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는 특별한 공연을 하나 했다. 부여의 고택에서 열리는 작은 콘서트였다. 공연의 기획자이자 진행자인 재주소년 (박)경환씨와 부여에서 마을 재생 사업을 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 세간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연이다. 세간의 운영을 맡고 있는 박경아 대표는 원래 재주소년의 팬이었는데, 루프톱 공연 시리즈를 마치고 숨을 고르고 있는 경환씨에게 무작정 제안을 던졌다고 한다. 경환씨는 원래 그 누구보다도 왕성하게 공연을 만들고 동료들의 음반을 제작하며 스스로도 꾸준히 창작을 해온 분이라 그러려니 했는데, 만나보니 박경아 대표도 누구보다 열정이 가득한 분이었다. 이 열정 어린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이번 공연을 만들게 되었는데, 그 배경이 되는 것이 부여의 자온길이고 그리하여 이 프로젝트는 ‘자온길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자온길에는 방치되어 있던 가옥들을 고치고 새롭게 만들어낸 가게와 공간들이 있는데, 그 중심에 과거에는 양조장이었다고 하는 ‘이안당’이 있다. 이곳은 이번 공연의 공연장이기도 하다. 과거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곳은 잠시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의 흐름이 잠깐 멎은 기분이 들었다. 공연을 준비하며 장비와 객석 의자들이 놓여 있어서 분주하긴 했지만(브로콜리너마저가 참여한 날 무대 위 인원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그전에는 보통 참여 음악가가 홀로 와서 경환씨와 이야기하고 공연을 하곤 했다고) 대청에서 잠시 하늘을 보거나 낮잠을 자도 좋을 것 같았다. 뒷마당에선 닭들이 심심하면 소리를 높여 울고는 했다.
이안당에는 다락 공간이 있어서 대기실로 사용했다. 천장이 높지 않아 대체로 눕거나 기대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공연 때 옛날 이야기를 진솔하게 하면 어떻겠냐는 경환씨의 말에 초창기 시절 이야기를 꺼내어보니 재미있는 사건이 많았다. 내가 군 입대를 하기 전, 재주소년의 음반을 접하고 부러워했던 일을 이야기하니 경환씨가 군대에서 전역하니 브로콜리너마저가 활약 중이어서 의식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류지가 혹시 예전 일이 기억나는지 물었다. 밴드 활동 초기에 앨범 발매 이후 활동을 쉬다가 모여서 밥을 먹는데 이대로 우리 그만두는거냐고, 밥 먹다 말고 울었었다고 했다. 아, 정말로 기억이 안 나는데. 그때 자주 먹었던, 쟁반짜장이 맛있었던 낙성대 중국집은 기억이 났다. 그땐 참 자주 갔는데, 그곳을 떠나온 10여년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렇게 고택의 다락에서 예전 일들을 다시금 마주하게 되었다. 없어질 뻔했던 옛집이 다시 사람의 손길을 맞아서 새롭게 그 역할을 하게 된 것처럼 지나버린 일들도 그렇게 될까. 시간이 지나며 오래된 것들이 없어지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남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데 기억들도 그렇게 되나보다. 농담 삼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들 하는데, 어쩌면 기억이라는 게 생각보다 약한 것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때로 기억은 엄청나게 힘이 강하기도 하잖은가. 그때를 증명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도 누군가가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떠오르는 일들이 있는 것처럼. 처음 잡지에 밴드 인터뷰가 실리고 나의 이야기가 활자화되던 때를 기억한다. 공개적인 곳에 나의 흔적이 남는 것이 두렵게 다가오기도 했지만 이제 와 돌아보면 그때 했던 말들의 상당 부분은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다. 언젠가 했던 이야기들, 공연의 순간들 그리고 생각들도 드물게 남아 있다.
녹음되지 않은 노래들도 사라진다. 연주하지 않고 있는 노래들은 희미해진다. 사람이 사는 집은 낡지 않는다고 하는데, 매번 지나다녀서 반질거리는 부분이 아니면 먼지가 앉고 어느새 잊혀지게 되는 것 같다. 새로운 이야기를 찾으러 가는 만큼이나 지나간 흔적을 만지작거리는 과정에서 다시 문득 거짓말처럼 깨닫는 것들이 늘어난다. 이게 나이를 먹는 것일까.
시골 큰아버지 댁은 예전에 할아버지 댁이었다. 지금은 양옥이 되었지만 그때는 문풍지가 있고 마루가 있는 한옥이었고 부엌은 구들장 밑으로 이어져서 대청마루 아래로 기울어져 내려가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불편한 구조를 조금씩 수리해서 집의 모양은 변했지만, 어느 위치에 어떤 방이 있고 문간방의 구조가 그렇게 된 것은 원래 그곳에 있었던 모양대로라는 것도 이제는 잊고 지내고 있다. 지금은 잔디를 심어놓은 마당에는 우물이 있었다. 그 안에 철모로 만든 두레박이 있었고. 알지도 못하는 옛날이야기와 먼 친척들 이야기를 하던 할아버지를 어릴 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왠지 절반 정도는 알 것 같다.
노래를 계속 부르는 것이 나에게는 집을 닦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만들어둔 노래도 잊히면 금세 무너지고 말 것같은 불안감이 든다. 누군가가 그곳에서 살고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언젠가는 나의 노래도 텅 비고 말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 서글프지만 홀가분하기도 하다.
물론 그날의 공연은 찾아준 많은 관객과 함께 연주한 동료들 덕분에 북적였다. 오래된 집이 그렇게 생명을 이어가듯 계속해서 노래를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현실이 낯설었어> _재주소년
음~ 우리가 헤어지던 날
공원을 적시던 비의 냄새와
또다시 만나자던 그 약속…
너의 동네를 지날 때
창밖을 보게 돼
나란히 함께 앉았던
버스 맨 뒷좌석에 홀로 앉아서
생각에 잠기네 이제는 흔적도 없는 긴 도로일 뿐…
사람들로 붐비는 서울 거리는
무엇도 변하지 않았어 두번의 계절은 가버렸어도
가방 속에는 노란 수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