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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3
2001-05-29

시사실/ <D-13>

Story

미국과 소련을 주축으로 냉전체제가 형성돼 있던 1962년 10월. 쿠바 상공을 정찰하던 미 공군의 카메라에 소련의 미사일기지 건설현장이 포착된다. 미국 플로리다 해안에서 불과 90마일 떨어진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세우는 소련에 위협을 느끼는 미국 정부. 백악관은 비상사태에 돌입하고, 존 F. 케네디(브루스 그린우드) 대통령을 위시한 정부 고위층과 군부 장성들은 긴급대책 마련에 나선다. 커티스 르메이 공군참모총장을 비롯한 군부의 강경파들은 선제공습이 최선이라고 주장하고, 정부 각료들 사이에는 자칫 핵전쟁으로 비화할지 모를 결정을 둘러싼 격론이 벌어진다. 소련의 쿠바 미사일기지 완성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10여일. 케네디 대통령과 법무장관이자 동생인 로버트 F. 케네디(스티븐 컬프),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딜런 베이커), 특별보좌관 케네스 오도넬(케빈 코스트너) 등 측근 참모들은 일촉즉발의 위기를 해결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고심한다.

Review

역사적 사실을 다룬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지만, 은 ‘결말을 알고 보는’ 정치스릴러다. ‘쿠바 미사일 위기’에 미국 정부가 어떻게 대처했는가는 이미 39년 전에 풀이가 끝난 문제니까. 소련의 쿠바 핵미사일기지 건설을 눈치챈 케네디 정부는 쿠바 해상 봉쇄령을 내렸고, 전쟁 일보 직전 흐루시초프 공산당 서기장과의 외교교섭으로 사태를 마무리지었다. 미국의 쿠바 불침공을 조건으로 소련이 미사일기지를 철수한 것이다. 이처럼 끝을 뻔히 아는 사건을 스릴러로 끌어가기 위해서는 노련한 전술이 요구된다. 은 실제 사건과 관련해 거의 드러나지 않았던 인물인 케네스 오도넬을 발굴하고, 결말에 비해 덜 알려진 과정, 곧 백악관의 은밀한 휘장 뒤에서 벌어진 치열한 공방전을 파고들어 쿠바 미사일사태를 재현했다.

이 택한 이같은 전술은, 뻔히 아는 얘기를 변주해 관객을 자리에 붙들어두는 묘수(?)인 동시에 역사의 윤색이란 오류를 피하기 힘든 악수(?)다. 버섯모양의 구름을 피워내는 핵폭발의 이미지와 오도넬의 평화로운 아침 식탁을 짧게 훑는 서두부터 사실성보다는 극적이고 사적인 드라마를 향할 전개를 예고한다. 카메라가 주시하는 공간은 대통령 집무실과 미국의 정치수뇌들이 모인 회의실 탁자, 오도넬의 사무실 등 밀폐된 백악관의 내부. 연극무대처럼 한정된 이 공간은, 긴장의 신경줄을 팽팽히 당기며 스릴러의 밀도를 높이는 데 아주 효과적이다. 이따금 인물들의 인간적인 체취를 담기 위해 오도넬의 집으로, 혹은 전쟁으로 치닫는 사태의 긴박감을 전하고자 쿠바 상공의 전투기나 봉쇄령 아래 전운이 감도는 카리브해 선상으로 달려가지만 그도 잠시뿐. 10월16일 공군 정찰사진을 받아든 순간부터 강경하게 공습을 주장하는 르메이 장군과 온건책을 고심하는 케네디로 대변되는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 유엔 회의석상에서 벌어지는 미·소 양국 대사의 교묘한 외교설전, D-데이인 28일 직전까지 밀고당기는 흐루시초프와 케네디의 막후교섭 등 잘 보이지 않던 백악관의 속내를 촘촘히 엮어 시시각각 조여오는 서스펜스를 전달한다.

오도넬과 케네디 형제, 맥나마라 국방장관, 맥조지 번디 안보보좌관 등 케네디 측근들을 중심으로 한 구성은 사뭇 ‘공식적’ 사건에 사적인 친밀감을 부여하는 요소. 하지만 케네디사단의 내밀한 토론장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오도넬을 숨겨진 영웅으로 포장한 것은, 사적인 각색으로 역사적 사실이 간과되는 지점이다. 전쟁을 부를 군부의 공습 제의를 막기 위해 오도넬이 공군장교에게 정찰시 소련군의 총격사실을 숨겨달라고 전화를 하는 등 과장된 허구의 함정은 분명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로버트 케네디의 대학동창인 오도넬이 케네디 형제의 친구이자 측근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의 원작인 <케네디 테이프들-쿠바 미사일 위기 상황의 백악관 내부>에 따르면 사태해결에 실제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라니 말이다.

<케네디 테이프들…>은 하버드대학의 교수 어니스트 R. 메이와 필립 D. 젤리코가 96년까지 국가기밀이라 공개되지 않았던 자료들을 토대로 당시 정황을 재구성해 화제를 모았던 책. 케네디가 백악관 내부에 설치한 도청장치에 녹음된 회의 및 개인메모 등을 살려낸 원작은 격론과 욕설까지 생생한 극중 대화로 거듭났다. 세련된 대사와 정치스릴러로서 완결성을 갖춘 각본, 소련의 입장에 대한 어설픈 직접묘사를 생략하고 오도넬 개인의 시점에 함몰되는 것을 자제한 균형감각은, 역사적 사실여부를 잠시 떠나 영화적 사실을 즐길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어차피 역사다큐멘터리가 아니라는 변명을 앞세운다면, “미사일 위기를 진지하게 파고드는 학도들이 볼 건 못 되겠지만, 올리버 스톤의 처럼 일반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로저 에버트의 평처럼 은 볼 만한 정치스릴러다. <노웨이 아웃>에서 호흡을 맞췄던 로저 도널드슨 감독(<스피시즈> <단테스 피크>)과 케빈 코스트너가 모처럼 초심으로 돌아가 안정된 기본기를 펼쳤다.

황혜림 기자 [email protected]

터키가 아니라 쿠바였어...을 둘러싼 몇 가지 사실들

쿠바 미사일 위기는 미국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자리잡고 있다. ‘국제분쟁 해결의 모범사례’ 또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에서 주요 분기점’ 등으로 평가되는 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정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주도 아래 탄생한 쿠바 사회주의정권은 다음해 말까지 20억달러에 이르는 미국인의 투자자산을 몰수하는 정책을 폈고, 이에 미국 정부는 경제제재로 보복 조취를 취해 양국 국교가 단절되기에 이른다. 불과 70마일 바깥에 사회주의국가가 있다는 점에 위기의식을 느낀 미국은 1961년 4월17일 쿠바 혁명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CIA의 지휘 아래 망명 쿠바인들로 구성된 부대를 피그만에 침투시킨다. 하지만 이 공작은 병력 1천여명이 생포되며 실패로 돌아갔다. 이 사건은 최종 승인자인 존 F. 케네디와 미국 정부에 큰 타격을 입혔을 뿐 아니라 카리브해의 긴장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빚었다. 소련의 대쿠바 군사지원은 그 귀결이었다.

1989년과 1992년 공개된 미국 정부의 문서에 따르면, 미사일 위기 당시 케네디와 후루시초프 사이에 오간 서신에서 소련쪽은 미사일 기지를 철수하는 대신 미국이 유엔을 통해 공식적으로 쿠바 침공의사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케네디의 안보팀은 격론을 벌이며 대쿠바침공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미국은 1962년 ‘몽구스 작전’이라는 이름의 쿠바 전복계획을 다시 추진하고 있었는데, 400명의 미국인과 2천여명의 쿠바 망명자로 구성된 부대를 조직해 공교롭게도 그해 10월 쿠바에 진입할 계획을 잠정적으로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엄 촘스키에 따르면 이들은 긴장이 팽팽했던 62년 10월부터 11월까지 러시아 기술자가 묵고 있는 호텔에 총알을 난사하는 등 테러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쿠바를 전복할 계획을 갖지 않았으며, 터키의 미사일 기지를 철수해 소련을 달래려 했다는 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가장 크게 어긋나는 지점도 이곳이다. 하긴 ‘영화적 진실’은 항상 ‘역사적 진실’을 멋대로 뒤틀어놓으니….

문석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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