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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13구' 자크 오디아르 감독 "사랑이 필요한 곳"
김소미 2022-05-12

- <파리, 13구>는 미국 그래픽노블 작가 에이드리언 토미네의 각기 다른 세 작품을 각색한 결과물이다. 일본계 미국인인 토미네의 뉴욕 스케치에서 어떤 매력을 발견했나.

= 우선 캐릭터들에 매혹된 측면이 크다. 루시 장이 연기한 아시아인 에밀리, 카미유 베토미에가 연기한 포르노 스타 앰버 스위트 같은 인물은 나 혼자서라면 절대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 작품을 파리로 가져오면서 발생할 이국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관심이 갔다. 다양한 젊은이들이 뒤섞여 살고 아시아타운이 자리한 파리 13구 자체가 그런 곳이기도 하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이국적으로 색다르게 바라보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흑백을 택했다. 파리는 너무 많이 재현된 도시라 이제는 거의 박물관에 박제된 곳 같다는 인상마저 드는데 흑백 화면이 확실히 도시를 낯설게 보는 데 도움이 됐다.

- 명도가 높고 콘트라스트가 강하지 않은 흑백 화면을 써서 환상적인 느낌마저 든다.

= 현실과 디지털 세계, 사랑과 불신 같은 것들이 서로 대립하지 않고 흑백 화면 안에서 하나로 풀어헤쳐지는 효과도 있었으면 했다.

- 만다린어와 프랑스어를 쓰는 대만인 에밀리는 원작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온 경우인가. 신예 루시 장을 과감히 기용했다.

= 토미네의 원작에서는 중국계 영국인이었는데 프랑스인으로 바꾸었다. 또 원작에서는 에밀리가 어린 시절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는 설정이 좀더 부각되지만 영화화 과정에서 생략했다.

- 노라(노에미 메를랑)와 앰버 스위트 역시 원작에 등장하는 캐릭터인데 영화화 과정에서 카미유라는 남성 인물을 새롭게 창조했다.

= 사랑을 믿지 않고 자유로운 관계를 추구한다고 계속해서 말하지만, 실은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오해하고 있는 남성을 그리고 싶었다. 에밀리와 노라도 어떤 면에선 비슷하다. 자신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인물은 역설적으로 모두에게 대상화되는 캠걸 앰버 스위트가 아닐까 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찾아가는 여정에 주목하면서 그것을 진정으로 깨닫는 일종의 교훈적 순간까지 밀어붙이며 장면을 썼다.

- 파리 13구의 올림피아드 고층 빌딩 이미지를 영화 오프닝에서부터 중요한 심상으로 활용한다. 도시의 전경을 비추는 오프닝은 르네 클레르 감독의 <파리의 지붕 밑>(1930) 같은 고전도 떠올리게 했다.

= 의도치 않은 재밌는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오마주를 한 것은 아니고, 어떤 의미에선 르네 클레르의 영화와 정반대라고도 생각한다. <파리의 지붕 밑>은 카메라가 건물 밖에서 창을 통해 점점 인물로 다가가면 옷을 입고 있는 여자가 나오지만, <파리, 13구>에선 전부 다 벗고 있는 모습이 나오니까.

- 감독, 각본가로서 만든 이전 작품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코믹하고 트렌디한 감수성이 강조된 작품이기도 해서 흥미롭다. 현재 프랑스영화계의 선두에 선 여성 감독들, 셀린 시아마, 레아 미지위와 함께 각본 작업을 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 내가 먼저 셀린 시아마, 레아 미지위에게 작업하자고 청했다. 그들이 가진 젊은 감수성이 필요했던 게 사실이다. 이번 작업을 할 땐 유독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열망이 컸는데, 물론 과거에도 사랑에 대해 쓴 적 있지만 이번엔 좀더 산뜻하고 솔직하게 대화 중심으로 풀어보고 싶었다. 사랑의 프로세스 자체가 달라진 시대라는 생각을 한다. 육체적인 관계로 시작해 서로를 알아가는 관계가 하나의 보편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 관계 안에서 사랑은 어떤 의미일지, 어떤 대화가 오갈지 작가들끼리 여러 의견을 주고받았다.

- 디지털 수단 아래서 사랑을 공유하는 밀레니얼들의 고독과 혼란을 그리지만 결코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신세대의 세태를 딱하게 여기는 식의 영화가 아니다. 이를테면 한 가지 직업을 꾸준히 갖는 데 어려움을 겪는 에밀리는 콜센터 일로 스트레스를 받지만 동시에 그에게 전화는 구원이기도 하다. 항상 전화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호소하고 마지막엔 거실의 인터폰을 통해 카미유(마키타 삼바)로부터 진실한 사랑 고백을 듣기도 한다. 노라 역시 포르노 스타로 오해받아 곤욕을 치르지만 또 그곳에서 연인을 만나기도 한다. 이 복잡한 공존의 풍경을 어떻게 묘사하려 했는지 구상 과정이 듣고 싶다.

= 동시대의 풍경 중 내게 가장 흥미롭게 다가오는 일면이 바로 그것이다. 복잡다단한 소통 수단 속에 놓여 있는 채로 그것의 명과 암을 모두 겪고 있다. 어느 것에 관해서 결코 부정적이기만 하다거나 혹은 긍정적이기만 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젊은 청년들이 오직 디지털 수단에 의지한다고만 보기도 어렵다. 자유로운 연애와 섹스를 추구하며 지속적인 관계를 두려워하던 에밀리와 카미유가, 마치 할머니들이 쓸 법한 오래된 인터폰을 통해서 자신의 진심을 전하도록 표현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우리는 새로운 것들만큼 낡은 것들에도 여전히 둘러싸여 있다. 이런 역설적인 상황이 좋다.

- 에밀리가 앱에서 만난 남자와 섹스하고 다시 일터로 돌아오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신난 듯 식당 복도를 따라 춤추는 에밀리의 모습을 고속 촬영으로 표현한 장면은 마치 이보다 더 낭만적인 사랑은 없다고 말하는 듯 보인다.

= 에밀리와 카미유만 보더라도 육체적으로 서로 너무 잘 맞고 깊은 교감을 나누고 있음에도 자신들을 육체적 관계로 단정짓고 그 이상으로 가까워지는 건 엄두를 내지 못한다. 둘은 나중에 친구 관계로 재회한 뒤에야 서로에 대한 감정을 확신하게 된다.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을 구분짓다 보면 오류에 빠지기 쉽다. 약간 엇나간 답변이지만 여기엔 1930년대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재혼 코미디(대공황 시기 유행한 미국 스크루볼 코미디의 하위 장르로 이별한 커플들이 재회해 벌어지는 스토리가 주를 이룬다.-편집자)의 관습도 녹여내고 싶었다.

- 차기작도 소개해달라. 뮤지컬로 알려져 있어 기대가 된다.

= 맞다. 몹시 기대된다. 9월 첫 촬영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멕시코 로케이션에 영어로 노래하는 뮤지컬영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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