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오랜만의 단독 공연이 있었다. ‘다정한 사월’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 공연은 특별한 무대장치나 놀랄 만한 기획이 함께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전의 공연과 다른 점이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유지되던 동안 있었던 공연장 내 거리두기 없이 진행됐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2020년 이후로 객석을 바둑판처럼 나누어 한칸 한칸 띄워놓던 방식으로 공연하지 않고 온전한 객석이 채워질 수 있었다.
공연 장소는 홍대에 위치한 좌석 160석, 스탠딩 350석 규모의 라이브홀 ‘웨스트브릿지’였는데, 이 규모는 우리 밴드에 작다고도, 또 그렇게 크다고도 할 수 없는 규모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보통 스탠딩으로 공연해서 열기가 가득한 곳이었는데, 좌석으로 그것도 거리두기를 해 그동안은 약 80명 내외의 관객이 함께해왔다. 온라인 스트리밍 등을 고려하면 객석은 그 절반까지도 줄어들었다. 일부 지원사업에 응모하거나 공연 수익을 기대하지 않는 방법으로 공연을 해오긴 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무대에서 공연하는 일은, 그것도 자신이 감당해 공연하는 일은 생일 파티를 열고 친구들이 오기를 바라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 생각보다 많은 손님을 맞았을 때 감당하기 어려우면서도 즐겁고 기쁜 것이 그러하고, 내심 바라던 사람들이 없는 빈자리를 보았을 때 생기는 허전한 마음이 그러하다. 일로 접근하지 않더라도 정서적으로 일단 다가오는 마음이 그러한데, 이후에 돌아오는 청구서까지 감당해야 했던 것까지 생각하면 관객석의 강제된 빈자리가 나와 동료들에게 주는 의미는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빈자리 없이 가득한 공연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흐뭇했던 시간이었다. 그동안 ‘그만 접을까' 고민했던 마음의 빈자리도 조금은 채워지는 기분이었고. 한편으로 이 시간을 버티다 자리를 비우게 된 동료들도 있겠지만, 그렇게 생긴 빈자리도 채워지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금은 약간 기뻐해도 되는 것 아닐까. 첫날 리허설을 하고 있을 때, 이제 다음주부터 공연장에 주어졌던 몇 가지 제약(스탠딩 공연, 환호성이나 함께 노래 부르는 행위 금지)이 풀릴 것이라는 소식도 들려왔다. 공연 중에 ‘이제 다음주부터는 환호와 떼창도 다시 할 수 있다, 그동안 오래 하지 않아서 연습이 필요할 수도 있다’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일인데도 말을 하면서 정말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오래 기다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요즘은 기다리는 일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코로나19 시국이라 그렇고, 본질적으로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기에 그렇기도 하다. 곡을 발표하고, 글을 쓰고, 공연을 준비하면서 누군가가 그것을 찾아주기를 바라는 것이 큰 틀에서 내가 하는 일의 성격인 것 같다. 그 일을 통해 누군가를 만나는 순간은 때로 마법같이 놀랍지만 물리적으로 대부분의 시간은 기다리는 일이다. 새로운 영감이 찾아오기를, 그리고 그 결과물이 형체를 갖고 여러 가지 복잡한 과정을 거쳐 완성되기를, 그리고 누군가가 찾아주고 다시 방문할 것을 약속하기를. 하지만 시간이나 망각의 힘이 강력하기 때문에 기다림이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다림의 끝에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은 최종적으로는 기다린 이가 아니라 찾아주는 사람이기에 기다림의 결과에 대해서는 어찌 할 수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어떻게 잘 기다릴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잘 기다리고 있다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때 그 모습으로(혹은 조금 더 나아진 모습으로) 나타나서 우리가 못했던 것들을 다시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밴드 델리스파이스는 <항상 엔진을 켜둘께>에서 ‘기다릴게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도록 항상 엔진을 켜둘께’라고 노래한 바 있다.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겠다는 이야기가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항상 출발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항상 엔진을 켜둘께’가 낭만적인 고백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기약을 모르는 약속이기 때문이고. 그렇기 때문에라도 현실에서는 언제라도 출발하기 위해서 공회전으로 힘을 빼지 않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더 오래 기다릴 것이고, 더 온전하게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잘 기다리고 있으면서 <항상 엔진을 켜둘께>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출발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더 가질수록 이 노래는 더 아름다울 것이다.
<항상 엔진을 켜둘께> _델리스파이스
휴일을 앞둔 밤에 아무도 없는 새벽
도로를 질주해서 바닷가에
아직은 어두운 하늘 천평궁은 빛났고
차 안으로 스며드는 찬 공기들
기다릴께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도록
항상 엔진을 켜둘께
너와 만난 시간보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그 바닷가에 다시 또 찾아와
만약 그때가 온다면 항상 듣던 스미스를
들으며 저 멀리로 떠나자
기다릴께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도록
항상 엔진을 켜둘께
기다릴께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도록
항상 엔진을 켜둘께
돌아오지 않더라도 난 여기에 서 있겠지
아마 엔진을 켜둔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