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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오늘은 SF] 조용한 실험 인간

<터미널 맨>

SF 작가로 원작이 영화화되어 큰 성공을 거둔 인물을 꼽아보라면 마이클 크라이튼만 한 이도 드물다.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1990년대 초 제작된 <쥬라기 공원>은 영화의 흥행 수입부터가 대단히 놀라운 액수였다. 1990년대 중반 무렵 “<쥬라기 공원> 한편이 벌어들인 수입이 한국 자동차 150만대를 수출하는 것과 같다더라” 하는 이야기는 지겨울 정도로 온갖 곳에서 끝도 없이 인용될 정도였다. 영화 제작의 역사를 놓고 볼 때에도 <쥬라기 공원>은 의미가 깊은 영화라고 본다. 연출에 본격적으로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사용하면서 이 기술로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고 어떤 식으로 영화를 꾸밀 수 있는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새로운 시대의 틀을 제시한 영화가 <쥬라기 공원>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이 영화의 영향이 어찌나 큰지, 나는 국내의 한 자연사 박물관의 관장을 지내신 분께서 “<쥬라기 공원> 영화 한편 때문에 전세계의 자연사 박물관들이 먹고살고 있다”라고 농담하는 걸 들은 적도 있다.

<쥬라기 공원> 외에도 마이클 크라이튼 작품을 원작으로 성공한 영화들은 꽤 있다. <이색지대>는 SF영화 역사에서 빼놓으면 서운할 인기작이고, <타임라인>이나 <스피어> 같은 영화도 반응은 괜찮은 편이었다. 마이클 크라이튼은 아예 <안드로메다 스트레인>이라는 자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직접 감독하기도 했다. 이 영화 역시 개성이 풍부한 영화로 SF의 다양한 가능성을 이야기할 때 언급할 만하다. 이만하면 SF 작가들이 소설 판권을 파는 꿈을 꿀 때면 다들 부러워하며 떠올릴 작가가 마이클 크라이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이클 크라이튼 원작 영화 중에서 괴상한 위치에 있는 영화가 국내에서는 <실험 인간>이라는 제목으로도 통하는 <터미널 맨>이다. 1972년에 원작 소설이 나왔고 1974년에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그 중심 내용은 자기 뇌에 초소형 반도체 칩을 끼워넣은 사람이 있어서, 말하자면 머리 속에 컴퓨터를 품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로 그가 여러 일을 겪는다는 것이다. 애초에 크라이튼이 자신의 작품 중에서는 이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떠돌고 있거니와 처음에는 크라이튼이 직접 영화 대본 각색을 맡아 작업하면서 원작에서 많은 부분을 바꾸고 수정하려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하다 보니 애초에 소설 판권을 구입하면서 생각했던 줄거리나 인물이 달라지는 점이 많아졌다. 이에 제작사에서는 크라이튼의 수정 작업을 막고 다른 대본을 만들어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이런 곡절이 있는 영화이니 크라이튼의 눈에 성이 안 차는 영화가 되었다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소재만 보면 대단히 구미가 당길 만한 내용이다. 1970년대 초 미국은 TV시리즈 <6백만불의 사나이>가 인기를 끌면서 몸의 일부를 전자 기기로 바꾼 사이보그 인간이 초능력 영웅처럼 활약하는 내용이 화제가 되던 시절이다. <6백만불의 사나이>는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어 2020년대인 요즘에도 TV 오락 프로그램에서 누가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장면이 나올 때 가끔 <6백만불의 사나이>에 나오던 특유의 사이보그 장치 효과음을 쓰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몸을 전자장치로 개조하는 이야기도 재미있는데 뇌에 전자 장비를 달면 또 어떤 활약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는 딱 나올 만한 시기였다. 1972년이면 아직 개인용 컴퓨터가 나오기 전이니 사람들이 컴퓨터를 아주 친숙하게 느끼지는 않았던 시대다. 그러면서도 “컴퓨터라는 신기한 기계가 있다”는 생각은 꽤 퍼져 있던 무렵이라서 컴퓨터와 결합된 사람을 첨단 기술과 함께 나타난 마법 같은 인물로 등장시키기에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터미널 맨>

또 다른 방향에서 봐도 이야기의 가능성은 넓게 펼쳐져 있다. 뇌를 내키는 대로 기계로 조작할 수 있다는 발상은 사람의 본성과 삶의 의미에 대한 고민을 해보기에 좋은 소재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자 장비를 사람의 뇌가 기쁨을 느끼는 부분에 연결해 그 부분에 전기를 흘리면 언제나 즐거움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고 해보자. 만약 국가의 목적이 모든 사람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것이라면 국가에서는 모든 사람의 뇌에 그 장치를 시술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국민들은 24시간 기쁨을 느끼는 회로만 가동하면서 최고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살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그런 기쁨은 삶의 보람, 뿌듯함이나 성취감이 없는 가짜 행복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을 텐데 그래도 그런 장치를 달고 있는 사람들은 상관없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보람, 뿌듯함, 성취감을 느끼는 뇌의 신경에 전기를 흘리기만 하면, 그 사람은 어느 누구보다도 삶의 보람 역시 강하게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막상 완성된 영화를 보면 그 어느 쪽 이야기도 강조하고 있지 않다. 굳이 따지자면 생각과 감정을 기계로 조절하는 것의 부작용에 대해 초점을 두고 있긴 하다. 그러나 삶의 의미나 사람이 가진 마음의 본질을 탐구하기보다는 뇌에 반도체 칩을 이식하는 수술 장면을 긴 시간을 들여 보여준다든지 수술을 받은 직후에 주인공의 얼굴에 비치는 미묘한 표정 변화를 세심히 보여주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머리에 컴퓨터를 단 주인공이 활약하거나 사고 치는 활극을 보여주는 내용이 아니다. 대신 천천히 조용하게 영화를 진행해나가면서 관객이 영화 속 인물들, 영화 속 상황에 대해 스스로 이리저리 생각해보고 상상해볼 시간을 주는 형태로 꾸며져 있다.

아쉬운 점은 후반부가 되면 갑자기 이야기 분위기가 슬그머니 연쇄살인마 이야기로 바뀐다는 것이다. 결말은 강렬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만든 것 같은데 썩 잘된 것 같지는 않다. 전반부와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는 점도 아쉽고, 이 시기는 아직 <할로윈>이나 <13일의 금요일> 같은 본격적인 연쇄살인마 영화의 연출 방법이 자리 잡기 전이라서 이런 내용을 딱히 재미나게 보여줄 방법도 찾지 못한 것 같다. 그나마 <싸이코>의 한 장면과 비슷하게 샤워실 장면을 긴장감 있게 활용하는 대목이 있는데, 이 정도로는 사색적인 영화 전반부보다도 딱히 더 나아지지 못했다.

그러니 영화의 절정 장면은 중반부에서 끝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수술 직후, 주인공이 뇌를 컴퓨터로 어떻게 건드리냐에 따라 어떤 이상한 생각과 감정을 느끼게 되는지를 다양하게 실험해보는 장면은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하다. 의사 앞에 주인공이 앉아서 긴 시간 실험하는 것뿐인 가라앉은 장면이지만 갑작스럽게 여러 희로애락을 느끼는 조지 시걸의 연기를 듬뿍 감상할 수 있다. 비슷하게, 수술 장면에서 의사들이 이런 신기한 기술을 성공시키면 자기가 얼마나 유명해지고 성공할지 틈틈이 내비치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특별한 과장 없이 매끈하게 조금씩 그런 생각이 화면에 새어나온다. 세심하고 느린 영화의 분위기를 잘 활용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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