‘중학교 때부터 많이 들었었는데, 제안을 주어서 기쁘다’로 시작되는 대답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세상에, 시간이 참 빠르기도 하지. 이제는 빼도박도 못하게 중견(?) 밴드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한살, 한 학년 차이도 민감하게 느끼던 학창 시절이 지나고 나면 이런 선후배 구분은 조금 무뎌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인디하게 살면서는 또 그런 관계에서 많이 벗어난 채로 청년기를 보낸 것 같다. 함께하는 팀들의 이런 반응이 기쁘기도 하지만 어색하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어렵다. 이제는 뭔가 후배들(?)을 챙겨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일까. 그렇지만 다들 알다시피 경력이 길어졌다고 해서 오래한 만큼 대단해지는 것도 아니다. 거기에서 오는 차이만큼 그들과 다시 거리를 두고 싶어지는 소심함이 있다.
밴드로 활동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음악을 한다는 것 자체도 그렇고. 코로나19 시대의 어려움까지 겹치니 힘든 가운데도 버텨오던 동료들의 빈자리가 하나둘 보인다. 대략 2010년 이후를 공유해온 팀들이 특히 이런 고비를 맞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을지로 OB베어가 강제집행을 당해서 급하게 응원 공연을 했다. 폐허가 된 가게 자리에 마음이 아프고 막막했던 와중에 급하게 온 연락에 참석해서 연주를 했다. 그날 일정이 끝난 뒤 여러 밴드들을 섭외하려고 했지만 다들 활동을 멈춘 지 오래라 급하게 준비하기가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그나마 활동하고 있는 팀들은 비교적 활동 시기가 늦은 편이다. 문없는집만 해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이 코로나 이후니까. 코로나 시대의 밴드인 셈이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예전과는 달라진 것이 많다. 클럽에서 꾸준히 공연을 하면서 곡을 발표하고 음반을 내고 자신의 이름을 알렸던 브로콜리너마저의 초기와는 다르게 SNS로 홍보하고 음반보다는 음원을 발표하는 시대가 되었다. 종종 따라가기 어렵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지금 활동하는 팀들도 내가 시작하던 때만큼 혹은 그 이상 막막한 상태로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밴드를 시작하고 나서, 정확히는 일로 하게 되면서부터는 주변과 많은 교류 없이 활동해왔던 것 같다. 그러다가 내가 어릴 적 들었던 음악을 한 선배들을 만나게 되는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저런 도움도 많이 받았고 또 받고 있다. 하지만 이 길 도중에 가장 모호하고 명확하지 않을 때 기적처럼 딱 나타나는 기연은 없었던 것 같다. ‘같다’라고 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곳에 있었는데 내가 모르고 지나쳐갔을 수도 있기 때문이겠지. 그만큼 자세히 혹은 멀리 볼만한 능력이 없었으니까. 그저 이 길을 먼저 지나간 사람의 흔적이, 그리고 발자국이 나를 인도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날의 인터뷰는 즐거웠고 반가왔다. 예전 생각이 많이 나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오랜만에 조금은 어색하고, 그다지 능숙하지 않은 사진 촬영을 하면서 내가 그들과 비슷한 모습이었던 이천 몇년의 어떤 날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이 문없는집에도 언젠가 떠오를 그런 날이었으면 좋겠다.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다른 방송 인터뷰에서 어떤 밴드가 되고 싶은지,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예전 같으면 ‘좀 뻔한 질문이군’ 하고 느낄 수도 있었을 텐데, 왠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무 같은 밴드가 되고 싶다고 했다. 오래 그 자리에 있어서 의식할 수는 없어도 나름대로 자라서 그늘도 만들어주고 그 아래 사는 사람들에게 뭔가 줄 수 있는. 갑자기 등장해서 눈길을 끄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없어졌을 때 그 부재를 느끼게 되는, 아니 느끼지도 못할 만큼 그 역할을 이어가면서 잊히고 싶다고 생각했다. 물론 브로콜리너마저는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아직 젊은 밴드다.
<밝은 미래>- 문없는집
한해가 끝나갈 때
차가운 입김 안에 담긴 따뜻한 말들
우린 무언가 될 수 있어
무엇이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음 바퀴 굴러가는 소리 따라
음 손으로 짚어봤던 날들
음 두꺼운 옷깃에 스미었던
음 희미하고 밝은 미래
그런 겨울이 다시 올까?
눈곱도 떼지 않고 바라봤던 밝은 미래
시간은 금방 사라져버릴걸
뛰어 흔드는 두 손은 놓지 않고 있었네
음 바퀴 굴러가는 소리 따라
음 손으로 짚어봤던 날들
음 두꺼운 옷깃에 스미었던
음 희미하고 밝은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