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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참사의 시간, 영화의 시간, ‘너와 나’

두 단짝은 매일 함께 16번 시내버스에 탔다. 이어폰 한쪽씩을 나눠 끼고 피노키오의 노래 <사랑과 우정 사이>를 듣곤 했다. 함께 있으면 즐거웠다. 그날도 함께 등교하던 중이었다. 잠깐, 오늘 미술 시간 있는데, 스케치북을 놓고 왔어. 친구를 버스에 먼저 태워보내고 준비물을 챙겨 허둥지둥 택시를 잡아탔다. 하지만 매일 오가던 한강 다리는 더이상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아니었다. 수진은 그렇게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은 채 세상에 남았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를 소재로 한 정윤철 감독의 단편 <기념촬영> 이야기다. 수진이 살아남은 건 스케치북을 깜빡했다는 이유뿐이었다. 올림픽을 치르느라 무리한 기간에 완공된 성수대교는 강남 팽창에 따른 교통량을 감당할 수 없었다고, 더디고 오랜 조사 끝에 당국이 밝혔다. 처벌은 공사 실무자에게만 내려졌다. 그로부터 20년 뒤. 멈추지 않은 어른들의 탐욕은 진도 앞바다에서 304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2023년 11월2일. 대법원은 세월호 승객들을 구조하지 못한 혐의로 기소된 당시 해경 지휘부 9명의 무죄를 최종 확정했다.

살아남은 이유

<너와 나>에서 하은(김시은)이 살아남은 건 다리를 다쳤다는 이유뿐이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인과관계라곤 없는 우연, 무심코 내린 결정, 순간의 선택, 일상적인 자연현상, 에라 모르겠다 같은 것들이 엮이고 겹치며 작용했을 뿐이다. 하은이는 온라인에서 알게 된 ID ‘똘이아범’과 제법 가까워졌다. 반려견 집사여서 통하는 게 있었다. 원체 이성에게 스스럼없이 대하는 성격이다. 재미있을 것 같은데, 한번 만나기나 해보지 뭐. 알고 보니 남자는 비호감인 데다 질척이기까지 했다. 그를 피해 뛰다 자전거에 치였다. 수학여행을 못 가게 됐다. 친구 세미(박혜수)는 뭔가 불길하다며 같이 가자고 성화다. 세미의 눈빛을 보니 안 가겠다고 할 수가 없다. 그래 어떻게든 가보자. 수학여행비는 캠코더를 팔면 마련할 수 있을 거야. 트위터에 매물을 내놨는데 하필이면 물건을 사겠다고 연락 온 이가 똘이아범이다. 아무래도 수학여행은 못 갈 것 같다…. 우연들이 모이고 겹쳐 하은은 수학여행을 가지 않았다. 삶과 죽음이 얄궂게 엇갈렸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수많은 참사 생존자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되뇌고 있다. 나는 어쩌다 살아남았을까.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었어.

“제 자신이 너무 싫고, 자책하고. 정말 죽고 싶었어요.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으니까.” 극 중 반려견 진식이(똘똘이)를 잃어버린 보호자(길해연)의 이 대사는, 참사 유족들이 수도 없이 꺼낸 말이다. 또한 그보다 몇 곱절은 더 많은 순간 목구멍 밑에 삼켜온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을 들은 생존자 하은이 눈물을 터뜨리는 이유도 그래서다. 우리는 시간을 거스를 수 없다. 단 한순간의 과거도 자리를 내주지 않고 현재만을 비추는 거울 앞에서, 세미는 과거를 담아보겠다는 욕망이 담긴 캠코더를 돌린다. 그 거울 위에 군림하듯 붙어 있는 시계는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고 미래를 막을 수도 없다고 말하는 듯 재깍재깍 큰 소리를 낸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관객은 알고 있을 미래가 한 화면에 담긴다. 우리는 그렇게 <너와 나> 곳곳에서 가차 없는 시간의 불가역성을 영화적인 방식으로 공유한다. 거울을 보겠다고 폴짝폴짝 뛰어보는 동네 꼬마들이 찰나의 현재만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베어 물었지만 아직은 갈변하지 않은 사과가 직전의 행위와 곧이어 벌어질 일을 한꺼번에 떠오르게 하는 것처럼. 거칠게 나누자면 <너와 나>는 편집보다는 촬영을 통해 시간을 다룬다. 돌이킬 수 없어 애끊는 참사의 시간을.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영화적 순간

배우 조현철의 주연작 <초행>이 시간의 상대성을 따라 한 걸음씩 동행했다면(‘<초행>의 선택이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씨네21> 1135호), 감독 조현철의 장편 데뷔작 <너와 나>는 절대적일 것만 같은 시간 속 인물의 애절함과 손잡는다. 대부분 장면들에서 삼각대가 아닌 손에 들려 있는 카메라는 줄곧 인물의 마음을 따라 미세하게 떨린다. 반려견 진식이와 하은이는 함께 사라지고, 진식이가 나타날 때 애타게 찾던 하은이도 동시에 나타난다. 거짓말같이 사라져버린 존재와 우연히 살아남은 자가 동일시된다. 영화 속 죽음의 이미지는 생존한 하은에게 더 자주 겹친다. 테이블에서 떨어질 듯 위태로운 컵을 잡아 구원하는 쪽은 하은이 아니라 수학여행을 떠난 세미다. 그렇게 산 자와 떠난 자가 경계를 흐리며 만난다. 관객은 영화 곳곳에 배치된 죽음과 상실, 이별과 초혼(招魂)의 이미지들 사이에서 때로 길을 잃고 되찾아오길 반복하게 된다. 관객도 무언가에 이끌려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오간다. 그런 우리는 세미의 앞날을 안다. 극 중 인물의 미래는 관객이 알고 있는 과거다. <너와 나>는 이렇게 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만 하는 듯한 미래와 과거를 마주 보게 만든다. 세미와 하은이 종종 한쪽만을 바라보며 걷다 결국 마주 보고 사랑을 확인하는 것처럼, 벌어진 일과 벌어질 수 없어 애달픈 소망이 서로를 향해 다가온다. 이것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너와 나>가 참사를 함께하는 방식이다. 산 자의 통한을 가슴 아픈 시선으로 지켜보는 데서 머물지 않으려는 것이다. 비록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을지라도, 극 속의 미래와 현실의 과거, 살아남은 이와 떠난 이가 영화라는 경험 속에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관객도 동참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거칠게 구분하자면 <너와 나>가 사랑의 감정을 다루는 방식은 촬영보다 편집을 통해서다. “죽었다면, 차라리 고통스럽게 죽지만은 않았으면 좋을 텐데. 한번만이라도 볼 수만 있다면 정말 소원이 없을 텐데.” 반려견을 찾은 보호자가 참사 유족의 심정을 대신 말할 때, 친구의 죽음을 보는 세미의 꿈이 겹쳐 보인다. 세미가 꿈속에서 떠도는 듯한 움직임을 보는 동안 관객이 듣는 음성은 자식을 잃은 이의 말이다. 끝내 영화가 세미의 죽음을 드러내면, 이 영화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이 나온다. 매일 함께 타던 202번 버스에 하은이 홀로 앉았다. 태풍 너구리의 영향으로 실종자 수색이 일시 중단될 거라는 라디오 뉴스가 흐를 때 세미가 좋아하던 석양이 비친다. 하은은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다. 이때 얹히는 목소리는 세미의 것이다. “진짜 미안해.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을지 몰라줘서 진짜 미안해.” 우리는 그 미안함이 하은의 것이기도 하고 우리 자신의 것이기도 하다는 걸 안다. “좋은 걸 보면 너랑 같이 보고 싶고 맛있는 걸 먹으면 너랑 같이 먹고 싶어.” 세미의 고백 편지를 듣는 관객의 눈에 겹치는 화면은, 같은 학교 아이들의 생동하는 풍경이다. 복도에서 뛰고 운동장에서 장난치고 아무 데서나 웃고 떠드는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들이, 누군가에겐 가슴 뛰는 사랑의 대상이라고 이 영화는 편집으로 말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학생들이어야 했다.

기억, 사랑

<기념촬영>에서 수진은 대학생이 되어 재개통한 성수대교를 찾는다. 운명은 엇갈렸고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그만의 기억은 친구를 향한 사랑을 통해서였다. <너와 나>에서 가장 가슴 저릿한 장면은 영화가 세미의 죽음을 드러낸 뒤에 나온다. 여기서 영화는 시간을 되돌린다. 하은이 좋아하는 ‘훔바바’는 다름 아닌 세미였다고 하은의 방식으로 알린다. 사랑에 닿고 싶어 간절했고 닿지 못할 것 같아 애절했던 세미의 마음에 함께해온 관객은, 저 애절함과 간절함으로 세미를 기억한다. 세미가 떠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으므로 관객은 그래야 한다. 그러니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이것이어야 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안녕.”

P.S. 이 세상에는 결말까지 다 알고 봐도 충분히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영화가 얼마든지 있다. 물론 그러면 안되는 영화도 많다. 적지 않은 이들이 스포일러라면서 조심조심하는 정보들도 알고 봤을 때 나만의 다른 영화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제작진이 승인한 예고편에도 작품의 감상을 방해하는 장면이 포함돼 있는 경우가 내 기준에는 있다. 결국 개인적인 문제이므로 시중에 유통되는 사전 정보를 애써 알려고 하지도 않지만 예민하게 차단하는 편도 아니다. <너와 나>의 경우 감독과 주연배우가 누구인지 정도 외에는 어떤 정보도 듣지 않은 상태에서 보게 됐다. 이미 지난해 영화제에서 공개된 작품이고 올해 10월 개봉 이전부터 감독과 배우가 여러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를 언급했으므로, 내가 이를 몰랐던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우연은 내게 전혀 다른 영화를 선사했다. 영화 시작부터 참사를 떠올리는 관객과 그렇지 않은 관객이 <너와 나>를 볼 때 영화적 경험은 전혀 다른 것이 된다. 아둔한 나는 수학여행 전날을 다룬 이 영화의 전반부를 볼 때도 아무런 눈치를 채지 못하다가, 배경 장소와 죽음의 이미지가 거듭 표출되는 과정에서 한 움큼씩 숨통이 조여지는 느낌을 받았다. 세미가 하은과 수학여행을 함께 갈 수 있기를 내심 응원하던 나는 중반부 이후 머리가 쭈뼛해졌다. 그것은 스멀스멀 다가오는 긴장이기도 했고 도리 없는 공포이기도 했다. <트루먼 쇼>(1998)가 리얼리티 쇼를 다룬 이야기라는 걸 모른 채 시사회에서 봤다가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던 경험, <더 파더>(2020)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인물의 시점이라는 걸 영화가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나서야 깨닫고는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과 비교해도, <너와 나>의 놀라운 체험은 잊기 어려울 것이다. 세월호를 생각지 못한 채 이 영화를 봤을 때 나는 두려움에 떨었고, 세월호를 떠올리며 다시 봤을 때 첫 장면부터 목이 멨다. 끝내 눈물이 터져나온 건 하은이의 휴대폰에 ‘훔바바’가 떴을 때다. 정보를 알고 보든 그렇지 않든, 나는 조현철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었다기보다 어떤 힘에 이끌려 만들어지게 됐다는 표현이 좀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새의 깃털을 따라, 나비를 따라 어디론가 이끌렸을 때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들과 마주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 이 글에는 필자가 직접 만나 들은 사회적 참사 생존자와 유족들의 이야기가 종합돼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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