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 초청된 다큐 <플래닛 킬러: 탄소의 왕자>와 <그린 워리어: 포에버 케미컬>은 마치 한편의 범죄소설 같다. <플래닛 킬러: 탄소의 왕자>는 15년 가까이 환경문제에 대한 탐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마르탱 부도가 총괄한 <플래닛 킬러> 시리즈의 한 에피소드다. 이 영화는 ‘탄소 왕자’라고 불리는 시릴 아스트뤽의 범죄를 추적한다. 그는 유럽연합에서 탄소 배출을 막기 위해 만든 탄소배출권 거래제의 허점을 이용한 사기로 50억유로를 빼돌리는 데 성공했으며 10년 가까이 수사망을 피해 도주 중이다. 감독은 환경 범죄자라는 소재를 자극적인 이야깃거리로 소비하지 않는 대신 과학적인 엄밀함과 탄탄한 구성, 절제된 스토리텔링으로 관객을 환경 범죄의 잔혹한 현장으로 초대한다. 한편 <그린 워리어: 포에버 케미컬>은 개인이 아니라 공장제에 기반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겨냥한 작품이다. 카메라는 자연분해되지 않고 인체에 축적되는 발암물질인 과불화화합물을 아무 제재 없이 배출하는 공장의 비인간적인 시스템을 생생히 포착한다.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환경 범죄는 사법기관의 관심을 끌지 않고도 천문학적인 돈을 벌 수 있기에 범죄자에게는 완벽 범죄에 가깝다. 이 모든 현장을 두발로 뛰며 최대한 과학적인 시선으로 포착하려고 한 감독 마르탱 부도의 진심을 전한다.
-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 초청된 기분이 어떠한가.= 큰 영광이다. 많은 관객이 내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는 놀라운 기회다. 한국 관객과 만나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어 무척 설렌다.
- 두 작품을 제작하게 된 동기를 소개해달라.= 두편 모두 환경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고 싶었던 내 아이디어가 적극 반영됐다. <그린 워리어: 포에버 케미컬>은 영구 화학물질 스캔들을 과학적인 관점에서 다루려 했고, <플래닛 킬러: 탄소의 왕자>에서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환경 범죄를 알리고 싶었다.
- 탐사저널리즘 책도 집필했다고 들었다. 탐사저널리즘 책을 쓰는 것과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 사이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탐사 다큐멘터리 제작은 시각 자료 확보가 관건인데 이게 쉽지 않다. 우선 관객이 수사 과정 전반을 이해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예를 들면 과학수사를 설명할 때는 현장에서 샘플을 채취하는 수사관의 노력을 담아야 관객이 체감할 수 있다. 환경 범죄도 마찬가지다. <플래닛 킬러: 탄소의 왕자>에서도 전세계가 최악의 도망자인 아스트뤽을 잡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 담아내려 했다.
- 두 작품을 왜 굳이 TV시리즈 포맷으로 제작했나. <플래닛 킬러: 탄소의 왕자>는 충분히 장편다큐멘터리영화로 제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공감한다. 충분히 장편다큐멘터리로 제작할 수 있는 소재다. 다만 <플래닛 킬러>를 시리즈로 제작하기로 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2년 가까이 온갖 환경 범죄에 맞서는 인터폴 환경 범죄 전담반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고 나니 한편의 영화에 담아내기에는 그 양이 다소 방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린 워리어: 포에버 케미컬>에서는 공장의 실태를 고발하며 법이 개정되는 순간을 임팩트 있게 그려내고 싶었기에 시리즈가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 5년간 환경문제를 추적했다고 들었다. 작품을 제작하는 동안에 자본주의와 환경파괴 사이의 유착 관계를 체감했을 것 같은데. 영화를 찍은 다음에 기후 위기를 보는 관점이 달라졌는지 궁금하다.
= <플래닛 킬러: 탄소의 왕자>를 찍는 동안 세계의 범죄 조직망을 둘러싼 생각이 달라졌다. 그들 사이에서 환경 범죄는 사법기관의 관심을 끌지 않고도 천문학적인 돈을 벌 수 있어 완벽 범죄에 가깝다. <그린 워리어: 포에버 케미컬>은 공장으로 인한 환경오염이 대부분 경제적으로 가장 낙후한 지역에서 발생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를 기후 불평등 혹은 기후 분리라고도 말하는데 나 역시 그러한 주장에 일부 설득되었고 이 작품이 그 결과물이다.
- 두 작품은 하드보일드한 문체로 쓰인 범죄 현장 보고서로 보인다. <CSI: 과학수사대> 등 범죄드라마와 달리 범죄 추적 과정을 날것으로 전한다.
= 다시금 강조하건대 나의 목표는 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관객과 이야기하는 것이다. 범죄 다큐멘터리의 코드를 사용함으로써 환경문제에 대한 관객의 인식을 높임과 동시에 흥미를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보다 근본적인 환경문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길 바란다.
- 작품에서는 대체로 캐릭터의 개인적인 감정과 서사를 배제한 채 수사관의 전문성에 집중했다.
= 인터폴 수사관은 다루는 사안이 예민한 만큼 개인적인 서사를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중간에 한 인터폴 수사관의 입에서 마틴 스코세이지의 <좋은 친구들>이 언급됐는데, 다큐멘터리가 방송된 직후 이 장면 때문에 한달 동안 경찰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 <플래닛 킬러: 탄소의 왕자>는 시스템을 파괴하는 문제적 개인에, <그린 워리어: 포에버 케미컬>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초점을 두었다. 다음 작품은 어떤 부분에 초점을 둘 생각인가.
= 앞서 말한 대로 두 작품은 전세계의 환경 범죄와 환경오염에 대한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다룬다. 차기작에선 환경 마피아를 다룰 생각이다.
- 한국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내 영화를 이야기할 기회가 생겨 감사하다. 다만 이 영화는 내가 대표로 소속된 팀의 작업 중 일부다. 한국의 관객들이 이번 작품을 계기로 환경을 다룬 영상 작업들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