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엽기적인 그녀>가 환기시킨, 잊혀질 뻔한 이름이 있다. 첫째는 8년 만에 연출작을 내놓은 곽재용 감독이지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지 않는 곳에 또 한 사람, 최완(49)씨를 빼놓을 수 없다. 90년대 중반 삼성영상사업단에서 영화사업을 진두지휘했던 그는 사업단 해체와 함께 낯선 길로 접어들었다. 99년 삼부엔터테인먼트 부사장으로 스카우트됐다가 모회사가 공중분해되면서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던 최완씨는 지난해 4월 아이엠픽처스라는 배급사를 차렸다. 신씨네가 제작한 <엽기적인 그녀>는 <하면 된다>로 신고식을 치른 아이엠픽처스의 두 번째 투자작. 전국 400만명 돌파가 시간문제로 보이는 이 영화의 흥행으로 최완씨의 건재가 확인된 셈이다. 그를 만나러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아이엠픽처스 사무실을 찾았을 때 그곳엔 낯익은 얼굴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과거 삼성영상사업단에서 일했던 사람들이다. “20년 넘게 삼성이라는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혼자 무슨 사업을 하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그가 지난 3년간 겪은 풍파를 함께 헤쳐나간 그들의 표정은 실로 감개무량해 보였다. 최완씨는 “직원들 사기가 올라간 게 무엇보다 기쁘다”고 말했다.
아이엠픽처스는 올해 <엽기적인 그녀> 외에 11월 개봉예정인 신승수 감독의 <아프리카>에 투자하고 소피 마르소 주연의 <벨파고>, 웨인 왕 감독의 <센터 오브 더 월드>, 캐서린 비글로 감독의 <웨이트 오브 워터> 등을 배급할 계획. <엽기적인 그녀>가 번 만큼 사업규모를 늘릴 계획을 밝힐 만한데 최완씨는 조심스럽다. 한 계단씩 욕심내지 않고 가겠다는 것. 그렇다고 1년에 1∼2편 만드는 데 만족하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시네마서비스, KM컬처로부터 투자를 받아 시네마서비스와 협력관계에 있는 투자, 배급사로 자리잡을 계획. 외형보다 내실을 기하며 한발씩 나가는 아이엠픽처스의 움직임은 향후 영화계 판도에 또다른 변수가 될 전망이다.
+ <엽기적인 그녀>는 어떻게 시작한 프로젝트인가. 작품 계발단계부터 신씨네와 협력해서 진행한 것인가.
= 처음부터 시작했다기보다는 삼성에서 나와 삼부에 잠시 있을 때, 신씨네하고 작품 세편을 같이 하자고 전도금도 주고 그랬다. 신씨네하고는 삼성에 있을 때부터 계속 관계하고 있었다. 삼부에서 나오고 나서, 개인적으로 좀 일을 해보려고 무슨 작품이 있나 보는데, 그때 마침 신씨네에서 <엽기적인 그녀>와 <교도소월드컵>이 기획되고 있었다.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더라. 다른 하나는 CJ와 한다면서. 우연인지 아닌지, 강우석 감독이 <엽기적인 그녀>를 달라고 신씨네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래서 아마 그게 좋은 건가보다 했다. (웃음) ‘엽기가 뭐야’ 물어보니까, 대충 ‘n세대가 좋아하는 내용이다’ 그러더라. 또 지금 싸이더스에 있는 노정윤 팀장한테도 물어보니 ‘<엽기적인 그녀>를 잡으십시오’ 했다. 그래서 <엽기적인 그녀>를 잡게 됐다. 내가 뭐 기획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웃음) 처음에 난 <엽기적인 그녀>가 스릴러인 줄 알았다. ‘이거 무슨 <텔 미 썸딩> 같은 거냐?’ 그랬으니까. 그런데 재미있는 드라마라고, 코믹이라고 해서 한번 읽어보니까 재밌더라. 원작도 재미있지만, <엽기적인 그녀>의 성공요인 중 큰 것은 시나리오다. 곽재용 감독이 아주 각본을 잘 썼다. 시나리오를 보고 투자 안 하겠다고 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 얘기를 거슬러올라가보자. 삼성영상사업단이 없어질 때 어떤 상황이었는지 궁금하다.
= 분위기가 안 좋았다. 안 좋은 이유는, 구조조정 때문에 회사를 줄여야 하니까 그렇다고 하든지, 정부에서 법인을 못 만들게 하니까 헤어지자 그러든지, 그렇게 명예퇴직 형식으로 했다면 좋았을 텐데 이상하게 무슨 감사를 해서 직원들을 부도덕한 사람으로 몰아나갔다. 그것 때문에 다들 상처를 많이 받았고 떠난 사람들 마음이 다 안 좋았다. 아직도 삼성에 대해 반감이 다들 많다.
+ 영상사업단이 없어져도 그룹에 남을 수 있었을 텐데 삼성에 남을 수 있는 조건은 아니었나.
= <쉬리>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나한테 프로포즈가 왔다. 이미 사표를 던진 상태였는데, ‘다시 사업부를 만들어줄 테니, 한국영화 중심으로 해라. 이미 미국 뉴리젠시에 6천만달러 투자가 돼 있으니 그건 어떡할 거냐, 기분 나쁜 건 알겠지만 그냥 다시 해라’ 그랬다. 그런데 못하겠더라. 제2, 제3의 <쉬리>가 나온다는 보장도 없는 거고, 우리를 못 믿는 사람들하고는 다시 일 못하겠더라. 나도 많이 상처받았고, 우리 직원도 많이 상처받았으니까. 그래서 내가 조건을 제시했다. ‘좋다, 할 테니 돈은 삼성이 대라, 나는 직원들 챙겨서 분사를 하겠다, 경상비하고 운영자금을 삼성이 내줘라’ 이렇게 제안했다. 근데 굳이 삼성 틀 안에서 하라고, 분사는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깨진 거다. 아쉽다. 그때 계속했으면 상당히 괜찮았을 텐데.
+ 그런 다음 삼부엔터테인먼트로 갔는데 삼부가 정리될 때는 어땠나.
= 망연자실했다. 하루아침에 날벼락이랄까. 나름대로 그랜드한 플랜이 있었는데…. 배우도 뽑았고 강우석 감독 프로젝트에 투자도 했고, 삼부 자체 100% 파이낸싱하는 라인업에도 투자가 돼 있었고…. 그중에는 지금 촬영중인 같은 것도 있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모든 게 내려앉았다. 모든 게 삼부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삼부파이낸스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양재혁 회장이 구속되면서 모든 자금흐름이 막힌 거다.
+ 그때는 ‘또 이제 어떡해야 하나’라는 문제에 봉착했을 텐데.
= 우선은 좌우지간 벌여놓은 영화나 앞으로 할 영화들에 대해서 수습을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삼부엔터테인먼트의 부도 없이 정상적인 마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자금 나가는 것 막고 정상적으로 정리를 마쳤다. 그 다음에 무얼 할 것이냐, ‘넥스트 스텝’은 사실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퇴사하고 1개월쯤 쉬었을 때 같이하자는 투자자를 만났다. 근데 그 투자자 역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건 아니었다. <하면 된다>가 실패하자 떠나겠다고 했다. 계산을 해보니까 2억원 정도 적자였다. 일본 판권이 지금 얘기되고 있는데, 그게 되면 좀 메울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어쨌든 <하면 된다>가 그렇게 되고나서 투자자가 나가겠다고 했다. 좋다, 그러면 자본금을 돌려줄 테니까 나가라, 그랬다. 그런 다음 KM컬처(대표 박무승)하고 시네마서비스가 들어와 있는 거다. 그게 올 초 상황이다. 지금은 KM컬처, 나(아이엠픽쳐스), 시네마서비스 이렇게 셋이 3대 주주다.
+ 아이엠픽쳐스는 어떤 모델을 가지고 차린 회사인가.
= 아이엠픽쳐스는 한국영화를 중심으로 하는 투자회사다. 배급까지도 할 계획이지만 아직은 여력이 안 된다. 처음에 <하면 된다>는 배급도 했다. 그런데 이게 잘 안 되다보니까 흐지부지됐고…. 지금은 다시 보강했다. 작품 중심으로 하면서 작품이 좋으면 배급도 하는 거다. 시네마서비스처럼 큰 배급사로 키우겠다 뭐 그런 건 없다. 작품 픽업능력을 어떻게 향상시키느냐에 초점을 두고 있다.
▶ <엽기적인 그녀>로 재기한 (주)아이엠픽쳐스 대표이사 최완 (1)
▶ <엽기적인 그녀>로 재기한 (주)아이엠픽쳐스 대표이사 최완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