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2022년이 다가오고 말았다. 먼 미래에는 우주로 모험을 떠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2020 우주의 원더키디>를 보던 80년대 어린이들은 이제 하나둘씩 40대가 되어가고 있다. 해가 바뀔 때마다 세상이 바뀔 듯 호들갑을 떤 적도 있지만 새해가 된다고 해도 특별하게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다. 왜일까. 이제는 마음이 각박해지고 굳어버린 걸까 걱정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그건 우리가 점점 레벨이 잘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경험치를 쌓아가는 과정이 개인차와는 별개로 시간에 대략 비례한다고 생각하면, 우리의 레벨업은 지수그래프에 가깝다. 게임을 해보면 알겠지만 처음에 레벨을 1에서 2로 올리는 데 필요한 경험치가 100 정도라면 2에서 3으로 가는 데 200, 3에서 4로 가는 데는 500 이상이 필요하다. 아주 고레벨인 경우에는 이제껏 쌓아온 만큼의 경험의 총합을 더해야 다음 레벨로 갈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코앞에 있는 아이템을 가져다주기만 해도 레벨이 올랐는데, 이제는 지하 동굴을 몇날 며칠을 뒤져도 뭔가 진전이 없다.
아기일 때는 몇날이나 몇달 만에 다음 단계에 도달하게 되고 학교를 다닐 때는 1년을 주기로 달라지는 생활을 하다보니 한해가 바뀌는 것이 중요하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그러기에는 너무 레벨이 높은 것이다! (물론 능력치가 많이 올랐는가는 다른 문제이기는 하다.) 게임하듯이 새롭게 캐릭터를 키워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현실에서 그러기는 어렵고, 별수 없이 언제 올지 모르는 레벨업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몸의 성장은 이미 끝나고 쇠퇴할 일만 남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새로운 레벨업의 순간이 오지 않을 때 문득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커져간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뭔가 다르게 살았어야 했나. 나이가 들면 스스로가 더 단단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가벼워지고 팔랑거리는 정도가 커졌다. 시간이 지나도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이들은 나의 상상보다도 더 어려운 과정을 거쳐왔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디밴드도 어쩔 수 없이 일부는 예술가고 일부는 연예인이며 대체로는 자영업인지라 누군가 나를 찾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않으면 괜히 불안하고 두려워진다(그것과 상관없이 잘 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래서 오랜 시간 불안한 시간을 버텨온 동료들은 그 순간을 이겨내기 위한 작은 퀘스트들을 만드는 법을 익히고 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것. 산책과 운동하는 것. 식사와 청소 챙기는 것.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것. 그런 작은 일들은 우리가 그것들을 처음 했을 때만큼의 놀라움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매일매일 도장을 채워나가면 언젠가는 오래 기다린 레벨업의 순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매일 도장을 찍어야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확실하니까.
이런 것들을 더 어릴 때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다면 눈앞에 뭔가 당장 보이지 않더라도 더 열심히 하루하루를 보냈을 텐데. 아니 사실 알고 있어도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그런 시간들을 살면서 경험치를 쌓았기 때문이겠지. 이렇게 말하면 왠지 이 모든 것이 운명인 것만 같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기에 과거를 돌아보면서 부끄러워하고 그러면서도 받아들이고 하는 것들을 반복하고 있는 거겠지. 그나마 그때 했던 생각이나 이야기는 이제 기억에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나는 부끄러운 기억들은 열심히 잊어버리니까. 하지만 그래도 지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예전에 썼던 노래들이다.
누구나 자신이 과거에 썼던, 말했던 것들을 돌아보면 조금은 민망한 마음이 들겠지만, 내게는 <2009년의 우리들>이라는 곡이 특히 그렇다. 지금 와서 보면 ‘아 2009년에 있었던 일을 그리워하는 노래구나’라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사실 이 노래는 99년을 기준으로 ‘10년 뒤면 아마도 그렇겠지’ 하는 마음을 노래한 곡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1989년에 <2020 우주의 원더키디>가 나오고 1968년에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나온 것 같은 그런 맥락인 셈이다. 하지만 이 노래는 2008년 12월에 발매됐고, 한번도 미래를 바라보며 불린 적이 없는 노래가 되었다. 왠지 시간은 많이 지났지만 더 먼 미래에 대한 노래를 만들고 싶어졌다.
<2009년의 우리들> _브로콜리너마저
그때는 그럴 줄 알았지
2009년이 되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너에게 말을 할 수 있을 거라
차갑던 겨울의 교실에
말이 없던 우리
아무 말 할 수 없을 만큼
두근대던 마음
언젠가 넌 내게 말했지
슬픈 이별이 오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친구가 되어줄 수 있겠냐고
“아니 그런 일은 없을거야”
웃으며 말을 했었지
정말로 그렇게 될 줄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우리가 모든 게 이뤄질 거라 믿었던 그 날은
어느새 손에 닿을 만큼이나 다가왔는데
그렇게 바랐던 그때 그 마음을 너는 기억할까
이룰 수 없는 꿈만 꾸던 2009년의 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