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다 지나서야 바닷가에 잠시 나갈 수 있었다. 햇살은 여전히 피부를 붉게 할 만큼 강했지만 바닷물은 차가웠다. 바닷바람은 청량한 정도로 식어 있었지만 곧 서늘함을 품기 직전이었다. 좀더 자주 올걸. 이제 여름은 거의 지나가버렸구나 느낄 때야 아쉬움이 든다. 여름이 내년을 기약하며 열차에 오르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여름이 가장 존재감이 큰 시기가 아닐까. 내년 여름이 다가올 때면 다시 바쁜 일정에 우선순위가 밀리겠지만.
여기 또 다른 여름이 있다. 항상 그 자리에서 여름처럼 푸른빛을 뿜어내고 있는 음악가의 활동명이다. ‘생각의 여름’. 이것은 음악가 박종현의 솔로 프로젝트 이름이다. 일상적이지만 이전에 만난 적이 드물었던 단어들이 만나 새로운 이미지를 펼쳐내는 이 이름으로, 그는 비교적 길이가 짧고 단출한 구성에 깊이 있는 울림을 품고 있는 포크 음악을 만들어왔다. 여백이 많은 음악만큼이나 활동에도 공백이 많았지만 지난 10여년간 그 이름으로 꾸준히 활동해온 그가 구축해온 음악적인 세계관은 그 음악과 가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심 속 공원과 같은 휴식처가 되어왔다.
하지만 그런 평화로움에 금이 가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2020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생각의 여름>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시를 쓰는 주인공을 내세운 영화로 영화 본편에 등장하는 황인찬 시인의 시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사전 허락을 구했다는 점을 내세웠지만, 어디에도 제목인 ‘생각의 여름’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당연히 제목에 대한 협의가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 팬들과 지인들은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당사자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음악가 ‘생각의 여름’은 자신이 영화와 무관하며 제목을 도용당한 것에 당혹스럽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명백하게도, ‘생각의 여름’이라는 제목을 검색해보았다면 음악가의 존재를 모를 수 없었을 것이다. 영화에 등장한 다른 종류의 저작물에 대해 그 사용을 미리 제안하고 허락을 구할 정도의 지각이 있었다면 제목에 대해서도 그래야 했다. 그러나 해당 영화는 그러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독립영화에 대해 공감대를 갖고 적극적으로 협력해온 음악가로서는 더욱더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래도 대화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조금은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후에 나온 대응은 더욱 당황스러웠다. 감독은 도용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는 글을 남겼음에도 최근 어떠한 조치나 합의도 없이 그 제목 그대로 영화를 개봉한 것이다. 게다가 음악가에게 영화 시사에 초대하는 메시지를 보내기까지 했다. 자신의 사과의 글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한 것일까? 음악가는 “사과하셨지만 저는 용서를 한 적이 없습니다”라는 씁쓸한 글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에도 포털 사이트 검색 결과의 맨 처음은 영화가 차지하고 있었다. 작품이 우선적으로 검색되기 때문이다. 해변가에 우뚝 솟아 경관의 앞쪽을 차지해버린 빌딩들 같은 모양새다. 사정을 모르는 이들이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멋지다며 방문하는 동안 그 자리에 원래 있던 것들은 밀려나는.
제목을 잘 짓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다 보면 창작과 표절의 경계에 놓일 때도 있을 것이다. 고민하다 떠오른 제목이 누군가의 창작에서 기인한 것을 나중에 깨달을 수도 있다. 많은 TV드라마들이 저작권의 경계가 애매한 고전문학이나 영화 제목을 무단으로 가져다 쓰는 것도 흔한 일이다. 제목은 법적으로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창작자 동료로서 의식이 있다면 일어날 수도, 이렇게 진행될 수도 없는 일이다. 어떤 실수는 어떤 시기에는 수정될 수 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럴 수 없다. 누군가의 피해를 뭉개고 넘어가겠다고 한다면 당한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에 “그래, 어쩔 수 없군” 하고 손놓고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마 음악가 ‘생각의 여름’이 입은 피해와 마음의 상처는 온전히 복구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억울함을 이해하고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 사실은 지속적으로 발화될 것이다. 자신의 선택으로 피해자와 자신에게 이런 고통을 안기게 되었다는 사실을 당사자는 인식하고, 회복을 위해 노력하기를 바란다.
<동병상련> _생각의 여름
시월답지 않은 뙤약볕
그 아래 멍하니 앉은 아저씨
앞에 대책 없이 쉬어가는 붕어빵
네 마리 천원 네 마리 천원
이천칠 년 가을
그 아래 대책 없이 쉬어가는 사람들
모두 어디로 달려가고 있나
네 마리 천원 네 마리 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