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수많은 쓰레기는 어디로 갈까. <문명의 끝에서>는 사람들이 더 일찍이 궁금해했어야 하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코로나19 이후 실내 생활 증가와 배달 서비스 소비 급증으로 매일 수만톤의 쓰레기가 생산되지만 이들의 목적지와 처리 과정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문명의 끝에서>는 단순히 쓰레기가 지나가는 경로를 안내하기보다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역적 위계, 정치적 갈등, 부동산과 계급 불균형 문제 등을 묵직하게 따라간다. 한마디로 ‘쓰레기 사회학’에 가깝다. 감독 임기웅은 “쓰레기 문제는 지구적인 문제이지만 동시에 지역적 문제”라고 중심 화두를 짚었다. 전체 쓰레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건설폐기물은 한국 사회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은 사막 같은 황무지를 활용하여 쓰레기를 매립하지만 그에 비해 여분 토지가 많지 않은 한국은 매립지를 둘러싸고 지역간의 눈치싸움이 벌어진다. “국가에서 관리하는 재활용 선별장을 방문하면 잘 관리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일반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폐기물 처리시설에 갔을 때 받은 충격을 잊지 못한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쓰레기도 놀라웠지만 그곳에서 일하던 노인들과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시선이 멈췄다. 왜 쓰레기는 꼭 약자들이 전담하게 될까. 쓰레기가 버려지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꼭 다루고 싶었다. 계급적 관점으로 쓰레기를 해석하면서 폐지 줍는 노인의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문명의 끝에서>는 쓰레기의 순환을 구조적으로 접근한다. 임기웅 감독은 “쓰레기 매립 비율은 전기 소비 형태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전체 전력 소비량에서 산업용 소비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면 영업용이 30%, 가정용이 20%에 해당한다. 쓰레기 또한 평균적으로 건설폐기물이 50%, 산업용이 30%, 가정용이 20%에 달한다. “넷플릭스 해양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해양쓰레기의 대부분은 산업쓰레기라고. 이 구조를 알아야 쓰레기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직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다만 관객과 시민들이 자신을 제외하고 산업만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챕터를 둘로 나눴다. 1부에서 생활적인 부분을 건드린다면 2부에서는 산업 측면으로 접근하여 거시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도시의 욕망은 곧 쓰레기 문제와 계급 문제로 이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새집, 새 건물을 통해 부의 축적에 공을 들일 때 부숴진 아파트의 잔재는 또다시 바다로 산으로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문명의 끝에서>는 관객에게 일상적 실천을 강요하거나 촉구하는 목소리를 지니진 않았지만, 작은 바람이 있다면 모두가 각자의 집과 공간을 아껴 쓰면 좋겠다. 너무 쉽게 버림받지 않도록 오래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