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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형국 평론가의 한국 드라마·영화에 범죄 소년이 잇따라 출현하는 이유

계약 위반 사회

[송형국 평론가의 프런트 라인]

최근 학교 폭력 콘텐츠들에서 어떤 경향이 엿보인다. 약속을 어기는 법을 가르치는 어른들이 괴물을 키우며 또한 소비하고 있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서울 목동에서 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문성윤 변호사는 경력 20년의 형사법 전문변호사다. 그간 상당수의 소년범 사건을 맡아왔다. 한번은 ‘10호’ 처분(소년원 2년 이내 송치)이 충분히 예상되는 사건을 수임한 적이 있다. 힘껏 변호해 ‘8호’ 처분(소년원 1개월)을 이끌어냈다. 처분받은 소년이 법정 문을 나서기 무섭게 내뱉은 말은 이랬다. “오 예! 8호!” 소년의 쾌재에는 일말의 반성도 들어 있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피해자가 겪고 있을 고통은 말할 것 없고 선처를 호소하며 써내려간 반성문 한줄까지 모두를 없던 일로 만들어버리는 듯했다. 문 변호사는 생각했다. ‘이건 실패한 변론이다.’

“깨닫는 처분이 아니라 원하는 처분을 받게 했으니 잘못한 변론이죠. 소년범을 대하는 변호사는 당사자가 좋아할 처분을 받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잘못을 알도록 하는 처분’을 받도록 판사를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 변호사가 소년범 사건을 대할 때 가장 안타까운 지점은, 많은 경우의 소년범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통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소년심판>에서 심은석 판사(김혜수) 같은 캐릭터가 나와준 것이 “고마웠다”고 했다. 극중 심 판사는 소년을 무조건 선한 존재로 보거나 일방적으로 가혹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걸 안다. 당사자가 뭘 잘못했는지 알도록 처분을 내린다. “심 판사처럼 보호처분 등의 제도를 적절히 활용하면, 소년범들이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거나 피해 회복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게 되는 경우가 실제로 많아요. 가해자를 처절히 응징한다고 해서 피해자가 치유되는 것도 아니고, 소년범 자신을 위해서도 이런 교육적인 과정이 수학, 영어 공부보다 훨씬 중요하죠.”

적지 않은 경우의 현실에서 소년범들은 배워야 할 걸 배우지 못한다. 역시나 문제는 어른이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이하 <니 부모>)는 명문 중학교의 집단 괴롭힘에 따른 자살과 가해 학생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지만, ‘문제 소년’이라기보다 ‘문제 어른’들을 다루는 영화다. ‘자식 인생 망치는 꼴’을 보지 않기 위해 부모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소년심판>의 다수 에피소드와 <니 부모>에서 우리가 주목할 대목은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이 ‘법을 피해가는 법’만 배우는 풍경이다. 이를 가르치는 건 말할 것 없이 부모를 포함한 어른들이다. 극단적인 영화 속 이야기일 뿐일까. 우리는 보다 보편적으로, 우리 사회의 계약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인간수업>

폭력의 기원

넷플릭스를 통해 <인간수업>이 공개됐을 때,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수의 범죄 소년들의 삶을 현실적으로 다뤘다는 인상을 받아서가 아니다. 다수의 한국 소년들이 그 안에 들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지금껏 지상파 방송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2020년대의 10대들 말이다. 시대 정서가 투사된 학교 배경 작품들의 릴레이는 그렇게 시작됐다. 올해 <지금 우리 학교는> <소년심판> <돼지의 왕> <소년비행>이 차례로 전파를, 아니 망을 탔다. 어깨너비를 자랑하는 조폭들이 아니라 교복 차림의 뽀얀 10대들이 성을 팔고 때리고 찌르고 울부짖고 피 칠갑이 된다. 이어 영화 <니 부모>가 개봉했다. 이쯤 되면 21세기 들어 ‘한국영화 빈출 직업 1위’를 번갈아 차지하던 경찰과 조폭이 학생 녀석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세상이 각박해져 폭력 연령대가 낮아진 까닭이라고 보아 넘기면 될까.

검찰이 집계한 범죄 통계를 보자. 올 초 대검찰청은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처리한 종합 범죄 통계를 발표했다. 걱정 가득한 언론 기사들처럼 소년범죄가 늘었을까. 범죄 증감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선 인구 10만명당 발생 건수를 뜻하는 ‘발생비’를 보는 게 정확하다. 2011년 우리나라 18살 이하의 전체 범죄 발생비는 940.9건이었다. 2012년 1006.9건을 기록한 이래 줄곧 낮아져 2020년엔 785.9건으로 떨어졌다. 소년범죄는 줄고 있다. 대신 흉악범죄가 늘어난 건 아닐까. 살인, 강도, 방화, 성폭력을 따로 집계한 흉악범죄는 2011년 18살 이하 인구 10만명당 38.1건이었고, 비슷한 추세를 유지해오다 2020년 38.2건을 기록했다. 언론 기사나 영화 소재로 등장하는 흉악범죄의 경우 미성년자 100명 중 0.0382건꼴로 저지른다는 뜻이다. 집단 괴롭힘 등을 통해 나타나는 폭력 범죄는 얘기가 다르지 않을까. 2011년 10만명당 265.2건에서 10년간 200건대 전후를 유지하다 2020년에는 179.7건으로, 2011년 대비 32%p 이상 대폭 줄었다. 일부 정치인과 미디어는 종종 인구 대비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거나, 소년범죄의 경우 과거 신고가 미진해 통계에 잡히지 않았거나 하는 등의 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채 소년범죄가 날로 심각해져간다고 걱정이다. 처방이 효과를 보려면 진단이 정확해야 한다. 최근의 ‘학교 누아르’, ‘학교 좀비물’ , ‘학교 스릴러’들은 ‘학폭 콘텐츠’로 통칭해도 될 법하며, 이들의 경향은 범죄 현장이 아닌 보다 일상적인 장면들에서 그 연원을 찾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학교라는 사회계약

어른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면 안전할 거라 했고, 성실히 학교에 다니면 인생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중학교 3학년에겐 중3 교과과정을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고 말했고 친구와 서로 도우며 지내는 게 바람직하다고 가르쳤다. 학교는 인성을 수양하고 예체능도 고루 익히는 전인교육의 장이라고 떠들었다. 이것이 어른들끼리 합의한 학교라는 사회계약이다. 육상 트랙에서 앞서 달리는 선수들이 그렇듯, 각자도생과 승자독식 사회의 풍토는 상층부가 주도한다. 상류층 부모의 자녀들은 어려서부터 계약 위반을 내면화한다. 심지어 출생 전부터 수학 태교, 영어 태교 학원의 가르침 속에 태어난 아이들은 4년제 대학 평균 등록금의 2배에 이르는 수강료를 내고 영어 유치원에 다닌다(서울 시내 등록 유아 영어학원 연평균 수강료 1278만원(자료: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이면 고등학교 영어·수학 과정을 공부하면서 공교육과의 계약 파기를 생활화하고, 고등학교에 가면 월 수천만원을 들여 컨설팅 학원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을 제조함으로써 교육부와의 계약을 가뿐하게 거스른다. 아빠 친구와 엄마 지인이 동원돼 학술 논문 저자로 이름을 올리고 연구기관 인턴 생활로 스펙을 쌓는다. 이들이 돈과 지위로 자리를 챙기는 사이, 가정환경 하위층 학생들은 노력이나 잠재력이 있더라도 명문대 진학 실패 확률이 70%에 이른다(주병기, 한국조세제정연구원). 중간층 이하 가정의 자녀들이 이를 거부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는 나이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어리다.

부모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에 따른 차별을 내면화한 아이들에게 학교는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이 얼마나 표리부동한지를 몸으로 느끼는 거대한 실습장이다. ‘인간되는 학습을 받는다’는 의미의 ‘인간수업’이 저 끔찍한 내용을 담은 드라마의 제목이라는 점을 어른들은 아파해야 한다. 산업화 이후 최초로 부모 세대보다 살기 어려운 세대가 될 것임을 직감하는 10대들은, 험난한 인생의 짐을 흰 교복 위 어깨에 진다(<인간수업> <지금 우리 학교는> <소년비행>). 옳고 그름은 물론이고 불법인지 합법인지조차 고려하지 않은 채 위험사회 속 낭떠러지로 떨어질지 몰라 친구를 짓밟고 올라서야 했다(<지금 우리 학교는> <소년심판>). 위약의 대가는 만만치 않다. 놀랄 것 없이 한국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물질적 행복도’는 OECD 회원국 가운데 5위로 상위권인 데 비해, ‘주관적 행복지수’와 ‘삶의 만족도’는 최하위다(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2021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국제비교연구). 이 연구에서 특기할 점은 ‘돈’과 ‘성적’이 행복을 위해 중요하다는 응답이 꾸준히 증가해 2009년 대비 2021년에 10% 높아졌는데, 이같은 응답을 한 학생일수록 ‘행복하다’는 답변이 적었다는 점이다. 위에 나열한 작품들 모두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돈과 성적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극중 아이들은 성적과 돈으로 친구들 위에 올라서고, 주요 인물이 이들 둘 다를 갖고 있는 경우도 많다(<인간수업> <소년심판> <니 부모>).

<소년심판>

외로운 마음은 뱀을 본다

SF는 돈이 들고 로맨스는 돈이 안되는 한국 시장에서 경찰과 조폭이 스크린에 가장 자주 등장하게 된 건 일견 자연스럽다. 폭력을 구현하기 손쉬운 직종이기 때문이다. 좀더 구체적인 속성을 정리해보자. 첫째, 할리우드 범죄영화와 우리의 그것이 다른 점은 한국영화 속 범죄에는 사회적 울분이나 시대 모순이 잠재돼 있는 경우가 많다(예시를 들려 했으나 그렇지 않은 작품을 찾는 쪽이 더 쉬울 만큼 대부분 그렇다). 둘째, 산업화의 떡고물이 바닥나고 자본주의는 여기저기서 오작동을 일으키는데 새로운 시스템은 설계돼 있지 않은 21세기 체제의 피해를, 미래 세대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 가운데 내 자식만큼은 저 수렁에서 건져내야 한다는 부모들의 발버둥이 이어지고 있다. 셋째, OTT는 관람등급만 표기하면 청소년 관람불가 이야기를 얼마든지 안방에 펼쳐 보일 수 있다. 이들이 합쳐진 결과, 계약 위반 사회의 화면 속 10대들은 마약이나 성매매를 통한 돈벌이에 자발적이고(<인간수업> <소년비행>), 집단 괴롭힘의 수위는 도를 넘으며(<지금 우리 학교는> <니 부모>), 무엇보다 자신이 저지르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알려 하지 않은 채 법에 걸리면 재수 없고 법망을 피하는 게 상책이라 여긴다(위 작품들 모두).

사회계약을 믿지 못하는 사회의 구성원들은 외롭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사회가 나를 지원해줄 거라는 보장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 연세대학교 연구에서 한국 학생들이 외로움을 느끼는 정도는 OECD국 가운데 미국에 이은 2위다. 시카고대학교 두뇌역학실험실 책임자 스테파니 카치오포 박사는 강조한다. “외로운 정신은 언제나 뱀을 봅니다.”(노리나 허츠, <고립의 시대>에서 재인용). 사회안전망 대신 각자도생의 거미줄이 펼쳐진 사회에서 소년들은 작은 일도 경계하고 나와 다른 존재를 혐오하면서 또래집단 안에서 손쉽게 폭력에 물든다. 어른들이 약속을 어긴 대가로 우리는 뱀들이 넘쳐나는 콘텐츠들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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