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고향이 같은 내 또래들은 동네와 나이가 비슷한 셈이다. 어릴 적에는 건물이 아직 들어서지 않은 공터가 많았다. 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학교 자리도 공터였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속도에 맞춰서 학교가 생겼다. 새로 학교가 생긴 덕에 3학년 때 전학을 가게 되었다. 오전반, 오후반으로 이부제 수업을 더이상 하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학교 운동장에는 모래가 깔려 있었고 손톱만 한 돌멩이가 많았다. 아침 조례가 끝나면 두손 가득히 돌멩이를 주워 와야 교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도 내가 졸업할 때까지 돌멩이는 끝없이 나왔다. 학교 건물은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건물 양쪽 복도 끝은 공사가 덜 끝나 철골과 콘크리트가 드러나 있었고, 학교 뒷마당에는 졸업할 때까지도 잡초가 무성했다.
잡초 중에서는 교과서에 나오는 질경이나 토끼풀이 인기가 많았다. 인기가 많았다고 하면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건 그들이 우리가 이름을 아는 몇 안되는 풀이기 때문이었다. 어른들이 요즘 인기 있는 댄스가수는 서태지와 아이들만 있는 줄 알고 있었던 것처럼, 풀에 대해 초등학생들이 알고 있는 것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달개비와 명아주도 그만큼 흔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이름을 아는 풀이었다. 교과서에 나왔기 때문이다. 식물표본을 만들어서 관찰하는 과제가 있어서 학교 뒤에 있는 잡초밭을 열심히 뒤졌다. 이런 몇몇을 빼고 그 당시 내 주변의 이름 있는 풀은 몇 되지 않았고, 나머지는 그냥 잡초였다.
이 이름 모를 풀 중에서 나는 노란 꽃술에 하얀 잎을 가진 작은 꽃이 피는 풀을 좋아했다. 모양이 계란을 닮았다고 해서 어떤 친구들은 ‘계란꽃’이라고 불렀다. 국화를 닮은 모양이 예뻤고, 사방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모습이 좋았다. 하지만 그 모습도 꽃이 필 때에나 그렇고, 봄에서 여름까지는 전형적인 잡초의 모습이었다. 작고 연약해 보이는 꽃과는 다르게 억세고 강한 줄기가 길고 무성하게 자랐다. 길게 뻗은 녀석은 키가 어린아이만 했다.
오후에 햇살이 늘어질 때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손이나 발로 줄기를 꺾으며 놀았다. 쉽게 꺾이지 않을 만큼 튼튼했고, 번식력도 좋았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신도시의 빈터마다 그 풀이 가득했다. 너무 흔해서였을까, 그 풀의 이름조차 모르는 채로 시간은 흘렀고 딱히 떠올릴 새도 없이 어른이 되었다.
그 풀을 다시 만난 것은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를 작업하면서다. ‘화려하지 않지만 작게 빛나는 아름다운 것들(그러나 문득 잊히곤 하는 것들)’을 생각하다가 문득 강변에 가득한 꽃들을 보았고, 디자이너와 함께 촬영한 여러 컷 중에서 한컷을 골라 앨범 표지를 만들었다.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꽃들이 수수하지만 편안하게 피어 있는 느낌이 좋았다. 조금 얇은 종이를 네번 접은 가사지 뒷면에 작은 포스터처럼 인쇄해 CD 케이스 안에 넣었다. 벽에 붙여놓으니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 보기가 더 좋았다.
“…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일도, 노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수히 흩날리는 시간 속에서 흔들리면서도 조금 더 천천히 사라지는 것들이 있겠지요. 그 아름다운 것들을 위해서, 잊어야 할 일들은 잊을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곡에 대한 소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그 순간 강변에서 들꽃 무리를 보았기 때문이고, 그 이름도 모르는 꽃이 오랜 시간 주변에 있는 듯 없는 듯 함께한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이름은 모른 채로. 그래서 그제야 그 풀의 이름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개망초. 사진을 찍고 나서 곡 소개글을 쓰면서 그 풀의 이름이 개망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잊어버림을 말하는 노래 표지에 들어간 들꽃의 이름에 ‘잊을 망’자가 들어간다니, 운명처럼 느껴졌다. 사실 개망초의 ‘망’자는 ‘잊을 망’자는 아니다. 개망초는 구한말에 전래된 외래종 식물로, 전래 시기가 시기인 만큼 나라가 망하고 피어난 풀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망’의 한자가 ‘풀우거질 망’자를 사용해서, 비워둔 땅에 무성히 자라는 잡풀이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보는 설도 있다. 하지만 그 뜻을 알고 나서도 내게는 이 풀의 이름이 잊어버림을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나라를 잃은 것도, 그 주인이 누구인지 타의에 의해 잠시 잊힌 것이요, 땅이 잊혀져 방치되었기에 풀이 우거지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이름을 알고 나서 나는 개망초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개망초는 꽃말도 멋지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멀리 있는 사람은 가까이 다가오게 해준다.’ 눈에 띄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알아주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멀리 있는 사람들도 점점 더 알아갈 수 있게 하는 개망초 같은 노래를 만들고 싶다.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가 그런 노래가 될 수 있을까?
개망초와 사촌 격인 망초라는 풀도 있는데, 개망초가 꽃이 조금 더 예쁘고 망초가 좀더 억세게 자란다고 한다. 사진과 설명을 보면서 돌아보면 내가 어린 시절 보았던 풀들은 망초에 가깝고 최근에 작업하면서 본 것은 개망초에 가까운 것 같다. 본의 아니게 두 품종의 조금 다른 특징을 글에 섞어서 쓴 것 같지만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어느덧 여름이다. 무더운 날을 버티고 살아내다보면 어느새 깨닫지 못한 새 하얀 꽃을 피워내는 개망초처럼, 잊어야 할 일은 잊고서 새로운 시간이 찾아올 거라고 믿는다.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_브로콜리너마저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아직까지 잠들지 못했나요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나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잊지 못할 사랑을 하고
또 잊지 못할 이별을 하고
쉽지 않은 맘을 알지만
그런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요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걸
담아둬서 무엇할까요
잊어야 할 일은 잊고서
새로운 시간으로 떠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